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3:54 오후 122호(2020.10)

뉴스는 반만 믿어라
가짜 뉴스로부터 우리 가족을 보호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노광준 전 경기방송 편성제작팀장, 농화학 88

작가의 말

그동안 연재해온 과학자 이야기는 잠시 쉽니다. 갈수록 언론의 문제, 뉴스의 문제가 심각해지는 요즘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한 글을 먼저 써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년 뒤 책 출간을 목표로 연재 글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과학자의 이야기는 그 후 ‘과학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연 과학적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재구성해 뵙겠습니다. 많이 부족한데 기회를 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1.

줄리아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뉴스가 감춰온 이면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초능력이었다. 뉴스는 늘 자신이 곧 진실이라고 주장했지만, 줄리아는 글을 읽게 된 6살부터 줄곧 뉴스의 거짓말을 짚어냈다. 딸의 능력을 알게 된 줄리아의 부모님은 걱정에 휩싸였다. 딸이 크면 클수록 왕따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줄리아의 말보다 CNN이나 워싱턴포스트의 말을 백배 천배 더 신뢰할 테니까.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그 날 아침도 아빠는 거실에서 모닝커피를 즐기며 워싱턴포스트를 보고 있었다.

“세상에…”

신문을 보던 아빠가 충격에 휩싸인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자 엄마가 반응한다.

“왜요?”

“8살짜리가 헤로인 중독이래”

“응? 정말요?”

“봐봐. 1면 기사. 꿈이 강력한 마약거래자가 되는 거라는군”

설거지를 멈춘 엄마는 손을 닦고 워싱턴포스트를 집어 들었다. 1면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지미의 세계”

워싱턴포스트지의 기자가 워싱턴 빈민가에서 만난 지미라는 이름의 8살 흑인 소년은 3대째 내려온 헤로인 중독자였고 소년의 장래희망은 마약거래자였다는, 다섯 살 때부터 마약에 중독된 지미는 그날도 엄마의 남자 친구가 놓아주는 헤로인 주사를 맞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현장 취재 기사였다.

“도대체 경찰은 뭐 하고 있는 거야? 정부는?”

엄마 역시 신문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아이에 관한 뉴스였기에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엄마 등 뒤에서 신문을 힐끗 보던 줄리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 보이는데?”

방금 일어난 줄리아는 토끼무늬 잠옷 차림에 부스스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안 보인다고..

“뭐가 안 보이는데?”

“지미 말이야.. 뉴스 속 주인공… 아무리 떠올려봐도 안보여.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옷을 입었는지, 그 아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아. 살아있는 거 맞아?”

“줄리아, 여기 신문 좀 보렴. 지미에 관해 이렇게 자세히 쓰고 있잖니.”

엄마는 신문을 보여줬다. 엄마의 말대로 기사에 나온 8살 소년의 모습은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지미는 노르스름한 모랫빛 머리카락을 가졌고 비단 같은 부드러운 갈색 눈을 가진 조숙한 꼬마다. 옅게 탄 갈색 팔의 보드라운 피부에는 주근깨처럼 수많은 주삿바늘 자국이 있다. 지미는 위싱턴 남동부에 살며….”

그래도 줄리아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마는 그런 줄리아가 너무 걱정스러웠다. 참아둔 말을 꺼냈다.

“줄리아, 어떤 사람들은 무지개 너머에 뭔가 엄청난 게 있을 거라 말하지만 가보면 아무것도 없었단다. 살다 보면 ‘보이는 게 전부’일 때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러나 줄리아는 엄마의 충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가 보여준 신문 활자 속에 감춰져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8살 소년 지미의 모습은 아니었다. 줄리아의 눈에 기자의 모습이 보였다. 지미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 여성이었다. 편집장실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기자를 부른 편집장은 만면에 웃음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수고 많았네.”

“과찬의 말씀을요…”

“자네를 부른 이유는 또 하나의 어메이징 스토리를 전해주기 위함이지.”

“무슨……”

“오늘 자네의 기사를 본 독자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했네. 자네 기사를 퓰리처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예? 아니 편집장님 그건….”

순간 기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편집장도 그런 기자의 표정을 보고는 이상하다는 듯,

“의외네. 늘 자신만만하던 재닛 쿠크가 이렇게 겸손할 때도 있다니.”

“……”

“난 자네가 퓰리처의 주인공이 될 거라 믿네. 축하하네.”

편집장실을 빠져나오는 기자의 표정은 어두운 것을 넘어 아예 백지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숨기려고 애써 호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어봤지만, 떨리는 손가락은 진정될 줄 몰랐다.

2.

6개월 뒤 기자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러나 수상 다음날, 그녀의 기사가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 심지어 기자의 학력까지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 지미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었다. 경찰이 무려 3주간 워싱턴 빈민가 일대를 뒤졌지만 그런 소년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지미가 안 보인다는 줄리아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줄리아는 이런 자신의 능력을 꽁꽁 숨기면서 살아간다. 뉴스를 꿰뚫어 보는 순간 외톨이로 살게 되니까….

3.

초능력자 이야기는 제가 지어냈지만, 워싱턴 포스트 기사 날조사건은 1980년 9월 실제로 있었던 실화입니다. 1980년 9월 28일 워싱턴포스트 1면에 ‘지미의 세계(Jimmy’s World)’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는 3대째 내려온 헤로인 중독자인 8살 흑인 소년의 이야기를 전했지만 보도 직후 경찰력을 총동원해 3주간 워싱턴 빈민가를 뒤졌던 워싱턴 경찰은 ‘그런 소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자 재닛 쿠크는 1981년 4월 13일 퓰리처상의 특집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수상 직후 재닛 쿠크의 학력 위조 논란이 일었고, 4월 15일 워싱턴포스트의 밴 브래들리 편집장은 학력 날조는 물론 기사도 날조되었음을 밝히며 퓰리처상을 반납했습니다. 워터게이트 폭로기사로 닉슨을 주저앉혔던 밴 브래들리 편집장은 재닛 쿠크 기자가 ‘자신의 날조기사가 퓰리처상 수상작이 되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회고하며 그녀가 진실을 털어놓던 순간을 이렇게 썼습니다.

“1981년 4월 15일 이른 새벽 재닛 쿠크는 모든 내용이 조작된 것이며 지미도 없고 지미 어머니의 동거인 남자 친구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 순간부터 ‘재닛 쿠크’는 미국 저널리즘에서 최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가 최선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4.

여기서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드려봅니다. 지금은 저런 일이 안 일어날까요?

미국의 저널리즘 권위자인 댄 길모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무조건 (뉴스를) 의심해야 된다.” “나는 뉴욕타임스도 의심하고 페이스 북도 의심한다. 그게 뉴스 소비자들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

넘쳐나는 가짜 뉴스로부터 나와 우리 가족을 보호하려면 우선, 무조건 의심해보는 겁니다. 맹신하는 순간 낚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피해보는 세상은 그만….그래서 저는 이 글의 제목을 ‘뉴스는 반만 믿어라’라고 지었습니다. 어떤 뉴스든 절반만 믿고 나머지는 우리가 직접 판단해보자는 거죠. 그랬더니 어떤 분께서 “그러면 네 말도 반만 믿어야겠네”라고 비꼬십니다. 저는 이렇게 답하죠. “바로 그겁니다. 모든 걸 의심하라. 그래야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현명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5. 참고문헌

1) 저널리즘 평론 ‘오보’ (한국언론재단, 2003년 1호 통권 15호), 192~194쪽

2) 김지숙, 진짜 뉴스를 원한다면 “무조건 의심하라” (미디어오늘, 2017.11.14)

노광준_ 농화학과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파던중 BBC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유튜브 기획제작자로 일하고 있다. 경기방송 PD로 재직당시 ‘현장의정포커스 – 쌍용자동차 사태 이후 대책편’으로 제38회 한국방송대상 지역시사보도제작(라디오) 부문 작품상 수상했다.(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