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청년협동조합 밥꿈 대표, 농경제사회학부 08
진주에 사는 저는 요즘 길을 오가며 수많은 거리 현수막을 만납니다. 체육회, 봉사단체 협의회, 경제활성화 위원회, 지역사회 보장협의체, ○○동 시민수사대, ○○동 행복만들기위원회 등등. 아 저런 단체도 있구나, 아니 실제 있기는 한 단체일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단체 이름은 다르지만 한결같은 현수막 내용은 LH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역민과 논의 없는 졸속결정! LH 분리 반대한다” “LH 분리개혁, 진주시민은 불허한다!” 이런 내용들입니다.
다들 불법 현수막인데 진주시 입맛에 맞는 현수막이어서인지 떼지도 않고 현수막은 나날이 늘어갑니다. 집에서 TV를 틀었더니 시사프로그램이 진행 중입니다. 평소라면 서로 싸우기 바빴을 여당, 야당 정치인과 시민단체 인사들도 같은 목소리를 냅니다. LH 분리는 안된다. 민과 관이, 좌와 우가 이렇게 대동단결하여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구나 싶습니다. 부동산 투기의 주범으로 전 국민의 지탄을 받던 LH는 이렇게 진주시가 똘똘 뭉쳐서 지키겠다 나서고 있습니다. 심지어 직접적으로 이런 현수막 문구도 있습니다. ‘진주를 지켜줬던 LH를 이제는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LH가 진주를 어떻게 지켜줬는지도 모르겠고 또 우리는 LH를 누구로부터 어떻게 지켜야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가장 뜨악한 현수막은 진주시 4개 대학(경상국립대학교, 한국국제대학교, 진주보건대, 연암공대) 총학생회장단의 것이었습니다. ‘LH 입사만 준비해온 우리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지역의 가장 큰 공기업이 해체되거나 규모가 작아져서 지역인재 채용과 같은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는 취준생들에게 정말 걱정스러운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4개 대학의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회의를 하고 ‘LH 입사만 준비해온 우리들은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같은 제목의 현수막과 성명서를 준비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을 전 과정을 상상해보면 학생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지역균형발전, 부동산 투기 근절, 청년들이 희망하는 좋은 공기업 일자리, LH가 들어선 진주의 혁신도시 아파트값….
LH에서 투기와는 일절 관계없이 열심히 일하던 대부분의 노동자들, 그들을 대상으로 음식을 파는 자영업자, 공기업 취직을 목표로 열심히 준비 중인 진주의 대학생들.
지역균형발전이 중요하지만 그래서 내 지역에 있는 것을 빼앗길 수 없고, 부동산 투기가 문제지만 내 아파트값은 올라야 하는 욕망과 가치들이 뒤섞여 지금 진주에는 100장은 족히 넘을 현수막들이 모든 읍면동에 펄럭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LH 개혁안이 투기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라는 주장 뒤에 모두 각자의 욕망을 숨긴 채 하루가 멀다 하고 성명과 일인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광경들을 보며 불편하던 마음을 오늘 조금 시원하게 해 준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 본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소식이었습니다. 7월 15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보도자료를 내고 “농지를 농민에게” 투기농지 몰수! 농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전국농민대회”를 7월 30일에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동안 본 어떤 현수막과 성명서보다 전농의 농민대회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전농 보도자료 일부.
LH 사태로 촉발된 땅 투기를 통한 불공정한 수익창출 중 농지가 투기대상의 대게를 차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헌법에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나 현재 통계상 비농민 농지 소유가 50%를 넘고 있으며 상속, 이농 등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비농민 소유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향후 30년 후에는 비농민 소유 농지가 전체 농지의 84%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중략)
이에 농민이 농지를 소유, 이용하는 헌법의 경자유전의 원칙이 실현되는 사회적 동의 및 합의가 필요하고 이는 토지공개념의 일환인 농지공개념 도입으로 이뤄낼 것을 주장한다. 또한 농지 전수조사를 통해 투기 목적이 명확한 농지는 공시 가격으로 국가가 직접 매입하여 청년농 등이 활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김수현 _ 농경제사회학부 08학번. 청년협동조합 밥꿈 대표. 뭘 하면 좋을까 새로운 꿍꿍이에 골몰하며
내성적인 주제에 계속 사람들을 모으고 커뮤니티, 공동체를 꿈꿉니다. 청년, 사회적 경제, 지역, 마을자치
오만가지 관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