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이 ‘김상진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독립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100분 분량의 다큐와 극을 결합한 영화이다. ‘최종 산출물도 중요하지만 제작 과정 또한 영상의 시대에 더할 나위 없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는 안 소장은 페이스북과 크라우드펀딩 ‘오마이컴퍼니’ 홈페이지를 통해 지금까지 20여 건의 제작 소식을 올리며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SNS에 올린 그의 이야기를 갈무리해 독자들과 김상진 영화 제작 소식을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2020년 1월 14일
영화 <1975.김상진>은 다큐+연극이다.
스물여섯, 짧은 생애를 살다간 상진 형이 남긴 기록은 최후의 양심선언문 낭독 육성과,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장과 연애편지 등등이 다다. 나머지는 ‘미루어 짐작’이다. 엄혹한 시대와 목숨을 던져 저항해야 했던 김상진 사이에 놓여있는 유·무형의 정황들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세상이 만들어낸 흔적, 가족, 함께한 친구 선후배들의 기억에서 실마리를 찾아 ‘짐작’,‘정황’을 ‘극(드라마)’으로 연출하려는 것이다.
상진형의 고뇌와 결심, 망설임, 애틋함, 그 나이 때 하염없이 누리고 싶었을 여러 가지 것들……. 길게 보면 60년대 후반부터 1975년 4월 11일 할복의거, 그리고 다음달 5월 22일 오둘둘 관악캠 장례식까지. 짧게 보면 1975년 4월 1일부터 11일까지의 열하루. 그 기간에 상진 형의 내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학우의 죽음에 분노하고 되새김하며 민주를 위해 헌신한 선·후배들이 시위와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주고받은 눈빛들……. 그리고 상진형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세상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CBS기독교방송으로 할복자결 현장의 저 절절한 육성을 접했던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문재인 대통령도 ‘책 운명’에서 베트남 승려들처럼 목숨을 바쳐야 독재정권이 무너지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시점에 김상진 형이 할복 자결했다고 회고한다. 상진 형이 남긴 갈망은 남겨진 자들에게 흘러들었다. 40여년이 지나 촛불시민혁명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런 ‘짐작’과 ‘생각’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영화<1975.김상진>이다.
제작팀은 내일 열사의 큰형님 김상운님과 자취생활을 함께 했던 1년 선배 조봉환선배의 인터뷰 촬영을 분당과 용인에서 진행한다. 저녁에는 서울에서 aT사장 이병호 선배 초청으로 ‘한얼’모임에 참석해서 열사와 한얼에 얽힌 이야기들을 건져 올린다.
모레는 입학하던 해 시위현장에 참석했다가 눈앞에서 상진형의 의거를 눈앞에서 목격한 상록학보사 취재기자였던 김창순 선배와 이병호선배의 인터뷰 일정이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나는 ‘김상진의 인문’, ‘상진형이 남긴 무늬’를 찾아다니는 중이다. 그 와중에 드는 생각. 무엇을, 어떻게 따져보아도 다큐멘터리(Documentary)는 ‘기록’이다. 전태일, 김상진, 장준하, 박종철 등등 세상에 없는 사람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생각’과 ‘미루어 짐작’을 파고들고 또 파고들면서 솔솔 느껴지는 정감 하나. ‘사랑’이다.
다큐멘터리는 그 대상을 사랑해가는 과정이다.
2020월 01월 09일
첫 번째 인터뷰. 안종건 (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고속터미널 근처 신반포에서 회의룸을 하나 빌렸다. 3시에 안종건 선배님을 만나 인터뷰하는 날. 장영철 감독이 촬영장비와 조명기구들을 세팅했다. 빵을 먹으면서 좌담회 겸 인터뷰 시작. 내가 묻고 선배가 답하는 방식으로 자유로운 토크. 마이크 붙여드리고 카메라 2대로 선배님께 포커스를 맞추었다.
안종건 선배는 축산과 68학번으로 김상진 열사와 보성고 서울대 동기동창이다. 열사가 의거하기 전날(1975년 4월 10일) 오후 7시에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김상진기념사업회 출범 준비위원장부터 출발해서 13년간 회장으로 일하면서 오늘의 김기사를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 열사와 학창시절의 추억
– 돌아가시기 전날 나눈 이야기들
– 평범했던 친구가 죽음을 결행하기까지의 여정
– 병원에서의 아픈 장면들
– 박정희 유신의 악랄성과 김상진과 오둘둘 장례시위사건
– 열사의 연애, 그 당시 대학생활, 이모저모
– 현시점에서 열사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게 될 관객, 청년 등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
2020월 01월 06일
이런 배우 어디 없을까? 상진의 얼굴은 선하고, 풋풋하며, 야물고, 앳되지만 강인한 의지가 엿보이는 얼굴이다. 김상진 역을 맡아 열연 할 배우를 찾습니다.
영화<1975.김상진>은 다큐멘터리지만 극(재연)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김상진 열사의 학교생활, 군대, 자취생활, 러브라인, 의거당시상황, 오둘둘 관악캠퍼스 장례식 상황 등은 배우들이 드라마 형식으로 펼쳐내도록 설계했다.
누가 좋을까? 선하고 풋풋하며 야물고, 앳되지만 강인한 의지가 엿보이는 얼굴. 제작진이 영화를 설계하면서 꼬깃꼬깃 새삼스레 느낀 정감이다. 영원한 스물여섯 청년으로 남은 김상진의 옹골진 삶을 그려낼 배우와 만나기를 고대하고 고대한다.
2020월 01월 04일
[제작일기]김상진의 인문(人文)
인문은 사람이 그리는 ‘무늬’다. 인간의 ‘결(結)’이다. 1월 15일, 김상진 영화 인터뷰 촬영을 시작한다. 열사의 큰형님 김상운 님과 열사와 함께 자취생활을 했던 1년 선배 조봉환(67학번) 님을 분당에서 촬영한다. 여동생 연순 님과의 일정은 추후에 잡기로 했다.
영화 <1975.김상진>은 김상진의 흔적을 찾아 떠났다가 지금으로 돌아와 김상진을 깨어나게 하는 여행이다. 일제 시대 청년·시인 윤동주, 박정희 군부독재 청년·노동자 전태일 그리고 박정희 유신의 청년·학생 김상진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뜻’과 ‘시대의 지향’이 맺히고 옹글어서 터져 나온 존재들이다.
그러니 그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할 때 가족과 그 시대를 곁에서 함께 나눈 사람들과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인터뷰는 김상진이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남겨놓은 기억들. 운명하던 당시의 정권의 대응과 우리 쪽의 또 다른 대응, 시대에 울분을 토하던 상진에게 어깨를 나란히 내주었을 1년 선배.
열사의 26년과 이후 40여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흘러내렸을 추억, 속내, 다짐, 회한, 희망을 만나는 일이다. 그 생생하고 뭉클한 그 시대 그 시점, 두 손을 움켜쥐게 만드는 서사를 영화로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연결통로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왜 김상진 영화를 만들려고 하세요?”
“너무 먼 과거의 일 아닌가요?”
나는 답했다.
“내 인생의 인문(人文)이거든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 분 아닌가요?”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며 무릎 꿇고 살지 말라는 26년간의 온·삶은 260년 아니 2천6백년이 지나도 그 시대 사람들의 영혼을 격려하고 있을 테니까요.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분당에 가는 이유다.
2019월 12월 29일
어떤 상징
백골 3사단에서 예전 별 넷보다 높은 오성장군 병장을 달았다. 약간 목에 힘을 주며 살다보면 마침내 제대날짜가 다가온다. 후임소대원들은 추억록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축 제대’ 작은 깃 하나 제작해주었다. 그것을 받는 것은 남은 후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자 부러움의 극치였다. 내무반 막사를 떠나오던 날 전우들과의 이별은 덩치 큰 내게도 ‘울컥울컥’ 100%였다. 병장 안병권, 1985년 8월 제대.
상진 형은 1971년 가을 입대해 훈련을 마치고, 경기도 포천 공병대대에 자대배치 받았다. 제5039~8932부대였다. 상진은 우여곡절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1974년 4월 27일 만기 병장제대 한다. 상진 큰형님(상운)으로부터 받은 유품 보따리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누런 비닐 커버를 벗겼다. 46년의 세월이 무색하다. 샛파란 색깔이 형광빛을 받아 싱그럽다. 짙은 정감을 불러 세운다. 병장 김상진이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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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콜록!
내무반에 유난히 기침이 심한 병사가 한 명 있었다. 얼굴도 유난히 창백하고, 식은땀도 자주 흘려 훈련 때도 매번 고통스러워하던 후임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 병사의 기침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침상 위에서 30여명이 좁은 막사에서 일렬로 누워 잔다. 힘든 하루 일과를 끝내고 숙면에 빠져들어야 할 병사들은 화를 냈다.
“야, 잠 좀 자자 잠 좀”
“허구헌 날 이러면 군대 3년 어떻게 견디겠노?”
그럴 때마다 후임은 내무반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상진은 얼른 따라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하얀 달빛 아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는 후임병이 보였다. 가만히 다가가니 입가에 시뻘건 피가 묻어 있는 게 아닌가? 섬뜩했다.
상진은 그로부터 내막을 들을 수 있었다. 결핵이었다. 그렇지만 집이 너무 가난하여 약을 사먹을 형편이 아니었다. 상진이 관념적으로 생각하던 민중의 현실을 또 한 번 목격하는 셈이었다. 사회의 불평등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질기고 질긴 칡넝쿨처럼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진은 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휴기를 나가 어머님께 사정을 이야기했고 동생들의 저금통도 털었다. 가뜩이나 버거운 살림이지만 병든 전우를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부대에 들어가 약값에 보탰고, 직접 죽도 끓여주면서 후임병을 친절히 보살폈다.
몇 년 후, 어느 날. 상진의 집으로 한 청년이 찾아왔다. 마침 집에는 어머니 박재연만 있었다.
“군대 있을 때 상진 선배님 덕분에 제가 살아났습니다. 아무도 아픈 제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상진 선배가 저를 따뜻하게 감싸주었지요. 그 덕에 저는 살아났습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박재연은 새삼 아들 상진이 자랑스러웠다.
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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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영화<1975.김상진>에서 중요 장면으로 소개된다. 상진의 군대생활은 엄혹한 박정희 유신정권, 70년대의 시작점이었고, 동시에 군대 내 불합리와 부정투표를 포함하여 70년대를 오롯이 살아내면서 싹트기 시작한 ‘김상진 깨달음’의 출발선이기 때문이다.
2019월 12월 27일
1차 펀딩목표 달성했습니다.
오늘 27일, 오전 10시 현재 2,021만원으로 101% 올라왔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저희 제작진은 여러분이 모아주신 그 뜻을 김상진 형의 뜻과 같이 받들어 엎드려 두 손으로 받겠습니다. 치밀하고 재미있게 시대정신을 표현하겠습니다. 본 영화는 크라우드펀딩과 특별후원으로 제작합니다. 제작비는 마케팅 포함 1억으로 설계했습니다. 제작진은 두 가지를 결정합니다.
1. 목표기 이뤄지니 주변 분들이 제안을 해오셨습니다. 늦게 동참하려는 분들이 있고 영화 홍보를 위해서도 이 펀딩 공간을 내년 1월말까지 마음 편안하게 열어 놓아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하여 12월 31일자로 2020년 1월 31일까지로 연장하려고 합니다.
2. 내년 6월이면 제작을 완료하고 영화 윤곽이 나옵니다. 후반작업 및 배급 일정이 나오면
홍보·마케팅을 위한 시연회, 상영회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때 “영화 <1975.김상진> 이렇게 만들었어요”를 주제로 ‘2차 펀딩(김상진과 지금의 만남)’을 설계하려고 합니다.
나날이 즐겁고 복된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2019월 12월 22일
서울대민주동문회 송년모임 김상진 영화 제작 설명회
12월 20일 저녁,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서울대민주동문회 송년모임에서 영화 <1975.김상진>을 설명하고 후원펀딩을 요청하는 기회를 가졌다. 자료화면을 제공해준 김기사 손영 후배님과 소개 기회를 준 서민동 집행부에게 뜨거운 감사인사 드린다.
후원금 사용계획
영화<1975.김상진>은 드라마(재연) 분량이 많아 일반 다큐멘터리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갑니다. 1억(마케팅 및 예비비포함)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작비는 크라우드펀딩과 특별후원금으로 충당할 계획입니다.
1차 펀딩 목표금액은 2천만 원입니다. 목표가 달성되면 제작 우선 순위를 정해 집행해나가겠습니다. 펀딩 성공율이 3백, 4백 프로에 달해 마음먹은 대로 영화제작과 배급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급하게 마음먹지는 않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사전조사와 자료점검, 시나리오작업까지 마무리했습니다. 12월부터 인터뷰 촬영 들어갑니다. 차곡차곡 진행하겠습니다.
제작비 항목
-사전기획비
-제작인건비(연출, 조연출, 성우료)
-촬영인건비, 장비료(다큐카메라, 극카메라, 조명, 동시녹음)
-극드라마 제작(주연, 조연, 단역, 헤어메이크업, 장소대여 등)
-진행비
-임차료(종편실,녹음실, OAP, CG, 차량)
-음향·영상재료비
-후반부작업
-마케팅 및 예비비
캐스팅, 캐릭터, 장소섭외, 인터뷰촬영 등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은 프로젝트 페이지 ‘최근 소식’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실상황 안내드리겠습니다.
제작 일정
2019년 10월 ~ 시나리오 작업완료
2019년 12월 ~ 펀딩 및 제작발표회
2019년 12월 ~ 다큐멘터리, 인터뷰 촬영 시작
2020년 03월 ~ 드라마 부분 촬영 시작
2020년 05월 ~ 편집 및 후반부 작업
2020년 하반기 ~ 제작 완료, 개봉 및 일반 상영
안병권_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세상에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