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08 오후 119호(2020.01)

교육의 딜레마
새로운 10년, 교육계가 직면한 도전들

황종섭 (서울시교육청 정무보좌관, 지역시스템공학 03)

2019년 한국 사회를 얘기하자면 교육 이슈들이 빠질 수 없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던 사립유치원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제기로 유아교육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연초부터 활발했습니다. 유치원이 의무교육이 아닌 상태에서 유아교육을 대부분 민간 영역에 맡겨놓으면서 잉태됐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사립유치원의 공적 책무를 강조하는 동시에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합의가 모아진 상태입니다.

하반기에는 자사고 재지정 문제와 이른바 ‘조국 사태’로 인한 교육의 공정성을 담보하는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사실 둘은 다른 뿌리에서 나온 문제입니다만, 결과적으로 하나로 묶여 처리된 측면이 있습니다. 특목고·자사고의 제도화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5·31 교육개혁방안’이 발표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비판과 논쟁이 있었지만, 30년 가까이 존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조국 사태’로 인해 교육을 통한 계급 재생산 문제에 시민들의 비난이 집중되면서, ‘5·31 교육개혁방안’이 발표된 지 30년 만에 자사고는 문을 닫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입시 문제 역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도대체 공정한 입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겠다며, 정시와 수시 비율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정부는 정시 비율을 높이는 쪽으로 결론을 냈는데, 이것이 교육 격차를 해소하는 적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대입을 준비하는 모든 수험생들이 똑같은 시험 문제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푸는 것이 그나마 낫지 않겠냐는 절충이 아닐까 합니다. 학종을 도입하고 수시 비율을 점차 높여왔던 이유가 바로 이 지점, 수능의 획일성에 대한 대안이었다는 측면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입니다.

그럼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면 되는 일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2019년 논쟁은 변죽만 울린 게 아니냐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정말 우리 교육이 대비해야 하는 문제들이 아니라, 표면적으로 드러난 현상들을 이렇게 저렇게 무마하는 것에 온힘을 쏟은 것 같습니다. 세계는 거대한 변화 속에 있고, 교육계 역시 이러한 흐름에 민첩하게 대처해나가야 하지만 그런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대입의 룰을 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정시 비중 높이고 특목고, 자사고 폐지

무엇보다 우리는 세계화를 주시해야 합니다. 1995년 ‘5·31 교육개혁방안’ 역시 세계화에 대비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외고와 국제고 등을 설립할 수 있도록 만든 이유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견지명을 갖고 방향을 정확히 설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1990년대 세계화는 이전의 세계화와 다릅니다. 우선 중국, 인도, 구소련 국가들의 엄청난 노동력이 세계 시장으로 쏟아졌습니다. 14억6천만 명의 노동자가 순식간에 29억3천만 명으로 늘어납니다. 리처드 프리먼 하버드대 교수는 이를 ‘그레이트 더블링(Great Doubling; 거대한 두 배)’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세계 노동력이 2배로 늘어난 결과, 각 국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이 극렬해졌습니다.

여기에 정보통신기술(ICT)의 혁신이 기름을 붓습니다. 스위스 제네바 국제경제대학원의 리처드 볼드윈 교수는 첫 번째 세계화는 물류 비용이 낮아지면서 시작되었고, 두 번째 세계화는 바로 ICT 혁명에 의해 지식의 이동 비용이 낮아지면서 질주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급격히 향상된 통신기술 덕분에 복잡한 원거리 활동을 조정할 수 있게” 된 것이, ‘급격히’ 두 배가 된 노동력과 만나면서 세계가 하나의 사슬로 묶이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은 국내에 남지만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 제조업의 경우 노동력이 싼 해외로 이전하게 됩니다. 물론 한국의 산업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변해왔습니다.

이러한 세계화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습니다. 하나는 1차 세계화 때는 국제적 경쟁이 상품 시장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은 개인의 일자리까지 가닿는다는 것입니다. 즉 한국에서 만든 삼성의 스마트폰이 애플의 스마트폰과 국제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1차 세계화의 특징이라면, 지금은 삼성과 애플의 경쟁뿐만 아니라 부품 업체들, 그리고 세계에 흩어져있는 원청과 하청 기업 노동자들까지 국제적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교육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차원에 더해, 한 개인이 국제적인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맡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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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서비스산업의 확장입니다. 과거 서비스산업은 비교역 부문으로써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즉 제조업은 수출이 가능했기에 정책적 지원을 빵빵하게 받았던 반면, 서비스산업은 내수용으로 국제적 경쟁 밖에 있어 관심이 덜했습니다. 하지만 생산이 국제적으로 재편됨에 따라 오히려 단순 제조업 자체의 부가가치가 점점 작아지는 가운데, 생산 이전 서비스와 생산 이후 서비스의 부가가치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제품의 디자인, R&D, 마케팅, 운송, 소매, 법률 등이 생산 전후 서비스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등 과정의 직업교육은 완전히 재고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2025년에 외고가 일반고로 일괄 전환되는데, 그것의 공과는 따로 따지더라도, 과연 현재 교과과정 상의 언어교육으로 우리 학생들이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산업에 적응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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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얘기했지만 요는 우리 교육의 핵심 질문이 대입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ICT 혁명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우리 교육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당장 논의하지 않으면 우리 학생들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학령인구 급감도 시급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미 시작된 학령인구 감소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새삼스레 소망합니다. 새해에는 대학을 어떤 방식으로 가는지가 아니라 전방위적 국제 경쟁과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국내외적 환경 속에서 우리 교육은 어떤 혁신을 이뤄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 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가 대한민국 최대 관심사가 될 수 있기를. 그런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황종섭 _ 2006년 농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몸담았다. 정의당 기획조정실과 대표비서실을 거쳐, 2017년 심상정 캠프 전략팀과 TV토론팀에서 일했다. 이후 2018년 9월까지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