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삼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 농경제 79
현생인류(Homo Sapiens)의 출현은 약 15만 년 전이라 한다. 지구행성의 나이를 약 45억 년이라고 추정했을 때 이를 24시간으로 환산하면 23시 59분 59초 정도 된다.(지금 방금 계산기를 뚜들겨봤다.) 행성 종말(?)의 거의 마지막 1초를 남겨놓고 대가리가 커서 머리만 좋을 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지구 상에 등장했다. 심지어 이 한심한 종족은 사냥을 할 줄 몰라서 도구라는 것을 발명하고, 날것을 먹을 줄 몰라서 불을 발견한다.
머리는 ‘기깔나게’ 좋아서 필요한 것은 다 창조해낼 줄 안다. 오죽하면 전지전능한 신(神)도 창조해냈겠는가!! 그야말로 잔머리의 총화이다. 도구만이 아니라 세치 혀의 놀림이 좋아 언어도 만들어 낸다. 그러다 보니 상대가 좋아하는 말만 할 줄도 안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뭔가 있어 보이고, 뒷배가 든든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침묵하거나 완곡한 비판을 가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혹하리만큼 확신에 찬 비판을 가한다. 알랑댈 줄 안다.
주민운동을 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은 사람이다. 비판과 주장은 많은 경우에 있어서 명분으로 겉포장한 허울에 불과하다. 계산과 명리에 밝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지쳐서 지역을 떠나기도 한다. 결국 엄청난 진리 명제가 탄생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라고 하는!!
물론 이러한 명제에는 일정 정도 옳은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주민운동이 주민 스스로가 주민들의 힘으로 만들어가야 하기에 결코 짧은 시간 안에 선도적인 이끌림으로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신규 활동가들에게 “느리게 느리게” 하라고 한다. (갑자기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가 떠오른다.) 그러나 앞선 명제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 이면에는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이기적 자기보존주의가 교묘하게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0개월 간 삼양주민연대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진행한 『저소득 독거 중장년의 자립능력 향상을 위한 커뮤니티 통합 지원 프로그램』이 사업부문, 회계부문 모두 “매우 우수”의 만족스러운 최종 사업 평가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3년 여 동안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핵심 참여자들의 특성에 의해서 일정 정도의 제한점을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그 주요 원인은 사례 참여자들이 주로 50대에 속한 기초수급자들이기 때문이다. 생애사건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만성적 질환에 시달리며 스스로 사회적 관계망을 단절한 이들의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고, 자립을 위한 의지를 고취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 핵심 참여자들 가운데 대다수가 기초수급자인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보충급여’ 방식의 사회복지제도는 이들이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것에 장벽으로 작용할 뿐이다. 왜냐하면 소득이 발생해서 수급비를 못 받게 되는 것이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3년 여의 사업의 최종 성과로 「강북중장년자립네트워크」라는 당사자에 의한, 당사자를 위한 조직을 출범시켰다. 이는 강북구 중장년 계층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개발하고, 교육하며, 이의 확산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베이비부머 세대로 대표되는 중장년 계층이 사회적 단절을 극복하고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활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협동과 나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지역사회와의 호혜 연대를 이룩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3년 여의 사업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코로나19 등의 환경적 요인이나 애초의 사업계획서 상의 미비점 때문도 있었겠지만, 마침내는 사람이었다. 가뜩이나 지역의 한정된 인적, 물적 자원 속에서 일을 성과 있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온갖 이합과 집산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생채기를 남기는 것은 다반사일 뿐만 아니라, 그럴듯한 논리로 덧씌워져 있기까지 하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던 시절은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확신이라도 있었던 순수 시대였다.
어느새 말의 향연이 난무하는 선거철이 가까워왔다. 대가리만 커서 ‘썰전’에 능한 호모사피엔스들이 득세하는 시절이다. ‘남편은 남편’(독자들은 이 subtext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일 수 있지만, 이기는 놈은 내편이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대가리가 작아서 좀 머리가 모자라는 사람들이여,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나는 자연인이다!!”를 외치며 당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혁명은 원래 보잘것없는데서 시작하는 것이니까.
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년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50대
후반에 들어 제2의 생애 설계를 통해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pine@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