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아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사과정, 농경제 08)
나는 협동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면 2012년이 떠오른다. 농경사 교수님께서 우리나라에도 협동조합법이 시행된다고 강조하시면서 나에게 공부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물론 난 당시에는 공부라는 건 잘 하지 않았던 터라 한 귀로 흘렸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내 관심사에는 항상 협동조합이 있다. 그러던 중 지난 하반기에 기회가 생겨 에너지협동조합에 대한 조사연구를 맡게 되었다. 연구를 시작할 때는 사실 그들의 현황도 어려움도 잘 몰랐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오히려 연구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느낀 것도 많았다.
‘에너지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돈을 공동으로 출자하고 이를 통해 태양광발전소를 세워 그 이익을 다시 조합원에게 배당하는 조합이다. ‘시민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은 그 중에서도 조합원에 대한 기후변화 교육, 지역사회와의 연대활동, 에너지전환을 위한 정책 활동을 하는 적극적이고 유연한 에너지협동조합이다.
시민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은 아직 우리나라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주 작다. 협동조합법이 시작한 2012년 말에서 2013년 사이 처음 여러 개가 설립된 이후, 몇 년간은 그다지 확대되지 못하였다.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규모의 조합들을 만나면서, 이러한 어려움이 근본적인 시스템 문제에서 나오고 있음이 보였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시스템은 하나부터 열까지 대규모, 독점적, 중앙공급적인 기반으로 되어 있다. 지역 희생과 무한한 에너지공급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스템 하에서 소규모의 자발적인 에너지 생산은 자립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역 분산적이고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해야한다는 그들의 노력이 쌓이고 쌓여 중요한 변화들을 만들어내었고, 2018년과 2019년에는 조합과 발전소의 개수가 크게 늘어났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시민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이 37개가 되었다. 큰 흐름을 지켜보면서 나는 참 이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태양광 사업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협동조합을 하면 사업이 잘 되나보다”라는 판단을 해서인지, 에너지협동조합 등록 수는 2018년 한 해 동안에만 2배로 늘어 이제 250개를 넘었다. 이 중에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협동조합의 옷만 입은 곳들도 있다. 그럼에도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운동의 행위자인 시민참여형 조합들의 영향력이 강력해졌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에너지협동조합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협동에 있다. 개개인이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여럿이 함께 한다는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사람들이 선뜻 출자금을 조합에 맡기고, 총회에서 함께 결정하며,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데 공감하고 행동한다. 또한 조합들끼리도 협동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연합회를 만들고 왜 우리와 같은 소규모 에너지공동체가 중요한가, 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가를 스스로 입증한다.
작은 틈새에서 시작하여 전체를 바꾸어 나가는 성공적인 스토리를 보고서로 담아내면서, 한 편으로는 나도 함께 뿌듯하고 한 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비록 작은 조합이지만 어떻게 홍보할까, 교육할까, 그리고 동시에 어떻게 사업을 확장해 나갈까 고심하던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조합원 배당을 하면 자신의 인건비를 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조합원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배당을 한다.
발로 뛴 조사를 마치고 나서 이들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에너지전환이라는 거대한 과제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곳곳에서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가능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고서에는 내가 느낀 감동을 직접 담을 수 없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서를 읽고 조금이나마 그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박선아 _ 농생대 농경제사회학부 지역정보전공 08학번. 길었던 학부생활을 지나 지금은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 농촌, 지역과 사람 간의 관계를 연구하는 박사과정생입니다. (2468nice@gmail.com)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