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준 전 경기방송 편성제작팀장, 농화학 88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8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확증된 사실관계에 충실하였다.
#20. 과학과 종교
6월 15일. 한국의 명동성당. 차에서 내린 강한우 교수는 성당의 첨탑을 한동안 바라보다 안으로 들어간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위원회. 사무실 한가운데 놓인 원탁 테이블에 앉아있던 검은 사제복 차림의 신부들이 강한우를 맞아준다.
“안 그래도 저희가 서울대학교로 찾아뵈려 했는데, 이렇게 직접 걸음을 해주시니…”
“진작에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조금 늦었습니다.”
어색한 만남, 강한우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천주교 핵심 신부들을 찾아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미리 이실직고하자면, 사실, 저도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세례명이 ‘안드레아’입니다.”
한우의 말에 한 신부는 아 그래요, 하며 놀란 표정이었지만, 영민해 보이는 젊은 신부는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불자이시죠?”
“예…”
순간 침묵이 흘렀고, 호방해 보이는 50대 신부가 날선 농담을 던졌다.
“그래서 세간에는 이런 풍문도 돌더라고요. 강한우 교수가 원래 천주교 신자인데, 천주교가 배아복제를 반대하니까 불교로 갈아탔다고. 연구를 위해서..”
“허허, 그런 소문도 있어요?^^”
신부들은 재밌다는 듯 웃음 꽃을 피웠다. 그런데, 강한우도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거기엔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신부들은 그게 뭔지 들어나 보자는 표정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한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중학교 때였습니다. 가난한 시골에서 도회지로 혼자 유학 온 아이가 늘 그렇듯, 저도 엄마 품도 그립고 주머니엔 땡전 한 푼 없었죠. 머리 깎을 돈도 없어서 머리를 제때 못 깎으니까 학교에서 두발 검사에 걸려 선생님께 두들겨 맞고 바리깡으로 강제로 머리를 깎이던….”
그 시절, 어린 한우에게 성당의 종소리는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다. 해 질 녘 성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면 불안한 마음도 진정되고 외로움도 가셨다. 그래서 성당에 다녔다. 주말이면 어차피 고향집에 갈 차비도 없었기에 매주 하루도 빠짐없이 성당에 다녔다. 열심히 다니다 보니 신부님 눈에 들어 성경공부도 하게 됐고, 공부를 열심히 해 교리시험을 통과해 ‘안드레아’라는 세례명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에 대한 믿음의 징표는 여러분의 헌금에 있습니다.”
새로 오신 젊은 주임신부는 헌금함 앞에 선채 말했다. 많든 적든 헌금함에 돈을 집어넣어 믿음을 보여달라고. 그 말에 미사를 마친 신도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면서 한 줄로 줄을 서 헌금을 했다. 어떤 이는 천원을 넣었고 어떤 이는 만원을 넣었다. 그런데 강한우에게는 한 푼도 없었다. 아무리 호주머니를 뒤져봐도 동전 한 잎 잡히지 않았다. 한우는 당황했다. 나갈 수가 없었고, 계속 자리에 앉아있었다. 두근두근,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나가면서 헌금을 할 때마다 한우의 심장은 오그라들었다.
‘어쩌지, 나갈 수도 없고, 이대로 앉아있을 수도 없고…’
그렇게 고민하며 고양이 앞의 쥐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주임신부님이 한우를 보며,
“거기 안드레아? 나오지 않고 뭘하니? 안드레아?”
그 말에 헌금통 앞에 줄지어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한우에게로 쏠렸다.
“안드레아, 네 차례야. 뭘하니?”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신부님의 눈빛은 매서워졌고, 한우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전속력으로 달려나갔다.
“쟤 왜 저래?”
“화장실 가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한 채 한우는 그 길로 허름한 하숙집 골목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성당에 나갈 수 없었다. 성당의 종소리는 이제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라 숨이 막히고 온 몸을 바들바들 떨게 만드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가난한 유학생의 트라우마…
“흠….”
신부님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한 신부가 씁쓸한 표정으로 한우에게 물었다.
“지금도 그러신가요?”
“지금은 다 커서 그런지 평온합니다^^”
그러면서 한우는 불자가 된 이유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했다.
“제가 참 어렵게 교수가 됐는데, 그 직후에 바로 쓰러져 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 죽어갈 무렵 알게 된 인연으로 불자가 되었고요^^”
“그러셨군요.”
한 신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누군가 교수님에 대해 이상한 말을 하면 오늘 들은 말씀 그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생각해볼 점이 많네요.”
“고맙습니다. 신부님. 결코 누구를 비난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한우는 고개를 조아리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찻잔을 집어들었다.
“천주교가 무조건 줄기세포를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젊은 신부가 원탁의 대화를 본론으로 이끌었다.
“배아는 생명이기에 배아를 파괴하는 연구를 반대할 뿐, 배아를 파괴하지 않는 줄기세포, 이를테면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오히려 교단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려 합니다. 강교수님처럼 훌륭하신 과학자들께서 성체줄기세포 연구에도 관심을 쏟으신다면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도 축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말에 강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말씀이십니다. 성체줄기세포 쪽은 저희보다 휠씬 뛰어난 연구자들이 많으시지만, 저희도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다만…”
“?”
“지금도 시험관 아기 시술 과정에서 수많은 배아들이 만들어지는데, 쓰여지지 않고 냉동상태로 5년이 지나면 자동폐기되는 배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배아가 생명이라면 그런 배아를 5년 지나 버리는게 맞는 것인지, 아니면 난치병 연구를 위한 줄기세포 연구에 쓰는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 연구현장의 관점에서 다시 한번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원탁이 후끈 달아올랐다.
#21. 더글러스 멜턴
그 무렵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하버드 의대 대형 강의동, 수백명의 하버드 의대생들이 더글러스 멜턴 교수와 가톨릭 대주교 사이의 토론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주교님께선, 실험 접시 위에서 배양된 지 만 하루가 지난 ‘배아세포’ 가 ‘6살 어린이’와 같다고 보는 거죠?”
하버드의 줄기세포 연구를 이끌고 있는 멜턴 교수의 질문에 주교는 당연한걸 왜 묻느냐는 듯 웃으며,
“그렇소.”
그러자 멜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우리는 배아세포를 냉동시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6살 어린이를 냉동시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 걸까요?”
그 말에 주교는 말문이 막혔다.
“…..”
주교는 꿀먹은 벙어리가 됐고 강의실 곳곳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흘렀다.
“주교님, 정말 6살 어린이의 생명이 배아와 똑같나요?”
정색하며 다시 묻는 멜턴의 눈빛은 슬퍼보였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생후 6개월 된 아기의 온몸이 잿빛으로 창백해졌습니다. 아기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들어가 보니, 6시간 뒤에 의사가 알려주더군요. 아기의 몸이 당으로 가득찼다고… 소아당뇨였습니다. 췌장의 인슐린 효소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제2형 소아당뇨…”
다들 놀란 표정으로 멜턴의 고백을 경청했다.
“그 후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우는 아이의 손을 찔러 피를 뽑았습니다. 혈당을 체크하고 위험하면 인슐린 주사를 맞추고, 아기도 울고 엄마도 울고, 그 소리를 들으며 문밖을 서성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아빠가 바로 저였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뭐라도 하고 싶다. 어쩌면 평생 저 고통을 안고 살 내 아이를 위해 아빠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때 주교가 말을 잘랐다.
“당신의 고통을 외면하겠다는 게 아니오. 멜턴, 배아나 난자를 쓰지 않는 줄기세포 연구라면…”
“성체줄기세포부터 거의 모든 줄기세포를 연구했습니다. 심지어 엄마 뱃속에서 숨진 태아의 줄기세포까지도…”
멜턴은 후, 하며 숨을 골랐다. 격앙된 자신의 목소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주교님, 지금까지의 실험 데이터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치료에 유의미한 성체줄기세포를 찾아내는 것은 볏짚더미가 가득 쌓인 헛간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힘든 일이라고. 반면 배아줄기세포는 인체의 거의 모든 세포를 만들어낼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고. 주교님이 저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강의실은 쥐 죽은듯 고요했다.
노광준_ 별명 ‘노진구’. 도라에몽에게 늘 민폐만 끼쳐 만화사상 최악의 캐릭터로 손꼽힐 만큼 띨띨하고 존재감 없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우연히 라디오 피디가 되어 20년간 일했음. FM 99.9MHz 경기방송 전 편성제작팀장. 지난해 회사 임원에 대한 공익제보 후 해고되어 현재 복직 투쟁 중.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