18년 동안 주민 97명 중 26명이 암에 걸린 마을이 있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에 있는 장점마을이 그곳이다. 지난해 11월에 발표된 환경부 실태조사 결과, 2001년 마을 옆에 들어선 비료공장 ‘금강농산’에서 원료로 쓴 연초박(담뱃잎 찌꺼기)이 암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환경부 실태조사가 발표되던 날, 조사 총 책임자인 김정수 환경안전건강연구소 소장의 ‘양심 고백’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장점마을과 비슷하게 80여명의 주민 중 15명이 암으로 숨진 남원 내기마을에 대한 과거 조사가 부실했다는 내용이었다. 내기마을은 1999년 마을 뒷산에 아스콘 공장이 들어선 이후 주민 20명이 암에 걸려 이중 15명이 숨졌고, 2015년 역학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환경안전건강연구소는 지난 2013년 내기마을에 대한 자체 조사를 통해 이곳의 라돈 오염 문제를 최초로 알린 당사자이고, 이후 질병관리본부가 벌인 역학 조사에도 일부 참여했다. 그러나 당시 3년간에 걸친 조사는 대기 중 미세먼지, 실내 라돈 농도, 개인의 흡연력 등이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이라는 애매한 결론만 내리고 종료되고 말았다.
1월 6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정수 소장은 “장점마을은 내가 조사 책임자였기 때문에 오염원과 건강 문제의 연관성을 밝혀낼 수 있었지만, 내기마을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에 늘 아쉬움이 남아있었다”며 언론에 문제제기한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장점마을 주민설명회를 하는 날, 모 언론사 기자가 내기마을에 가서 취재를 하면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때 인터뷰한 것이 기사화되면서 내기마을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됐지요. 이번 장점마을 조사 결과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기마을도 다시 조사를 하면 충분히 환경 영향을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돼요.”
환경안전건강연구소가 이번에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 원인이 공장에서 나온 유해물질이라는 것을 입증한 일은 사실 대단한 성과다. 지금까지 환경오염으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있었지만 피해를 구체적으로 증명한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해병으로 기록된 온산병도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았고, 지정폐기물 매립장 건설로 갈등을 빚었던 화성시에서도 기형 가축들이 출생할 정도로 눈에 보이는 피해가 발생했지만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명백한 입증을 하지는 못했다.
환경오염에 의한 건강 문제 입증한 거의 첫 번째 사례
“지금까지 환경 관련한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있었지만 제대로 밝혀진 것이 한 번도 없어요. 그 동안 14건의 건강영향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원인이 밝혀진 적은 없었어요.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크고요. 그래서 저는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향후 주어지는 과제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해결해가고 싶어요.”
김 소장은 내기마을의 경우 아스콘 공장에서 발생하는 오염 물질 조사를 제대로 다시 하면, 충분히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스콘 공장이라는 발생원 조사를 안 하고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에서만 조사를 했기 때문에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산업 안전 전문가는 환경 문제를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가진 인식의 한계였을 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김 소장은 이번에 공장 매연으로 인한 암 발병 피해를 인정받은 장점마을에 대해, 개인별 소송으로 보상을 받기보다는 마을 차원에서 공동체를 복구하는 방향으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동안 환경운동을 하면서 수없이 느꼈던 문제예요. 항상 이런 문제가 생기면 결국은 공동체가 파괴되고 서로 싸우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지금 장점마을도 민사소송으로 가게 되면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개개인이 다 다른 보상액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오염원에 노출된 정도나 건강에 피해 입은 정도가 다 다르니까요. 그러면 싸움은 같이 했는데, 혹은 내가 더 열심히 했는데, 별로 참여 안했던 누구는 더 많이 보상을 받았다 그런 식으로 분열이 일어나죠.”
김 소장은 익산시가 이미 공장 부지에 공원을 설립하기로 했으니까, KT&G의 지원을 받아서 금연공원을 조성하고 교육관과 카페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지역 농산물도 파는 식으로 마을공동체 차원에서 이곳을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향후에도 환경성 질환에 대해서는 분열과 싸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개별적인 보상보다 공동체 중심의 보상으로 가는 것이 훨씬 낫고,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그는 말했다.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환경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그의 이력이 궁금했다.
“연구소를 설립하기 전에는 환경운동연합에서 18년간 근무했어요. 1993년에 환경운동연합이 출범하기 전에 1988년 공해추방운동연합이 설립되었는데, 저는 공추련 때부터 활동을 했었어요. 학교 다닐 때 농생물과 내에서 전공 소모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들어서 활동했고, 1989년에 공해추방운동연합에 대학생 회원 조직으로 가입했죠. 그때 그 모임을 같이 했던 친구들이 지금 환경 분야에서 많이 일하고 있어요.”
2013년에 협동조합으로 설립된 환경안전건강연구소에는 현재 세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그밖에 많은 교수와 연구자들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소장 자신은 환경운동연합 자연생태위원장 직을 함께 맡고 있고, 협성대에서 지역개발 도시행정 전공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대학원은 농생물학과에서 곤충생태학을 전공했는데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하면서 200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을공동체 살리는 방향으로 보상 이루어져야”
“제가 환경 문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 복무 시절이었어요. 1사단에서 철책 근무를 했는데, 앞으로는 개성, 뒤로는 63빌딩 꼭대기가 보이는 곳이었죠. 철책선 뒤로 전차 도로를 내느라고 산을 무지막지하게 깎아놓은 모습, 그리고 그 주변에 매설된 엄청난 양의 지뢰로 자연이 훼손되는 것을 보고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어요. 그것이 다 전쟁을 위한 시설들이잖아요. 남북 분단으로 인해 사람도 비극을 겪지만, 자연도 비극을 겪는 거죠.”
그 뒤에 생태학 소개서 등 책을 찾아 읽고, 복학 후 전공소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대학생이라면 대부분 민주화운동을 하던 80년대였고, ‘환경운동’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을 때였다. 변절자 운동이니, 부르주아 운동이니 하는 오해의 시선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당시 환경운동을 시작한 이들이 지금의 우리나라 시민운동을 개척한 1세대들이다.
“저는 전라북도 전주 출신이에요. 전주 중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는데 그때 주임 신부님이 문정현 신부님이었어요. 신부님이 일요일 미사에 강론하시고 잡혀 들어가서 수요일쯤 다시 나와서 성당 일 보시곤 했어요.(웃음) 그때 저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성당에서 광주 일지를 등사기로 밀고 그랬죠. 감수성 예민하던 시절에 문 신부님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던 것 같아요.”
83학번으로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서울 명동성당 청년연합회에서 활동했다. 1988년에는 그의 인생에서 잊지 못할 일을 겪기도 했다. 명동성당 청년회 활동을 같이했던 1년 후배인 조성만 열사(서울대 화학과 84)가 명동성당에서 할복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던 그는 군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지금도 망월동에 가면 그는 옛 친구의 묘비를 찾는다.
“환경운동을 했다고 해서 민주화운동 쪽에 담을 쌓았던 것은 아니에요. 공해추방운동연합 활동을 하던 시절에는 집회, 시위에도 많이 참여했고 공추련 차원에서 최루가스의 유해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급속한 경제 개발과 함께 심각한 환경 문제가 누적된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민주화운동 못지않게 환경운동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어요. 70년대부터 시작된 공해 문제, 무분별한 골프장 개발, 굴업도 핵폐기장 문제, 동계올림픽을 빌미로 대규모 개발이 계획된 무주리조트 사업 등 산적한 환경 문제가 저를 이 길로 이끌었죠.”
군 복무 시절 환경파괴 심각성 느끼고 환경운동의 길로
현재 환경안전건강연구소가 주력하고 있는 일은 경북 봉화에 있는 석포제련소 문제다. 석포제련소는 우리나라에 아직 환경법이 정비되지 않은 1970년에 낙동강 최상류에 설립되었고, 이곳에서 흘러나온 물이 1300만 시도민의 식수원이 되고 있다. 60년대 일본에서 카드뮴 중독으로 ‘이따이이따이병’이 발병하자 한국으로 넘어온 공해산업으로, 지난 50년간 낙동강 오염의 주범이 되어온 곳이다.
“2013년 연구소 설립 당시 우리가 그곳에 가서 시료 채취하고 조사를 했고, 중금속 오염이 심각해서 2014년에 기자회견을 하고 그해 국감에서 문제제기가 됐어요. 그래서 예산 15억을 들여 조사를 했는데 환경부의 관리 소홀로 제대로 조사가 안 되고 어설픈 보고서가 나왔죠. 그 뒤에 그 보고서에 대해 다시 문제제기를 해서 낙동강상류환경관리협의회가 만들어졌어요.”
김 소장은 현재 낙동강상류환경관리협의회 총괄TF 분과장을 맡아서 여섯 개 분야의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산 25억 원이 편성됐는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예산 승인을 해주지 않아 작년에는 이마저 없는 상태에서 일을 진행해야 했다. 석포제련소는 황산, 아연 등 생산으로 매년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기 때문에 정치인들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1992년 리우환경협약을 계기로 우리도 1993년부터 ‘공해추방’에서 ‘환경’으로 용어가 바뀌었어요.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용어가 아니라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요한 순간이었지요. 리우를 통해서 ‘환경 거버넌스’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용어가 처음 나왔는데 처음엔 그걸 이해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전까지는 민중의 관점에서 적대적인 관계로 바라보던 정부나 기업을 협력의 대상으로 보는 개념이었으니 낯설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는 서로 대립해서 싸우는 갈등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1993년에 ‘공해추방시민연대’에서 ‘환경운동연합’으로 이름이 바뀔 때 일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떨어져나가고, 환경운동연합이 지금까지 왔다.
전문가 뛰어넘는 ‘현장 전문가’로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
“저는 환경운동과 함께 청춘을 보냈고 지금까지 평생을 해왔어요. 여태껏 수많은 현장을 봐왔기 때문에 그 축적된 현장 경험을 잘 살려서 제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것의 첫 시작이 이번에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을 규명해낸 일이라고 봐요. 1번은 장점마을, 2번은 석포제련소, 3번은 내기마을 문제를 규명하는 것으로 나름 방향을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보통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김 소장은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전공 분야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만큼만 보는 한계 속에 매몰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를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을 다 조사할 수 있는 현장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분석 수준이 과거에 비해 굉장히 높아졌어요. 신뢰할 수 있는 분석 기관도 있고. 과거에 비해 환경 문제들을 입증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졌다는 얘기죠.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온갖 방면에서 엄청난 공격이 들어오기 때문에,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는 데이터가 있어야지 안 그러면 금방 깨져요.”
이번 장점마을 문제도 환경부에서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어려운 검증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과정에서 크게 흔들림 없이 왔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자신감이 많이 생긴 계기가 되었다고 그는 말했다.
환경안전건강연구소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올해는 여수 산업단지에 대한 환경 노출 조사 계획이 잡혀 있고, 제도적 여건이 된다면 지나간 것 중에 해결되지 못한 온산병 문제도 다루고 싶다고 김 소장은 말했다. 환경 문제는 우리의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임은경 _ 대학 졸업 후 인터넷 신문 ‘민중의소리’ 기자로 일했다. 남보다 조금 더 잘하고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이 글쓰기여서, 아무래도 이것이 평생의 업이 되지 싶다.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안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이 있다.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는 선구자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atree12fly@daum.net)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