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31 오전 125호(2021.07)

나 이렇게 산다
니가 엄마잖아!

박애란

요즈음 개그맨들이 할 일이 없단다. 현실이 더 웃기니 개그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연희야~ 연희야~”

고만고만한 형제자매들이 여섯이나 됐는데도 엄마는 꼭 일 시킬 일이 있으면 연희만 부르셨다. 까탈스런 둘째인 나는 제쳐두고 만만한 연희만 찾으셨다. 그러면 연희는 “아휴 지겨워! 또 나만 부른다! 나만.”

투덜대면서도 여지없이 엄마 심부름을 착실히 하곤 했다.

셰익스피어의 소설 ‘리어왕’의 셋째 딸처럼 착하디 착한 연희는 평생 고생하는 엄마를 제일 안쓰럽게 생각하고 엄마에게 지극정성 효도하는 착한 딸이다. 지금도 100세인 친정엄마를 모시고 사는 자식은 연희이다.

그 동생에게 어느 날 엄마가 묻더란다.

“엄마 어디 갔니?”

그러자 어이없는 동생이 이렇게 확인시켜 드렸단다.

“니가 엄마잖아!”

엄마 나이 올해 몇 살이냐고 묻는 동생에게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단다.

‘50살’이라고. 동생이 말했단다.

“엄마 딸인 내가 69살이야. 엄마. 엄마는 100살이고.”라고 말하니. 엄마는 내가 무슨 100살이냐고 펄쩍 뛰셨단다.

이걸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참말로. 코미디가 따로 없다.

“니가 가져갔지! 어쩌면 동전 한 닢 안 남기고 다 가져가니!”

도끼눈을 뜬 엄마의 확신에 찬 의심에 어처구니가 없는 연희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뒤집어지는 속으로 이불 속이며 장롱 또는 장판 속 등을 뒤져서 엄마의 비자금을 기어코 찾아냈다. 그런 다음 엄마에게 내밀며 말했단다.

“엄마 여깄잖아! 왜 애먼 사람 잡는데 왜?”

그러면 엄마는 독기 품은 눈을 슬며시 푸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그게 왜 거기 있니!”

연희의 그 말에 내가 훈수를 뒀다.

“그럴 때는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고 엄마가 치매기가 있으니까 그러신가 보다”라고 생각하라고.

동생은 말했다. “치매에 걸린 사람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거든!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그 심정을 모르거든! 막상 의심받는 입장이 되면 이성적으로 판단이 되는 게 아니라 억울한 감정부터 든다”라고.

치매 환자이니 당신이 돈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고 주변 사람을 의심하는 엄마의 의심병으로 이따금 힘들어하면서도 연희는 끝끝내 엄마 모시기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대퇴부 골절로 수술받은 엄마는 걷지 못하신지가 10년이 넘는다. 치매기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엄마를 이젠 요양원에 모시자고 형제들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연희는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집에서 모시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요양원에 모시면 엄마의 빈자리를 자신이 못 견딜 것이라고.

​연희가 16세 때인 1968년도였다.

중병으로 자리에 누워계신 아버지께 밥상을 차려드렸는데 바로 드시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드시려니 김치찌개가 식었다고 다시 데워오라고 하시더란다. 그러자 귀찮은 연희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단다.

“아휴 지겨워!”

지금같이 간편한 가스레인지가 없던 시기라서 연탄불에 데우려면 집안의 동선구조도 불편하고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연희의 불평에 화가 나신 아버지는 상을 엎어버리셨단다. 며칠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충격과 회한으로 장례일 내내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까무러쳤던 연희는 아버지의 장지에도 따라가지 못했다. 동네 어른들이 줄초상 난다고 말리셨기에 그런 것이다.

“내가 그때 참았어야 했는데 며칠 후면 돌아가실 아버지께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하는 회한을 연희는 평생 가슴에서 지우지 못한 채 살고 있다. 1개월 전쯤 아버지와 있었던 사연을 전화로 주고받으며 연희와 나는 또 서로의 핸드폰을 붙잡고 꺼이꺼이 한참을 울었다. 연희는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면 자신이 죽을 때까지 또 다른 회한으로 남게 된다고 하며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다.

괄약근이 풀어져서 종일 배출하고 있는 엄마를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다. 내 동생 연희는.

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