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5:06 오후 126호(2021.10)

초보 정책가 일기
대선후보에게 바라지 않는 점

대선후보에게 바라지 않는 점

김현수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 환경재료과학 08

대선정국이 한창이다. 여야를 비롯하여 경선에 참여한 여타 후보들은, 내가 가장 대통령에 적합하다며, 혹은 저 사람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소리 높인다. 현대 한국이 가진 체계 내에서는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가지는 제도적 권력과 비제도적 상징 권력이 막강하기에, 어떤 세력이 그 자리를 점유하느냐에 따라 정책, 제도, 사회의 향방을 좌우한다.

현재는 온 사회가 부동산을 위시한 경제적 초점만 바라보고 있지만, 본선이 시작되면 교육에 관한 내용도 작게나마 등장은 할 것이다. 나는, 바라는 것은 없고, 바라지 않는 것이 있다. 이번 후보들은 부디 노동인권, 노동존중 교육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공지능교육을 하겠다고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어떤 OO교육이라도 그것을 ‘별도로’ 시행하겠다고 말하는 게으름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OO교육은 전혀 올바른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누군가는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며 연대한다. 누군가는 문제를 발생시킨 구조적 결함과 모순을 지적하며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또 누군가는 그 문제에 대해 몰라서 그렇다며 ‘교육’을 해야 한다고 소리 높인다.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서 교육은 언제나 적절하지만, 그보다 게으른 처방 또한 없다. 왜냐면, 문제 해결을 위한 처방으로서의 교육은 단시간 내에 문제를 전혀 개선하지 못하고 문제에 관한 관심이 끊기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대부분 그러한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로 넘어가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문제가 사회에는 늘 벌어지기에, 그 해결책으로서의 ‘교육’ 또한 늘 대두된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소위 말하는 ‘국영수’ 이외에도 수많은 OO교육이 이루어진다. 영양 식생활 교육, 독서 및 정보이용 교육, 보건교육, 성교육, 흡연 음주 등 약물오남용예방교육, 응급처치교육, 장애학생 인권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교통안전교육, 통일교육, 독도사랑교육, 안전교육, 생존수영교육, 생명존중교육, 인터넷중독예방교육 등 지면의 한계상 다 나열하지 못할 뿐 수많은 문제가 벌어지고 그 뒤에 OO교육만 붙여서 학교에 반강제로 들어온 것들이 지금도 추가되고 있다.

물론 그 어느 OO교육도 감히 필요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저 개별 내용 하나하나가 기존의 ‘국영수’를 대체하고, ‘창의적 체험활동’과 ‘학생자치활동’을 대체해야 할 정도로 중요할까. 학교에서 교과과정 이외에 다른 내용을 얼마나 가르쳐야 할까? 게다가, 과연 저 OO교육들로 진짜 OO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무도 쉽게 답하지 못할 문제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OO교육 내용 대부분이 정규 교과에 포함된 내용이고, 포함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정규 교과에서 그 내용을 다루는 것이 훨씬 더 심도 있고 유기적으로 될 수 있다. 게다가, 이미 대부분 정규 교과에서 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는 단순 단기적 성과를 내보이고 싶어 하는 정치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공론화를 통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은 길고 지난하며, 수차례는 엎어질 위기를 겪어서야만 달성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법령을 개정하고 지침을 내리는 건 상대적으로 훨씬 쉬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기 전에, 법령을 개정하거나 제도를 변화시키는데 더 골몰해왔다. 그렇기 때문인지,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은 인식의 변화가 제도를 이끌기보다는, 제도의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온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게다가 전쟁을 통해 한번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 뒤 바닥부터 급하게 쌓아 올린 제도이기에 그런지, 제도에 대한 구성원들의 순응도도 높으면서, 제도를 쉽게 바꾸기도 하고, 바꾼 제도에도 빨리 적응한다. 그래서 문제만 생기면 일단 ‘OO교육 진흥법’부터 만들고 본다. 그렇게 학교는 또 하나의 짐을 더한다.

참고해볼 만한 유명한 해결책이 있다. 정치교육의 교범이라 불리는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그것이다. 이 합의는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전후 독일에서 탄생했다. 1976년 11월 19일~20일, 단 이틀 만에 이루어진 합의는 3가지 원칙을 천명한다. ‘강압 금지의 원칙’, ‘논쟁 재현의 원칙’, ‘학습자 이해에 근거한 존중의 원칙’이다. 이후 이 합의는 40년가량 경전으로 여겨지며 세계 곳곳에서 정치교육의 기준 규범으로 준용되고 있다. 이런 기준에 대한 합의를 통해, 어느 교과에서도 정치교육을 할 수 있다.

우리도 충분히 해볼 수 있다. 이러저러한 잡다한 수식어가 붙어있는 사사로운 교육이 아닌 학교교육에 있어서 ‘○○교육의 대원칙에 대한 합의’라는 가제로 대원칙을 치열하게 논의하는 상상을. 나뭇잎의 잎맥 하나하나를 점검하기보다는 숲 전체를 조망하는 합의를. 그리고, 학교와 교사를 믿고 맡겨주자. 이미 정규 교과에서도 그 내용을 다 다루고 있다. 우리의 교사들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우수한 재원이다. 이들은 충분히 그 OO교육을 수행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아니면 다음에라도 문제 해결용으로 OO교육을 내세우지 않는 대선후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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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