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3:56 오후 119호(2020.01)

나 이렇게 산다
평생 처음 시험 때문에 울다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작년 12월 8일 한국방송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4학년 2학기 기말시험이 경일고등학교에서 있었다. 5과목을 하루에 보는 것이 몸에 엄청난 무리를 주었나보다. 머리는 4교시부터 멘붕이 온 상태였다. 머리가 하얘진 상태로 객관식 문제에서 잘못된 것을 고르라는 건지, 옳은 것을 고르라는 건지조차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눈은 아프고 머리는 교통정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5교시는 미디어심리학 과목으로 주관식이었다. 주관식이면서 범위가 넓으니까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공부할지 막막했다. 객관식은 몇 년 간의 기출문제 패턴을 보면 어떤 내용이 중요한지 대충 감이 잡혔다. 주관식은 생소한 문제가 나오니까 당혹스러웠다. 수업시간에 힌트를 주지도 않으셨다.

2학기 초에 과목을 보니 미디어심리학이 가장 재밌고 쉬울 것 같았다. 집중적으로 15시간 분량의 강의를 며칠 동안에 일사천리로 시청을 모두 끝냈다. 강의 내용도 재밌고 교수님도 강의를 쉽게 해주셔서 ‘이건 날로 먹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허나 인생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 반평생을 훌쩍 넘게 살았음에도 인생엔 언제든 복병이 숨어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주관식이라니!

“미디어 중독”

아주 여러 번 반복해서 접해본 단어라 머리에 익숙한데도 단어 조합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글자 그대로 멘붕 상태의 머리로 시험을 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다른 학우들은 진즉에 다 나갔는데 혼자만 시험지를 붙잡고 낑낑대고 있었다. 끝까지 생각나지 않는 문제로 고심하다 몇 글자 끄적여서 낸 것이 영 속이 상해서 끝내는 울어버렸다. 남 녀 두 명의 시험관 앞에서 시험지를 낸 후 “흑흑” 소리 내어 울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70이 다된 여자가 평생 시험을 잘못 봐서 운 것은 또 처음 있는 일이다.

졸업학점이 140학점인데 기존에 따놓은 학점이 125학점이라서 15학점만 더 따면 됐다. 한 과목당 3학점이라서 5과목만 이수하면 되는데 혹시 몰라서 6과목 신청을 해 놨다. 시험이 끝난 며칠 뒤 객관식으로 출제된 5과목 점수를 확인하기 전이었다.

“하나님 저 이번에 꼭 졸업할 수 있도록 과락하는 과목이 없게 해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 후 점수를 확인하니 “야호”, 평균이 88.6이 나왔다. 그러자 이제는 긴장이 풀리고 안심이 되어 눈물이 나왔다.

자신 없는 미디어심리학 과목이 차라리 F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재밌는 것은 3학년으로 편입한 작년 3학년 1학기 때는 한 과목이라도 F가 나올까봐서 노심초사, 안달복달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점수가 나빠서 평균점수를 깎아먹을 것 같은 미디어심리학이 F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과락만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땐 언제이고. 이것이 인간이다! 다행히 미디어심리학이 88점이 나와서 평균을 0.1점만 깎아먹었다. 5과목 평균 88.6에서 6과목 점수 88.5로. 140점이면 졸업점수를 충족하는데 143학점이 됐다.

나이 든 후 공부하는 게 장난이 아니다. 다시는 학점 따는 공부는 하지 않겠다. 공부는 슬슬 재미로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으며 학점 따는 공부는 시니어에겐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2년간 학점에 목매는 공부를 하다가 최고의 염증수치와 뱃살을 얻었다. 회전근개 섬유화로 5개월 이상 장덕한의원에서 한방치료를 받고 있으며 방광염도 생겨서 치료를 받고 있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라고 하는 말에 ‘공부하기 싫은 사람들의 비겁한 변명’이라고 일축해왔던 자신의 교만함을 뼈저리게 자책하고 있다.

박애란 _ 선생은 서둔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Last modified: 2022-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