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23 오후 119호(2020.01)

실화소설 ‘과학자’ 6
대통령의 방문

노광준 (경기방송 편성제작팀장, 농화학 88)

***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과학은 실재하며, 8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확증된 사실관계들에 충실하였습니다.

#14. 대통령의 방문

2003년 12월 10일, 서울대병원 임상의학연구소. 청와대 휘장을 단 리무진들이 경찰 사이드카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온다. 서울대 총장과 강한우를 비롯한 수십 명의 교수들이 도열한 가운데 무전기를 든 경호원들이 길을 만들고, 차안에서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내린다. 노 대통령은 서울대 총장에게 악수를 건네며,

“총장님, 오랜만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대통령님.”

“오늘 바이오 공부 좀 하려고 왔습니다. 근데, 제가 가방끈이 좀 짧아서 쉽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을…….”

뼈있는 농담이었다. 대통령은 특히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엘리트들이 ‘고졸 출신 대통령이 나라 망친다’며 자신을 비난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대통령님, 이쪽이 강한우 교수이고, 이쪽이 서울대 병원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병원장님. 노무현입니다. 강 교수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은 특히 한우의 손을 잡을 때 따뜻한 눈빛으로 환하게 웃었다.

“영광입니다, 대통령님.”

한우는 다소 긴장된 얼굴로, 최선을 다해 노 대통령 내외에게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설명했다.

“지금 보시는 검정색 송아지들은 단순한 복제소가 아니라 광우병 원인물질로 지목되는 ‘프라이온’ 단백질의 발현을 억제시키는 유전자가 삽입해 복제한, 형질전환 복제소들입니다.”

“광우병에 대해 내성을 지닐 수 있다, 이 말입니까?”

“그럴 것으로 기대는 하지만 임상실험까지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임상시험은 어디서 합니까?”

“국내에선 못하고, 임상시설이 갖춰진 일본의 쯔꾸바 연구소에서 저희 소를 데려가 실험 해볼 예정에 있습니다.”

“(끄덕끄덕)”

일명 광우병 내성 형질전환 복제소를 살펴본 대통령 내외는 장기이식용 무균 돼지 인큐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여성 연구원이 무균 상태에서 조작되는 인공 손을 이용해 돼지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얘들은 사람의 장기이식에 쓰일 수 있도록 연구하는 무균 돼지입니다. 미니 돼지라서 다 자랐을 때 장기 크기가 사람의 것과 비슷하고,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해 무균상태에서 사육하고 있습니다.”

“허허, 신기하네요. 그럼 이 녀석들이 사람에게 간이나 콩팥을 줄 수 있는?”

“예, 아직 면역거부반응 극복 등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옆에 있던 서울대 병원장이 부연설명을 한다.

“장기이식을 원하는 환자에 비해 기증 사례가 턱없이 부족해서, 이렇게 바이오장기를 이용해 최소한 촌각을 다투는 위급 환자들에게 단 몇 개월이라도 이식할 수 있다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강한우에게,

“강 교수님, 이 분야는 선진국과 어느 정도 간격입니까?”

“미국과 호주가 제일 잘하는데, 저희가 많이 좁힌 상태입니다. 복제 효율은 저희가 제일 높구요.”

“연구지원은……, 충분합니까?”

“예^^”

대통령은 강 교수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빙긋 웃으며,

“어느 정도까지 정부가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한우는 손사래를 친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생명공학 분야가 가능성은 많은데 불확실한 게 많아서 지금처럼 스텝바이스텝(단계적 지원)으로 충분합니다. 저희가 열심히 해서 성과로 보답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듣자하니 비공개 연구 성과가 있다고 하던데요?”

“아, 예. 이쪽으로 오시죠.”

강한우는 열 평 남짓한 줄기세포 실험실로 노대통령 부부를 안내했다. 너무 좁은 공간이었다. 경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청와대 경호팀과의 협의 아래 줄기세포 실험실 안으로는 강한우 교수와 대통령 내외, 그리고 경호팀장만 들어갔다. 찰칵, 문이 닫힌 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더는 못 들어가십니다.”

청와대 경호팀원들이 대통령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던 서울대 총장과 보직교수들을 제지하자, 총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총장을 보좌하던 보직교수가 볼멘소리로 항의한다.

“이보세요, 서울대 총장님이십니다.”

“죄송합니다. 장소가 워낙 비좁아서 더는 들여보내지 말라는 윗선 지시입니다. VIP 경호상의 문제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나 원 참……. 이렇게 홀대하니 밖에선 지금 정부가 서울대 없애려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거 아니요…….”

그때 총장이 퉁명스레 한마디 한다.

“그만들 하시게. VIP 뜻이 그러면 그런가보지.”

그러자 보직교수들의 화살은 강한우에게로 쏠린다.

“아니 강 교수도 그렇지, 총장님 먼저 챙겨야할 것 아닌가.”

“잘 나가는 스타 교수인데 바쁘겠지…….”

한편 실험실 안에서는 노 대통령이 현미경으로 NT-1(줄기세포)을 관찰하고 있었다.

“논문은 언제쯤으로 예상합니까?”

“<사이언스> 측에선 빠르면 내년 2월쯤으로 잡고 있고, 표지논문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과학자들이 사이언스 표지를 장식한 적이 있던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은 강한우의 겸손함이 맘에 들었는지 나지막이 귀띔했다.

“제가 이 분야에는 문외한이지만, 뭐든 길을 처음 내는 사람이 욕도 제일 많이 먹고 태클도 많습디다. 세상이 그럽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렇게 길을 내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따라만 가서는 안 됩니다. 강 교수님, 앞으로 정부가 도울 수 있는 게 뭐가 있는지 저도 고민해볼 테니, 연구팀에서도 의견 주세요. 허심탄회하게…….”

“명심하겠습니다.”

문이 열리며 대통령이 걸어 나온다. 기자들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에워싼다.

“대통령으로서 이례적으로 첨단 연구 현장을 둘러보셨는데, 소감이 어떠십니까?”

그러자 대통령은 간결하게 말한다.

“여러 연구자들의 실험과정을 보면서, 이건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고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대통령으로 특권을 누리지 않았는데 오늘 이 보람 있는 자리에서 직접 확인한 게 흐뭇한 특권이었습니다.”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또 다른 기자가 대통령에게 물었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 원동력으로 과학기술을 강조해오셨는데, 오늘 그 희망을 보셨는지요?”

그러자 대통령은 빙긋 웃으며 농을 던졌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도 발명가입니다, 고시공부 하다가 책을 오래 봐도 목이 덜 아픈 독서대를 만들어가 실용신안 특허까지 받았는데 돈은 안 되더라고요.^^ 근데 그런 시도들이 쌓여서 지금은 정부의 모든 행정기록물을 전자결제 처리할 수 있는 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을 개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그 특허가 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와서 보니까 이 연구팀도 참 많은 시도를 부지런히 하고 있는 것 같습디다. 실패도 많이 했을 테고 또 얼마나 남모를 고충이 있겠습니까. 결국엔 그런 도전과 실패가 세계를 놀라게 할 큰 성공의 밑거름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 도전과 실패를 지원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돕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뜨거운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모두들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기념촬영이 시작되자 젊은 연구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실험복을 입은 노 대통령 내외는 ‘김치’ 하며 연구자들과 어깨동무한 채 인증샷을 찍었다.

#15. 슈퍼맨의 절규

2004년 1월, 미국 뉴욕의 학술회의장. 저명한 신경과학 분야 학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슈퍼맨의 연설이 시작됐다. 휠체어에 몸을 기댄 채 박수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던 크리스토퍼 리브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토해낸다.

“저는 살아있을 때 혜택을 보길 원합니다, 75세가 되어 이 훨체어에서 벗어나기를 원치 않아요. 나는 51세이며 지금 아주 건강합니다. 당장이라도 휠체어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나는 내가 죽은 뒤에야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연구를 지지하는, 그렇게 고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침 넘어가는 소리조차 크게 들렸다. 리브는 정적을 깨고 저명한 신경과학자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당장이라도 과학자 여러분들의 사전에서 ‘불가능’이란 말을 지웠으면 합니다. 내 믿음은 과학에 있습니다. 오늘밤 여러분이 퇴근하시는 길에 신경병동이나 재활의학센터를 들러보세요. 그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재활의 몸짓을 마주치게 될 겁니다. 침상위에 누워서, 팔을 움직이려하거나 손가락이라도 까딱거리려 하거나 죽을힘을 다해 앉아보려고 애를 쓰는, 그들의 그 간절한 꿈과 희망을 가슴에 담고 다음날 아침 연구실로 향해주세요.”

정적이 흘렀다. 몇몇은 고개를 푹 숙였고 몇몇은 쑥덕였으며 슈퍼맨은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6. 세상의 중심을 향해

2004년 2월 11일 밤, 태평양 상공 위를 날고 있는 대한항공. 비행기는 까만 밤하늘을 가르며 미국 시애틀로 향하고 있었고, 거의 모든 승객들이 담요를 덮고 잠들어 있는 가운데, 강한우는 독서등을 켜놓고 노트북 자판을 또닥또닥, 두드리고 있다. 지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생의 1기를 마감하며…….”

“존경하는 정 교수님, 지난 1주일은 정말 긴박하고 바쁜 기간이었어요. <사이언스>와의 마지막 조율, 수많은 언론과의 서면 및 전화 인터뷰……. 이제 10시간 뒤면 미국 시애틀에서 전 세계 매스컴을 상대로 연구결과 설명회를 가집니다. 동시에 <사이언스>지는 온라인으로 우리 논문을 띄울 것입니다. ‘최초의 복제된 인간배아 줄기세포 수립.’ 이것이 그동안 영장류 복제는 원천적으로 안 된다는 불가능의 정설을 뛰어넘은 우리의 논문 제목입니다.

우리의 줄기세포를 직접 본 세계 석학들은 하나같이 ‘당신은 기적을 이루었다’라고 흥분했죠. 반면, 우리 연구를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움직임 또한 만만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10시간 뒤 세계는 우리의 연구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솔직히 저희는 적지 않은 고뇌의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절반 이상 임상의학자로 구성된 연구진이 토론과 검토를 거듭했죠. 결론은, 이 연구를 우려한다면 어떻게 진정한 과학도라 할 수 있겠냐는 거였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전등사에 들러 4백배를 하며 소망했어요. 어떤 윤리적 논란이 우리 앞에 나타나더라도, 이 연구만은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저는 지금 칠흑같이 어두운 태평양을 건너 ‘생의 2기’로 향하고 있습니다. 강한우 드림.”

강한우를 태운 비행기는 구름을 뚫고 세계의 중심부를 향해 날아갔다.

노광준_ 별명 ‘노진구’. 도라에몽에게 늘 민폐만 끼쳐 만화사상 최악의 캐릭터로 손꼽힐 만큼 띨띨하고 존재감 없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우연히 라디오 피디가 되어 20년간 일했음. FM 99.9MHz 경기방송 전 편성제작팀장. 지난해 회사 임원에 대한 공익제보 후 해고되어 현재 복직 투쟁 중.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