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P 여고에서였다. 어느 해 여름방학이 시작된 후 1학기를 마감하는 의미로 교사들이 함께 지리산으로 연수를 갔을 때였다. 여행길 화장실에서 일을 본 후였다. 입구에서 나오기 전 거울을 보고 있는 나를 J 선생님이 뒤에서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는 남자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온 후였다. 나보다 8세 정도 어린 그는 키가 크고 목소리가 너무 좋은, 분위기 맨 이었다. 단체로 노래방에 갔을 때였다. 그가 ‘그대 그리고 나’를 부르면 나는 완전 그의 노래에 빠져있곤 했다.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아버님의 반대로 상업교육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그의 말에 매우 안타까웠다.
‘그는 갤럭시 옷이 너무 잘 어울리는 갤럭시 맨이었다!’
옷도 감각있게 잘 입는 ‘그의 감성이라면 화가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컸다. 한창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가 뜨던 시절이었다. 학생들이 붙여준 ‘미달이 아빠’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그는 중견 탤런트 박영규 씨를 많이 닮았다. 나는 목에 기브스를 한, 무게 잡는 남자에 약했는데 글도 잘 써서 그의 정치 칼럼이 한겨레 신문에 실리기도 한, 과묵하고 분위기 있으며 지적인 매력이 넘치는 그는 무게 맨 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그의 차로 우리 집 근처까지 와서, 나를 픽업해서 학교로 출근시켜 주고 퇴근할 때는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나를 데려다주는 나보다 7, 8세 연상인 Y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교무실 자리에 앉아있는 내게 ‘꽃보다 더 예쁘다’라고 하는가 하면 ‘유난히도 하얀 옆 얼굴이 매혹적이다’라는 등의 글을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쪽지를 여러 번 건네주는가 하면 차를 태워주며 내게 지속해서 작업을 걸었다. 그는 J 선생님과는 달리 용모와 지식수준과 성격 등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전혀 없었다.
차를 운전하는 중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라는 그에게 나는 콧방귀를 뀌며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백번을 찍어보세요! 넘어가나!”
그럴 때마다 그는 ‘아하 참!’ 한탄을 하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쌀쌀맞으세요! 태워다 주신 분하고 사이좋게 나란히 걸어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침에 그의 차에서 나온 내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혼자서 빠른 걸음으로 교무실을 향해서 걸으면 그는 뒤에서 힘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걷곤 한다는 것을 문학 선생님인 J 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됐다. 그녀가 2층 교실에서 아침 보충 수업을 할 때 우리들의 출근 장면이 가끔 목격됐다고 했다. 나는 그와 나란히 걷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여기에서 생각해보자.
J 선생님이 나를 안았을 때 나는 가만히 그의 포옹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건 내가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좋아하지 않는 Y 선생님이 나를 안았다면 나는 비명을 지르며 뿌리쳤을 것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 성추행이 어떻게 성립되는가 하는 것은 여성이 그 대상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나? 그렇지 않나?로 판가름 난다.
카풀을 해주시던 Y 선생님께 나는 매달 3만 원의 주유권을 꼬박꼬박 사드렸다. 그건 아침저녁 출퇴근시켜주는 것은 고맙지만 내게 흑심을 품고 있는 그에게 계산을 정확히 해서 그의 흑심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자 함이었다.
명예를 쌓기는 평생 걸리고 추락은 순간이다! 서울시민의 복지와 민주 발전을 위해 온몸과 마음으로 헌신했던 공인의 불명예 퇴진이 너무 가슴 아프다! 박시장님은 공이 절대적으로 많으신 분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죽음은 이 세상의 끝을 의미한다. 가장 무거운 의미의 죽음으로 자신의 죄를 사죄한 박시장님의 진정을 헤아려 더 이상 물어뜯는 것을 멈추기 바란다. 더구나 이 일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너무 아프고 고독했을 그의 영혼 앞에 옷깃을 여미며 평안을 빌어주기 바란다.
<사진1 사진설명>
2013년 4월 7일 서울대 농대생인 김상진 열사의 38회 추모집회에 참여했던 박원순 시장님. 김상진 열사는 유신시절인 1975년 4월 11일에 ‘유신헌법 철폐’를 부르짖으며 할복자살했다. ‘오둘둘 사건’으로 유명한 시위에 당시 서울대 법대생이었던 박 시장님이 앞장섰었다.
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