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4:19 오후 126호(2021.10)

나 이렇게 산다
아! 달콤한 인연이여!

아! 달콤한 인연이여!

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했던 내 빛나는 10대의 기록으로, 내 나이 14세인 1964년부터 17세인 1967년까지의 기록이다.

“내게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 주신 분들은 서둔 야학 선생님들이다.”

가난해서 제도권의 학교에 못 간 청소년들을 모아서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쳐주신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생들이 세운 서둔 야학은 한마디로 사제간의 정이 넘치는 ‘사랑의 학교’였다.

2021년 9월 8일 저녁 무렵이었다. 서둔 야학 박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주셨다. 내 첫사랑 서둔 야학 선생님의 전화가 너무 반가웠던 나는 눈물이 났다. 선생님은 그때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수의학과 64학번 동기생들과 술 한잔을 하시며 우정을 나누시는 중이었다.

전화하신 이유는 친구분 중에 내 글을 읽게 된 한 분이 선생님을 너무 부러워하신다는 말씀이었다. 50여 년 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생들은 야학 활동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로 갈린다. 서둔 야학 활동을 하신 분은 선생님이고 하지 않았으면 그냥 농대생으로.

순간 환희에 들떠서 전광석화처럼 든 생각이 있었다.

“아 달콤한 인연이여!”

이럴 때 중요한 것이 단어의 선택이다. 관계가 아니라 인연이다!

​서둔 야학 스토리는 50여 년 전의 박제된 옛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스토리이다.

문학지 ‘한미 문단’은 우리나라 문인들과 미국 교포 문인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 계간지이다. 그곳에 내 글 두 편이 2년째 지속해서 실리고 있다. 한미문단지 2021년 여름호에 실린 ‘그곳에 소년이 있었다’라는 내 글을 박 선생님의 친구분이 우연히 읽으셨다. 친구분들의 모임에서 그 글과 우리의 인연이 화제가 된 것이었다. 50여 년 전에 공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을 아직도 못 잊고 “박광식 선생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한 것에 친구분들이 엄청나게 감동하고 부러워하신다는 말씀이었다. 이에 박 선생님은 내게 ‘부끄럽고도 고맙다’라고 말씀하셨다. 박 선생님과의 통화 후 내게 호기심을 가진 친구분들과 차례차례 전화로 인사를 나눈 후였다. 다음 모임에는 나도 초대를 하시겠다고 하셨다. 50여 년 전 가슴 설레던 첫사랑 선생님과 친구분들과의 미팅이라니! 이 얼마나 놀랍고 달콤한 일인가! 기꺼이 가서 뵙겠노라고 말씀드리고 통화를 마쳤다.

“글은 공간과 시간을 뛰어넘는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한다.

같은 맥락으로

“사람은 떠나도 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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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