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5:07 오후 120호(2020.04)

나 이렇게 산다
언어는 그 사람이다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여성에게는 네 가지 ‘씨’가 있어야 해요. 그게 뭘까요?”

“섹시요!”

한 학생이 재빨리 대답했다.

“내훈에는 여성은 네 가지 씨가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첫째 마음씨가 고와야 한다.

둘째 말씨가 고와야 한다.

셋째 솜씨가 있어야 한다.

넷째 맵시가 있어야 한다. 라고요.”

“언어는 그 사람이다!”

어느 시인은 말했다. 우리의 입은 한 송이 예쁜 꽃이라고. 꽃송이에서 나오는 것은 고운 꽃 이파리가 되어야 한다고. 제자들이 늘 고운 말을 사용하기를 바랐기에 새 학기 첫 시간에는 반드시 ‘내훈’을 얘기해줬다.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있다. 풍채와 언변과 문장력과 판단력이라는 뜻이다. 선비가 지녀야 할 네 가지 미덕을 말한다. 이는 원래 당(唐)나라 때 관리를 선발하던 기준이었다. 사람이 쓰는 언어에는 그 사람의 지성과 교양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아들이 네, 다섯 살 때였다.

“엄마 개의 새끼를 어떻게 불러야 해요? ‘개새끼’ 그러면 욕이 되잖아요?”

아들이 흑진주 같은 눈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강아지라고 하면 되지요. 소의 새끼는 송아지, 닭의 새끼는 병아리고요.”

비로소 안심한 아들은 말했다.

“아하! 그러면 되겠구나!”

나쁜 말을 입에 담지 않으려는 아들의 의지가 보였다.

10여 년 전 평택역에서였다.

예쁘고 발랄한 세 명의 20대 여성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가고 있었다. 그리고 호감을 느낀 듯한 한 젊은이가 그녀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결말이 어찌 되려나?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여성들의 대화 중에 심한 욕이 튀어나왔다.

젊고 예쁜 여성들 입에서 그런 험악한 말이 나오다니! 뒤따르던 남성은 그녀들에게 기가 질린 듯했다. 슬금슬금 뒤로 빠져서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내가 목격한 이 얘기도 반드시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들이 저속한 말을 사용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망치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언어는 그 사람이다!”

영화 ‘마이페어레이디’에서는 한 언어학자가 꽃 파는 아가씨 ‘일라이자’를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가난한 동네에서 살던 그녀는 먹고 사느라 바빠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그녀에게 언어교육을 제대로 해서 상류사회의 여성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몇 개월 간 언어공부와 상류사회 예절을 익힌 일라이자가 마침내 상류사회에 ‘짠’하고 나타난다. 여기서 주인공 일라이자로 나온 오드리 헵번의 옷맵시는,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답고 패셔너블했다. 너무도 멋진 그녀는 단번에 상류사회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우리 이모가 뒈졌다.”

그들과의 대화 중에 오드리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 말에 상류사회 여성들 사이에선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언어는 그 사람이다!

품위 있는 언어 사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되는 것이 언어습관이다.

아름다운 언어, 함축된 언어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게 시다. 늘 시를 읽고 쓰는 습관은 보다 고운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살아있다!”

여러 사람이 자꾸 쓰게 되면 맞춤법이 바뀌기도 한다. 요즘 재미있는 현상이 생겼다.

어떤 말이든 앞에 접두어인 ‘개’자가 붙으면 ‘개망나니’ ‘개쓰레기’ 등 극혐오 표현이 되는데, 요즘은 완전히 상전벽해의 상황이 됐다.

“개 맛있다!”

“개 멋있다!”

라고 하여 젊은이들 사이에서 앞에 부사인 ‘개’자를 붙이는 것은 ‘최고’, ‘너무’ 보다도 한 발 앞서는 ‘최고 긍정적 표현’으로 쓰인다.

20여 년 전이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조선족 교수 부부를 집으로 초대했다. 사전 계획에 없는 즉흥적인 초대였다. 서울에서 평택으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이뤄졌다.

“인아 엄마, 집에 맛있는 거 있으면 다 내놔”

들뜬 남편은 호기롭게 말했다.

모처럼 고국에 여행 온 조선족 동포들이었다. 불고기, 감자전, 잡채 등 그야말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음식을 후다닥 만들어서 대접했다.

“지금 선생질하고 계신다며요?”

조신해 보이는 초로의 교수 부인의 몸가짐은 그렇게 예의 바르고 깍듯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정중히 숙이며 두 손은 앞으로 공손히 모은 채 내게 이렇게 인사했다.

이걸 울어야 해! 웃어야 하는 거야!

그 상황이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사태 파악을 한 나는 “예”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웃음이 터지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대답했다. 교직을 비하하는 언어인 ‘선생질’이라는 표현은 그녀의 예의 바른 태도와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도둑질’ ‘목수질’ 등 어떤 직업을 비하할 때 붙이는 것이 접미사 ‘질’이다. 하지만 조선족 사회에서는 ‘질’이 비하하는 뜻 없이, 보통 쓰이는 단어라고 했다. 잠깐 언어문화 충격을 겪은 사건이었다.

“웃기고 있네! 웃기고 있네!”

대한민국 군함이 떠나가고 있는 베트남 항구에서 베트남의 한 젊은 여인이 엎어져서 펑펑 울고 있더란다. 이 말을 되풀이하며 목 놓아 울고 있더란다. 70년대에 언니에게서 들은 이 이야기는 여성인 내가 듣기에는 참으로 가슴 아픈 스토리였다.

월남전에 참전한 형부에게 들은 말이라며 언니가 전해준 사연은 이랬다.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을 사랑하게 된 월남 여인이 그 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더란다. 이때 진심이 없는 그 군인의 입에서는 여인의 마음을 비웃는 말이 튀어나왔다.

“웃기고 있네!”

그러자 월남 여인이 물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당황한 우리나라 군인은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말로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대답했다 한다.

푸치니의 걸작 오페라 ‘나비부인’ 스토리를 일본 여성들은 ‘질색을 하며 싫어한다’고 딸애가 말해줬다. 일본에서 유학한 딸애의 일본 친구들의 ‘나비부인’에 대한 반응이라고 했다. ‘왜 그런 거짓사랑에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치느냐’고.

전후 패전국 일본의 주둔군이었던 미군인, 핑커톤과 월남전의 파병군이었던 우리나라 군인에게 나비부인의 주인공 ‘초초’나 월남 여인은 잠시 현지에서 위로와 즐김을 가졌던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그 사랑에 목숨을 건 ‘초초’는 핑커톤과의 사랑의 결실인 아들을 핑커톤에게 넘겨주고 자결을 하고 만다. 자신과 결혼을 한 핑커톤이 다시 미국 여인과 결혼을 한 일에 절망해서. 월남 여인은 배신을 때리고 떠나가는 연인과의 헤어짐이 너무 아파서 항구에서 목 놓아 울었다.

남자에게 사랑은 가벼운 유희였지만 여성들에게는 전부였다.

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2-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