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양 (담우 연구홍보부장, 농학 86)
2급천문지도사 자격증을 가진 나는 ‘천문’이라는 영화가 나오자마자 놓치지 않고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주에 아내는 바빠서 나 혼자 가서 보고 왔다. 부제로 ‘하늘에 묻는다’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따로 찾아 보았더니 우리가 아는 천문의 한자어는 원래 생각한 대로 ‘天文’이었다. ‘하늘에 묻는다’로 생각하면 ‘天問’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평소에 천문은 ‘天聞’이라는 생각을 더 하는 편이다. 가끔씩 하늘을 보면서 무언가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으니까,
이번에 무슨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내가 별을 보는 취미를 갖게 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천문’이라는 영화도 나왔고, 올해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의 일이기도 해서 그렇다.
처음으로 밤하늘의 별을 인지한 것은 아주 어렸을 때 초저녁에 잠자러 가기 전이나 새벽에 잠이 깨어 감나무 아래에서 ‘쉬’를 하면서 올려다 본 하늘이었다. 약간 멜랑꼴리한 기억은 중학교 국어 수업시간에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단편소설을 배우면서 별을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가끔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고르면서 지나친 그리스․로마신화와 별자리에 관한 책을 본 것이 전부다. 그렇게 평소에 별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있었다.
2012년에 명퇴를 하고, 2015년에 다시 고흥군농업기술센터에 취직을 하여 고흥군청의 일원으로 일하던 차, 2016년 3월쯤 열람하던 공문 중에 눈이 가는 것이 있었다. 천문지도사3급 연수를 청소년문화의집에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별자리 해설, 천체망원경, 천체사진 촬영 등이 있었다.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30명 모집에 아직 2자리가 남았다고 하여 부랴부랴 접수를 하고 5회에 걸쳐 연수를 받았다.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0.3mm 크기의 귤녹응애를 찾아 유자밭을 돌아다니고, 병든 유자나무 잎을 들고 실험실에 들어와 현미경으로 쳐다보던 내가 지구, 태양계, 성운, 성단, 은하, 우주 등 커도 너무 큰 대상을 생각하게 된 것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렇게 micro한 세계에서 macro한 세계로 시야를 넓히니 나 스스로 큰 도인이 된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크고 작은 일에 아등바등하며 살아 왔던 과거가 부끄러워지기도 하였다.
나중에 알았는데, 연수를 받게 된 것은 경제적으로도 큰 횡재였다. 원래 개인이 천문지도사3급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각 지부에서 진행하는 40시간의 연수를 받고 실기점수를 획득하고 나서 연수 후에 필기시험을 또 통과해야 한다. 그 당시 연수비는 대략 25만원인데 고흥군청에서 지원해주었다. 또 원래는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 지부에서 진행하는 곳에서 연수를 받아야 했으나, 이번에는 고흥군에서 주관하여 진행하였으므로 고흥군에서 앉아서 받을 수 있었다. 다섯 번의 연수를 모두 마치고 2016년 11월 거창군에서 본 필기시험을 통과하여 자격증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3급 자격증까지만 취득하고 말았으면 그냥 취미 수준으로 일단락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분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대부분의 학교에는 과학실에 천체망원경이 먼지에 싸인 채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때 왠지 모를 의무감이 생겼다. 아마추어이긴 하지만 천문지도사로서 학생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었다. 지구, 달, 태양, 행성, 우리 은하, 외부 은하, 우주 등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3급으로는 부족한 생각이 들어 이듬해 2017년에 바로 2급 연수에 지원하였다. 전국적으로 25명이 지원하여 5회에 걸쳐 진행하였다. 연수는 3월부터 약 1달에 한 번씩 보름달이 뜨는 날을 피하여 주말에 홍천, 영양, 대전, 산청, 보성 등 전국적으로 별보기 좋은 곳에서 진행하였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아내와 함께, 때로는 공군으로 군복무 중이던 둘째아들과 함께 다섯 번 모두 빠지지 않고 참여하였고 11월에 필기시험을 통과하여 2급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자격증을 취득하였지만 아무 쓸모도 없었다, 그냥 취미생활을 하면서 지적호기심으로 객기를 부린 것만 같았다. 2018년까지는 그랬다. 아니 사실은 2019년 10월까지도 그랬다. 물론 간간이 2급 연수를 진행하는 데에 도움을 주면 참여수당으로 10만원의 수당을 받기도 하였지만 경비는 20만원 이상이 드는 적자인 봉사활동을 주로 하였다.
하지만 지난 2019년 9월 문경의 어떤 모임에서 천문지도사 자격증을 이용할 첫 번째 일이 생겼다. 올해 8월에 대구대학교를 정년퇴직하신 교수님, 내년 1월에 인하대학교를 정년퇴직하시는 교수님, 5년 후 숙명여대를 정년퇴직하실 교수님. 이렇게 세분이 별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것도 고흥에서면 더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장 달력을 보고 음력 초사흘에 해당하는 11월 29일에 전남 고흥에서 별을 보기로 결정하였다.
고흥군청 청소년문화의집 4층의 강의실과 옥상을 임대하여 난생 처음으로 천문 강의를 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내려오신 세 분과 고흥에서 ‘사람책’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책 회원 열 분과 함께 하였다. 먼저 해가 진 직후 옥상에서 목성, 금성, 달, 토성이 나란히 보이는 가끔은 있지만 제법 보기 드문 천문현상을 보고 나서, 강의실에서 짧은 천문 강의를 진행하였다.
짜릿하고 살 떨리는 경험이었다. 2016년 천문지도사 3급 연수를 받으면서 보기 시작한 하늘 중에서 가장 좋은 하늘이었다. 초저녁에 해가 지면서도 별이 보였고, 밤 동안에도 계속 별이 총총히 보였을 뿐만 아니라 새벽에도 별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에 서울에서 오신 분들을 펜션에서 깨워 새벽별을 보여 드렸더니 너무너무 좋아하셨다. 내친김에 고흥의 동쪽 바다로 가서 일출을 보았다. 세 분 모두 60대 초․중반의 여성이셨는데, 18세 소녀 같았다.
뒤이어 12월 21일에는 친구들에게 고흥의 밤하늘을 보여 주었다. 제주에서 한 명, 부산에서 한 명, 광명에서 두 명, 양주에서 두 명, 서울에서 다섯 명 정도가 모였다. 그들에게 내가 직접 무굴밥을 해서 저녁으로 대접하고 소주 한잔을 함께 하였다. 하늘이 하루 종일 흐려서 별보는 것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술자리 후 잠깐 살펴보니 드문드문 별이 보여서 친구들을 독려하여 부랴부랴 구름 사이의 별들을 보여주었다. 많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친구들은 난생 처음으로 별들의 이름을 들어 보았다며 즐겁고 고마워하였다.
지난해 3개월을 자유롭게 보내다가 4월부터 9월까지 참기름, 들기름을 생산하는 와포햇살영농조합이라는 사회적기업에서 전문인력으로 일했다.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는 또 쉬다가 다음 달부터는 담우라는 사회적기업에서 다시 전문인력으로 일할 예정이다. 이 기업은 주로 나물류를 장아찌로 담아서 또는 건나물 형태로 판매하는 일을 한다. 큰 부담이 없는 일을 하게 되어 올해에는 ‘천문과 농업’을 주제로 농업인을 대상으로, ‘별자리와 그리스신화’를 주제로 학생을 대상으로 이야기할 시간을 많이 가져볼 생각이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 시간에 그러한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어쩌다가 내가 천문지도사가 되어 우주는 한도 끝도 없이 넓고 크지만, 나 자신도 우주에 버금갈 만큼 큰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지난 몇 년이 보람차고 즐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어느 순간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별이 궁금해지는 분들이 계시면 생각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주저 없이 전화를 걸어 무슨 별이냐고 또는 무슨 별자리에 해당하느냐고 물어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PS : 저는 많이 자유로운 편입니다. 아무 시간대에나 전화주시면 별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답니다. 맑은 날 밤에는 거의 매일 하늘을 바라봅니다. 동서남북만 확인하시고 전화주세요. 010-3832-1668.
PS 2 : 고흥을 비롯한 남해안 여행을 하실 때에도 연락 주시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정양_ 두 차례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지난해 와포햇살영농조합법인에서 연구부장으로 근무하며 중학교 텃밭교육 및 귀농인과 청년농업인 컨설팅을 했습니다. 종자기술사, 농화학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자격증과 천문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장아찌와 건나물을 판매하는 사회적기업 담우에서 전문인력으로 일합니다. (ljycby@daum.net)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