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섭 (서울시교육청 정무보좌관, 지역시스템공학 03)
이번 달로 교육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2018년 10월 11일에 임용장을 받았으니 1년 6개월만입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교육에 대해 나름 깊이 고민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그간 고민했던 바를 간략하게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진보교육감 시대’라고들 합니다. ‘진보’를 표방한 분들이 교육감에 많이 당선되었다는 뜻이겠지요. 실제로 17개 시·도 교육감 가운데 14명이 자칭 타칭 ‘진보교육감’입니다. 그렇다면 교육에서 ‘진보’란 무엇일까요? 교육에도 진보적 교육과 보수적 교육이라는 게 있을까요?
제가 느끼기에 ‘진보 교육’은 어떤 독자적인 노선이 있다기보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이는 것 같습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성적에 따라 따로 공부하는 우월반은 안 된다. 공부를 많이 시키기 위해 도입됐던 0교시와 야자(야간자율학습)도 안 된다. 권위주의 학교의 상징 같은 체벌과 두발 제한, 교복 착용은 당연히 안 된다. 시험도 많이 보면 안 되고, 성적도 내면 안 된다. 평가는 나쁜 것이니까 최소화해야 한다. 학교든 학생이든 교사든 가릴 것 없다.’
당연히 저도 이런 것이 진보적인 교육이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깊이 생각할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교육청에 들어온 김에 고민을 본격적으로 해봤습니다. 과연 이런 것이 교육의 본질적 문제인가? 교육의 목적에 대한 고민 없이 교육 선진국이라는 몇몇 나라들의 겉모습만 비슷하게 따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저마다 다른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캐런 브래넌 교수는 자신의 수업 첫 시간에 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적어오라는 과제를 학생들에게 내주는데, 답이 제각각입니다. 취업 준비, 입시 준비, 사고력 증진 등. 브래넌 교수는 교육의 목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이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이러한 답변들도 결국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학생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역량을 키워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현대 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두 요소는 세계화와 기술 발전입니다. 게다가 세계화와 기술 발전은 서로를 가속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일단 기술 발전이 없었으면 세계화도 없었습니다. 증기기관에서 시작한 기술 발전이 정보통신기술로 이어지며 세계를 하나로 이어버린 것은 모두 아시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세계화는 경쟁의 수준을 바꿨습니다. 국가 간의 경쟁이 기업가치사슬(가령 애플은 미국에서 설계와 마케팅을 하고 중국에서 만들어 전세계에 팝니다) 간의 경쟁으로 변했습니다. 이는 개인 입장에서도 전세계 개인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스텍에서 박사를 받은 제 친구는 스탠포드를 나온 전 세계 학생들과 경쟁하고, 중국 제조업 노동자는 태국 제조업 노동자와 경쟁하는 식입니다. 당연히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고, 기술 발전의 속도도 더 빨라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교육의 목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세계화와 기술 발전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학생들이 독립적 개인으로 살아갈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목적에 맞으면 좋은 것, 맞지 않다면 나쁜 것이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진보냐 아니냐는 의미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목적에 맞는 솔루션도 생각해봤습니다. 바로 ‘국영수 공교육 책임제’입니다. 네, 맞습니다. “국영수를 중심으로 예습복습 철저히”의 그 ‘국영수’입니다. 사실 제대로 얘기하자면, ‘한국어·외국어·수학·과학 공교육 책임제’인데, 이러면 임팩트가 없어서 이름을 복고적으로 붙여봤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줄 테니까요.
제가 ‘국영수 공교육 책임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 간의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이뤄진다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경쟁할까요? 바로 세계인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지식입니다.
그럼 무엇이 보편적 지식인가요? 바로 언어입니다. 한국어와 영어·중국어·스페인어·베트남어 등 각종 외국어입니다. 그러면 수학과 과학은 왜? 수학과 과학도 언어입니다. 국경을 넘는다고 ‘1+1=2’가 ‘1+1=3’이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화학반응식과 중력방정식도 모든 나라에서 같습니다.
‘국영수 공교육 책임제’는 교육의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 교육을 둘러싼 각종 소모적 논란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사교육이 문제다? 제가 알기로 사교육의 대부분이 국영수입니다. 학교에서 해결이 안 되니 사교육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학교가 책임진다는데 사교육으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대학 서열화가 문제다? 저런 보편적 언어에 익숙한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대학 간판은 별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취업자들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별로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교육의 목적은 그런 게 아니고 인성을 기르는 것이다’라는 반론부터, ‘좋긴 한데 과연 한국 공교육이 그럴 만한 역량이 있느냐’는 의문까지 다양한 생각이 드셨다면, 성공입니다. 저는 여기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이 문제니 사교육 대책을 내고, 입시가 문제니 입시 대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과연 우리 교육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가를 더 많이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찾아가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황종섭 _ 2006년 농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몸담았다. 정의당 기획조정실과 대표비서실을 거쳐, 2017년 심상정 캠프 전략팀과 TV토론팀에서 일했다. 이후 2018년 9월까지 정치발전소 기획실장으로 일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2-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