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을 누리며 살자!
안병권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7월 7일]
김상진을 누리며 살자!
민주화운동 포상 훈장은 5등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밑에 포장이 있고 그 밑으로 대통령표창, 국무총리표창으로 되어있다. 국민훈장 모란장은 무궁화장 다음으로 등급이 매우 높다
김상진열사의 어떤 점이 모란장을 추서 하게 되었는가?
“고 김상진열사님의 공로를 말씀드리면, ‘열사의 양심선언문과 죽음은 1970년대 민주화운동 역사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유신반대투쟁과 민주화운동이 고조되고 결집하는데 김상진 열사님의 역할이 크게 있다’고 봐서 훈장을 추서한 것입니다.” – 행정안전부 최병관 국장
김상진 다큐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번처럼 기쁘고 즐거운 일은 없으리라. 늘 근심걱정 노심초사로 1년반 지냈다.
2019년 영화 설계를 하고 남겨진 자들의 삶 결을 따라 인터뷰를 마쳤다. 작년 2월엔 관악캠퍼스에서 오둘둘 선배들과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현장 스케치 촬영도 세팅했다. 인터뷰 프리뷰 작업을 진행중인데 코로나 국면이 벌어져 모든 촬영 일정을 전면 중단했다. 더 황망한 일은 7월에 박원순 시장님이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세상에나…. 그렇게 시작된 우여곡절은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금년까지 이어지면서 촬영 및 제작 일정은 차질을 빚고 있다.
주·조연배우(30여 명)들과 스텝진이 순천 드라마셋트장 등을 찾아 나흘 정도 상진형님의 생전 상황과 캠퍼스 현장을 재연하는 일정을 남겨 두고 있다. 그 씬들만 촬영을 마치면 1차 가편집 들어가고 후반부 작업을 거치면 1차 시연회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만만치 않으니 차일피일 마음만 바쁠 뿐이다.
그러던 차에 상진형님이 모란장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리저리 잠을 뒤척였다. 세상에! 나라가 형님에게 최고등급의 훈장을 수여하네! 그것도 민주화운동 역사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지난 6월 29일, 분당,
열사 큰 형님 김상운님 댁에서 훈장 수여 모임이 있었다. 장영철 감독과 함께 뜻깊은 훈장 추서, 훈장 스토리를 촬영했다. 이 장면은 아마도 영화<1975.김상진>의 대미를 장식 할 수도 있겠지 싶다.
이 훈장을 계기로 열사를 누리며 살고 싶다.
수많은 선후배들이 열사의 뜻을 쫓아 살아내면서 늘 전전긍긍했다. 아프지만 버릴 수 없는. 외면할 수 없는 26살 한 젊은 청년의 죽음을 각자의 삶에서 녹여내는 과정에서 또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괜히 조심스러워 해야 했다. 괜한 자기 검증 혹은 자기 검열을 해야했다.
그럴 때마다 열사가 바란 세상이 온 듯하다가 또 뒷걸음질 칠 때, 기억창고 저편에 넣어두고 조심조심 꺼내봐야 했다.
김상진을 온전하게 누리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아 보아라!
요즘 사람들아 보아라!
우리의 김상진이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폭압에 모두가 움츠리고 숨죽이고 있을 때 그 여리디 연한 시퍼런 젊은 목숨으로 우리를 대변했던 역사다.
46년 전에 벌어진 일이 무슨 대수냐고?
너희들이 의기양양 만끽하는 오늘이 그냥 너희가 태어나서 당연히 얻은 거 같아?
훈장을 계기로 멀리는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가까이는 민주화운동 열사들의 목숨 값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주저하지 않고 표현하면서 살아가려고 한다.
“형님의 삶을 공유하고, 그 삶 결을 따르면서 이후의 시대를 헤쳐온 ‘김상진의 역사’가 너무나도 좋고 따뜻해” 기꺼워했다.
영화 제작자로 김상진기념사업회에 제안한다.
1. 키워드: 열사를 맘껏 누리자!
2. 이천묘역에서 ‘훈장 수여식’(추석 전후)
3. 김상진열사(훈장) 전국투어
-영남권. 호남권, 강원·충청권, 서울경기, 제주
– 지역 단위별로 기념사업회 및 서울대민주동문회 회원모임(훈장 모시고)
– 한 바퀴 돌아 이천 묘역에서 수여식
4. 김상진열사 가족모임
김상진은 역사다.
국민훈장 모란장은 김상진열사다. 모처럼만에 열사를 즐겁고 유쾌하게 나누고, 즐기고, 누리자.
형제들도 나누고 누리고, 선후배들도 나누었다가 다시 모으고 다시 나누면서 열사의 삶을 기꺼워하는 시간을 갖자. 그 여정이 지속 가능한 김상진이다.
영화 제작진은 이 장면들을 실상황 스케치 촬영하고, 영화에 구체적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6월 28일]
풍성한 호흡, 풍성한 상상
“맞소 우에 것들이 정신 못 차리고 왜놈들하고 똥창 맞대고 돌아가니 나라꼴이 될택이 있겄능교”
그 느닷없는 말에 지삼출은 고개를 후딱 돌렸다. 그 야무진 말에서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지삼출과 강기호의 눈길이 마주쳤다.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의 눈이 무슨 말인가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입가에는 실바람처럼 엷은 웃음이 내밀하게 번지고 있었다
“그러요?”
지삼출이 하늘을 눈짓했다. 입술이 말려들도록 입을 꾹 다문 강기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지삼출이 하늘을 눈짓한 것은 <인내천>을 믿느냐는 것이었고, 그건 곧 갑오년 출병을 뜻하는 것이었다.
“반가우요 어지께보틈 어째좀 달부다싶드만이라”
지삼출은 소리 죽여 말하며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나도 이바구 쪼매 들어보고 퍼뜩 그리 맘믹히드마는”
조정래 소설 <아리랑> 제1권 48페이지
.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김상진열사가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는다
내일(6월 29일) 분당 김상운님(열사의 큰 형님) 댁에서 행정안전부직원들이 훈장과 훈장증서를 전달한다. 다큐영화 <1975.김상진> 제작진은 그 현장을 촬영한다.
나라가 민주화열사들에게 훈장을 수여한다.
미흡하지만 비로소 나라가 나라다워지는 건가?
기반기억
한 주체나 공동체가 어떤 맞닥트린 사건에 대해 정면돌파를 한다.
성공이든 실패든 전체 과정을 공유한 경험은 고스란히 그 시대의 ‘결’이 된다.
‘결’을 이룬 ‘시간과 공간, 주체들이 맛본 자각의 총합’을 ‘기반기억’이라 부른다.
기반기억은 다음에 또 다른 어려움이 도래하더라도 문제를 풀어내는 ‘동력’이 된다. 동시에 그다음에 쓰일 또 다른 기반기억으로 차곡차곡 쌓여간다.
내게 김상진은 기반기억이다.
세상이 변하고 386,486, 586어쩌니 하면서 꼰대 어쩌고 비아냥거리고 코웃음친다. 저렴하고 비열한 흐름이 판을 친다 해도 그들이 누리는 모든 ‘자유로운 지금’은 자신을 희생해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분들의 삶이 만들어낸 결과다.
나도 그렇다. 한 생을 살면서. 그분 덕에 강제징집당해서도 견뎠고, 어려운 일로 삶이 고단할 때도 넘어설 수 있었다.
일제 치하 철도 공사장에서 서로의 눈짓으로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내천]을 확인하고 갑오년 동학혁명에 출병했다는 동지애를 확인하는 지삼출과 강기호의 벅찬 감동이 생생하다.
갑오년 출병은 비록 좌절했을지라도 강기호와 지삼출들에게 기반기억으로 살아나 훗날 3.1운동, 독립운동, 4.19, 5.18, 민주화운동, 촛불시민혁명으로 이어진다.
내가 살아있는 한 서로의 눈짓으로 김상진알아? 조영래알아? 강경대, 김세진, 김경숙열사….
“너 민주화운동을….” “아! 그랬구나….”
민주화열사들을 서로 공유하는 사람들과 한껏 호기 부리며 살려고 한다.
그들의 생각을,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어받아 사는 거 좀 자랑하면 안 돼? 그게 내 삶의 존심인데….
내일 훈장 수여 장면을 ‘풍성한 호흡’ ‘풍성한 상상’으로 영상에 담으려고한다.
김상진열사가 모처럼만에 역사로부터 대접을 받는 날이다.
스물여섯 청년 김상진이 팔순이 넘은 큰 형님과 나란히 서서 나라가 건네는 훈장을 당당히 받고 환하게 웃는다. 두 팔 들어 뒤를 돌아 우리를 쳐다보고 깡충깡충 뛰면서 즐긴다.
열사는 그렇게 또 다른 기반기억으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것처럼.
.
.
안병권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