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진화 연구를 통해 보람을 느낍니다!
–현장과 밀접한 연구, 긴박함 속에 적시 경고로 재산과 인명피해 줄이기
산불과 국립산림과학원
– ‘산불 전, 산불진화, 산불진화 후’ 산림방재 및 복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 과장 이병두
산불과 산사태를 연구하는 산림방재연구과에는 산림재해예측분석센터가 있습니다.
이 센터는 봄, 가을에는 산불, 여름철에는 산사태 대응을 위해 카멜레온처럼 변신합니다.
산불, 산사태 비상상황이 동시에 발생한 적도 있습니다. 이 센터를 통해 빠른 시기에 정확한 위험정보를 제공해서 효과적인 대응이 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자리잡진 못했지만 주간, 월간 산불전망도 발표합니다.
산불 전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통해 현재와 3일 후까지의 산불위험지수를 계산하여 표출하고, 관계자 분들께 알려드립니다.
2020년 강원도 대형산불처럼 건조와 강풍이 동시에 오는 최악의 상황이 예측되면 대형산불주의보를 발령합니다. 위험상황을 보도자료로 작성해서 기자분들에게 알립니다. 사정도 합니다. “기자님 내일 정말 위험해요. 방송 좀 자주 내보내 주세요”라고요. 이 시스템은 365일 24시간 멈출 수 없습니다. KBS 방송국을 포함하여 여러 기관이 공동을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서버가 멈추면 그 즉시 대응해야 합니다. 주말 및 휴일에 2인 1조로 근무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산불 진화중
이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산림청에서 보통 오후 4시 반에서 5시 사이에 연락이 옵니다. “어디 산불현장에 과학원의 지원이 필요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이 시간에 전화가 울리면 과 직원들은 얼음이 되고 제 얼굴을 쳐다봅니다. 10번 중 9번은 큰 산불입니다. 불길한 예감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 팀을 꾸립니다. 출장 결제, 관용차량 신청은 뒷전입니다.
현장은 긴박한 상황에서 빠른 의사결정 능력이 요구되므로 3명의 ‘산불현장지원단’이 출동합니다. 사무실팀은 서류 작업과 함께 산불확산예측프로그램을 돌립니다. 센터에서는 예측 결과와 현재의 상황을 고해상도 지도 위에 표출하여 상황도를 작성합니다. 모든 정보를 종합해야 하고, 지도와 지리분석시스템(GIS)을 활용해야 하므로 장기간 훈련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 상황도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산불 현장 외에도 산불중앙상황실, 행안부 상황실, 국가위기센터 등 모든 재난 대응 기관에 실시간으로 공유됩니다.
(하략)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상기후와 더불어 대형산불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더 이상 산불 안전지대도, 예외지대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일 년 내내 산불 조심 기간인 시대가 도래하였다. 산불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최일선에 있는 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장 이병두(산림자원 93) 회원을 만났다.
먼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렸다.
현재 직책은 산림방재연구과장인데요. 산림방재 중에서 산림재해에 관련이 되어있어요. 산불과 산사태를 연구하는 조직의 과장을 맡고 있습니다. 연구만 하는게 아니라 산불이 나거나 산사태가 나면 산림청 지원을 해야돼요. 지원을 한다는 의미는 대형 산불이 나면 이 산불이 어디로 확산이 될 것인지 또 얼마나 빨리 갈 것인지를 예측해서 산림청에 정보를 제공하면 산림청에서 주민들을 어디로, 어떤 경로로 언제 대피시켜야 하는지 등을 결정하는 거죠.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과 산사태 예측 및 분석
산불 나기 전에는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 오늘 산불이 날 위험이 얼마나 높은지, 낮은지 지역별로 그런 것들을 예측해서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해드리고 있어요. 산사태와 관련해서는 지금 비가 많이 오면 주민들에게 문자가 들어오잖아요. ‘산사태와 위험이 있습니다. 대피하시기 바랍니다’와 같은 재난 문자가 가기 위한 분석 자료가 다 저희 쪽에서 나가요. 전국을 권역별로 나눠서 그 권역의 땅 조건과 숲 조건들을 분석해서 ‘이 땅은, 이 숲은 지금 얼마만큼의 물을 보관할 수 있는데, 그 보관할 수 있는 양의 80%가 찼다’하면 시군구의 지자체 담당에게 주의보가 나가고 100%가 넘어가면 경보가 나가게 되는 거죠. 그러면 시군구 담당자들은 그것을 기초로 해서 지역주민들에게 대피 문자를 날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죠.
산림청에 중앙상황실이 있고요. 저희가 산림청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그분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데 참고되는 자료들을 계속 지원해주는 거죠. 산불 등급(관심-주의-경계-심각)을 결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들을 바탕으로 분석해서 올리는 역할을 산림과학원에서 합니다. 봄철 같은 경우에는 삼월이면 삼월산불위험 전망을 발표를 하기도 하고, 하루하루 어느 지역이 산불 위험이 높은지 분석하여 국가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통해서 안내를 하기도 하고요.
작년에는 장마, 정체전선이 너무 길었잖아요. 중부지방을 기준으로 해서 54일이 지속됐었죠. 지금까지 역대 가장 긴 기간이었는데요. 산림청에서는 국민들에게 재난 등급(관심-주의-경계-심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제 과학원에서 의견이 나가야 되거든요. 아침저녁으로 계속 분석보고서를 내줘야하니 많이 힘들었죠.
현장지원단과 원인조사단 활동
산불이 나면 팀원들로 구성된 ‘산불현장지원단’이 현장에 나가 현장을 지원합니다. 긴박한 상황 속에 빠른 의사결정 등 다양한 현장지원을 하고요. 드론팀은 화재 현장을 촬영하여 상황실로 전송, 상황도를 작성하도록 지원합니다. 이후 원인조사단 활동도 저희 과에서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산사태가 일어나서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곳들은 굉장히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되거든요. 누가 원인이냐부터 시작해서 누가 피해보상을 해야 되냐 등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도로 공사를 하다가 무너진 것인지 아니면 산에서 산사태가 난 것인지 등을 밝히는 원인조사단으로도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작년 장마기간 동안에 굉장히 힘들었죠. 산불도 마찬가지로 원인 조사를 똑같이 합니다. 얼마 전에 문제가 됐던 게 미군의 군사활동, 군사연습을 통해 화재가 났는데 그 지역주민들이 군사훈련에 반발하며 미군부대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경우 정말 이 산불이 미군의 군사연습 때문에 났는지 산불의 최초 발화지를 찾아야 되고 그 최초 발화지에 가서 포탄이 원인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산불도 똑같습니다. 대형산불이 나거나 산불에 의해서 사람이 죽거나 하면 그 원인을 조사하는 원인조사단으로 활동을 해야 합니다.
숨 쉴 틈 없는 일정 속에 느끼는 일의 보람
산사태와 산불 두가지를 다루다보면 일년이 다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연간 일정을 물었다.
다른 연구조직과 다르게 일 년 내내 바쁜 부서입니다. 매년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봄철 산불조심기간이고요. 끝나자마자 5월 15일부터 산사태조심기간이 시작되거든요. 11월 1일까지 산사태 조심기간이 가고 또 11월 1일이 되면 가을철 산불조심기간이 시작돼요. 그래서 12월 15일까지. 그러니까 거의 일 년 내내 비상근무가 있죠. 연구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비상근무가 있는, 주말에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계속 나와야 되는, 그래서 업무피로도가 심한 부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의 보람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연구조직이면서도 너무나도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수행하다 보니까 저희 연구가 잘 맞아서 인명이나 재산피해가 안 나면 보람이 있고, 그런데 저희가 뭔가 경보를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재산피해나 인명피해가 나면 어찌 보면 저희들 책임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2020년 봄에 고성에서 산불이 났는데 다들 잘 막았다고 평가를 내리고 대통령이나 총리께서도 칭찬을 많이 했는데요. 그때 산불확산 예측 프로그램을 돌리자마자 동해안까지 너무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는 것으로 예측이 돼서 “불을 끄는 것보다 무조건 목숨을 살려야 되는 쪽으로 집중해야한다, 그러므로 주민들을 다 대피시키는 게 전략의 최우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고요. 그래서 주민들이 잘 대피를 했고, 그 결과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었죠. 산사태도 적시에 경고가 가서 대피가 잘 이루어지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약간의 보람을 느끼고 그런 게 있죠. 연구인데 연구가 아닌 것 같은 그런 조직입니다.
드론을 활용한 산불 대응, 그리고 기술적 연구들
2016년에 개소한 산림무인기운영센터(드론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드론으로 대형산불들을 찍어서 산불이 어디만큼 왔고 얼마나 빠른 속도로 가는지 분석해서 그런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죠. 정부부처 내에서 산림청이 다른 부처보다 드론을 빨리 도입하고, 국민 실생활에 밀접하게 사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그 과정에 저희 과가 상당한 기여를 했죠. 무인기 차량도 처음 저희가 구상을 해서 만들었죠. 드론을 가장 먼저 도입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저희 같은 경우는 산불하고 산사태를 대하다 보니까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은 거예요. 산불 같은 경우에는 산 몇 개가 타는데, 이건 드론이 아니면 파악이 안 되는 거죠. 불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그런 것들을 파악을 해야 어떤 헬기는 어디를 끄고, 진화병은 어디로 가고, 소방차들은 어디 어디에 배치를 해서 민가를 보호하고 이런 전략이 나오는데 그러려면 정확한 불의 위치를 알아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드론을 초창기부터 도입해서 쓰게됐죠. 산사태도 비슷한 게 산사태가 나면 도로가 막히니까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갈 수가 없으니 파악이 힘들고, 그러다 보니 드론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거죠. 이런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신기술에 대한 습득을 빠르게 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주관부서인 국토교통부가 드론에 대해 뭔가를 정립하기 이전부터 드론을 사용하고 저희가 법 개정을 요구하는 일도 있었죠.
지금 단계에서 산불은 진화 헬기들이 끄고 있는데 연기 때문에 진화 작업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장들이 제일 선호하지 않는 직업이 진화 헬기 조종이에요. 왜냐하면 똑같은 기장, 똑같은 특수직 공무원인데 경찰청이나 소방청의 경우는 그냥 루트 비행만 있는 거예요. 골짜기를 들어가는 일도 거의 없고요. 그런데 진화헬기는 연기도 뚫고 가야 되고, 물도 써야 되고, 불도 있고, 이러다 보니 엄청나게 어려운 임무 중에 하나인 거죠. 이제 앞으로 가면 갈수록 헬기들이 무인으로 바뀌고 기장들은 실내에서 조종을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향을 염두에 두고 그런 방법들 즉, 무인 드론으로 진화탄을 터트리고 진화 약재를 뿌리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물만 뿌릴 경우 물이 마르면서 불이 또다시 살아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물보다 효과가 오래갈 수 있으면서 산에 뿌려지는 점을 고려해 환경친화적이면서 불을 잘 끌 수 있는 진화약재를 개발하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드론과 연결시키는 거죠. 드론에서 진화탄도 떨어트리고 진화약재도 뿌리는 시스템을 가지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연구할 시간 없는 연구소
이야기를 듣다보니 연구는 언제하는지, 과연 연구할 시간이 있기는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인터뷰 준비를 하며 보았던 20여편이 넘는 논문들은 과연 언제 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든 것이다.
제가 가장 힘든 점 중에 하나가 그거예요. 연구조직의 과장인데 현장을 대응하다 보면 시간을 많이 뺏기다 보니까 연구를 할 충분한 시간이 확보가 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죠. 한편으로는 다른 연구와는 다르게 연구를 통해 현장에 곧바로 쓰이기 때문에 예측을 잘해야 하는 부담이 있죠. 재난재해가 났을 때는 엄청나게 과학적으로 잘 대응을 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예측을 더 잘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대응을 잘할 것인가 이런 쪽에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논문을 많이 썼는데 과장이 되고 관리직군으로 들어서면서 논문은 거의 못쓰고 있습니다. 맨날 회의에 불려다니고, 예전에는 조사출장도 많았는데 지금은 이제 주로 대책회의를 하고 있죠. 연초라 그런지 회의가 더 많네요.(웃음)
학부 전공을 살려 대학원에서 산림자원 공부를 하던 중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 산불 쪽에 관심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저희 나라도 산불이 큰 이슈가 아니었거든요. 왜냐하면 나무들이 다 보잘것없다 보니까 불이 나도 그렇게 크게 타지를 못한 거죠. 숲이 울창하지 못하니까. 그런데 점점 숲이 울창해지면서 그리고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경험하지 못했던 기후변화로 갑자기 가뭄이 길어진다던가 그런 것들이 지속이 되면서 산불이 점점 커지면서 산불 쪽을 공부 해봐야겠다 싶어서 박사 때 산불 쪽으로 주제를 잡았죠.
승진하기 전에는 전국의 산을 거의 다 돌아다녔어요. 전국적으로 산불이 안나는 곳이 없으니까요. 봄철 되면은 전국에 있는 산의 반 이상을 조사를 다녔는데 제가 평생에 가보지 못 할곳도 가봤죠. 크게 산불이 난 곳은 도대체 왜 산불이 크게 났는지 원인 조사도 하고요. 숲이 너무 빽빽하게 건강한 상태로 못 자라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다보면 연료가 많이 쌓이는 거고 그러다 보면 또 불이 나서 빨리 번지거든요. 그러면 숲을 얼마 정도로 가꾸었을 때 숲도 건강하고 산불로부터 더 저항성이 있는 숲이 될까도 조사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죠. 그때가 그립죠. 힘도 들었지만 곳곳을 다니면서 전국을 알아가니까, 우리 국토를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것은..
과 학생회장하고, 농대 부학생회장 하고, 선배들에게 끌려가서 시위하고….(웃음) 별로 특별한 건 없는데, 그래도 그때 같이 학생회하고 했던 친구들과는 아직까지도 끈끈하고 계속 만나고 그래서 굉장히 좋은 거 같아요.
학부시절은 아시겠지만 공부를 정말 안 했죠.(웃음) 박흔동 선배가 농대 학생회장이었을 때 저는 부회장이었고요. 부회장을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서로 미루다가 그렇게 됐죠.(웃음) 과 학생회장 했던 경험이 있는 동기들끼리 이야기하다가 ‘내가 하겠다’ 이렇게 된 거죠. 박흔동 선배가 회장으로 있으니까 크게 부담감이 없었는데, 박흔동 선배가 너무 빨리 구속이 되는 바람에…. 몇 달 버틸 줄 알았더니(웃음) 한 달인가 두 달만에 구속이 되는 바람에 갑자기 회장권한대행을 하게 되었죠. 그러다 보니까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고요. 학부 졸업 후 뭘 할까 하다가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더니 지도교수가 “용기가 가상하다. 그 성적으로 대학원을 오겠다니, 대학원에 오겠다는 학생 중에 그렇게 낮은 점수를 보지를 못했다” 그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성적은 형편없었죠.(웃음)
농대 학생회 부회장을 했던 때가 1995년이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 그때 시위도 많았고, 농대 이전 싸움도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총련 활동도 활발했을 때였죠. 저희들 같은 경우는 경기남부 총련에 속해서 경기남부총련을 거의 이끄는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까 대외활동도 많았죠.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게 그때 경찰들이 교내 진입을 했는데 딱 세 사람의 사진을 들고 다녔어요. 그게 한총련 의장, 경인총련 의장, 그리고 박흔동 선배 세 명의 사진을 들고 다녔죠. 우리는 뭐 우리를 굳이 치겠느냐, 우리가 뭐가 있다고 치겠느냐 했는데, 아무래도 경기남부에서는 영향력이 있고 그러다 보니까, 한총련 의장이 농대에 있다는 잘못된 정보가 경찰에 들어간 거 같아요. 만약에 그때 의장이 우리 학교에 들어왔다면 저는 알았겠죠. 아니면 그냥 학생회장을 잡으려고 하는 건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전경들이 학교를 둘러싸고 있고 교내 진입까지 했으니까, 그건 아닌 거 같다고 판단했었죠. 아무튼 경찰이 학교까지 들어와서 박흔동 회장을 급하게 여학생 기숙사로 대피시켰는데, 경찰들이 치고 들어오기 전에 이미 사복경찰들이 들어와 있었던 거죠. 사복경찰들이 대피시킨 지점을 정확히 알고 경찰들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잡아갔죠.
95년도에 학생회활동 하고 성적이 너무 안좋아서 졸업을 할 수가 없어서 1년 동안 펑크 났던 것을 채우고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학생회를 마치고 뭘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죠. 사실 그때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였어요.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었죠. 회장이 너무 빨리 잡혀갔고, 학내만 살펴서는 안되는 상황이 전개가 됐고, 또 연합활동에서는 우리 학교에 바라는 위치가 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일도 많았고, 많이 힘들었었죠.
앞으로의 방향과 목표 그리고 선구자를 보며 느끼는 것들
산불이나 산사태를 보면 항상 안타깝고요. 공무원으로서 제 역할은 결국은 연구를 통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연구를 통해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고요. 국가직 공무원으로서 그런 부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고 있고, 또 그런 것들을 더 많이 하고 싶은 거죠.
선구자를 보면 내 자신을 돌아보게됩니다. 내가 올바른 삶을 살고 있는가, 내가 학창 시절에 가졌던 것들이 지금 변했는가, 변하지 않았는가 그런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선구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넘겨보면 재미있어요. 간혹 익숙한 분들이 나오면 과거에 함께 했던 추억도 떠올리면서 또 한편으론 내 삶을 이렇게 돌아보게 되고 또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는 아주 묘한 매력이 있어요. 작은 책자이긴 한데, 그 어떤 힘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가 느껴야 될 것들, 공유해야 할 가치들을 깨우치게 해주는 거 같아서 정말 좋고요. 특별히 바라는 건 없지만 지금과 같이 꾸준히 계속 발간이 되고 소식을 공유할 수 있고 안부를 물을 수 있고, 서로 말할 수 있는 가치들을 다시 말할 수 있고…. 어찌보면 하나의 장이 되어 있잖아요. 새로운 시국 전개됐을 때 성명도 발표할 수 있고, 그런 토대가 되어 있는 거 같아요. 선구자를 통해서 사람들이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사진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이병두 회원은 ‘사진 고르는 게 제일 어렵다’고 답한다. “업무 특성상 언론요청이 굉장히 많아요. 대형산불이 나면 거의 모든 언론에서 먼저 인터뷰하기를 원하고 먼저 스튜디오 나오길 원하고 그러는데, 원칙은 스튜디오에 못나간다, 상황실에서 대응을 해야하니까 전화로만 한다, 그러면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는데 사진을 보내면 다들 너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웃음)
긴박한 상황 속에 언론대응까지 소홀히 하지 않는 성실함과 사진으로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유쾌함을 보며 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가 있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산불과 산사태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많은 분들을 이끌어가는 이병두 회원 같은 회원들이 이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는 마음과 함께.
임세진 _ 숭의여전 문창과에 입학, 문예창작보다 학보사 기사를 더 열심히 쓰고, 졸업 후 전국연합 기관지 ‘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신문 ‘건치신문’ 만드는 일을 하였다. 이후 성공회대 사회학과에서 공부하고 KOIKA 봉사단을 다녀온 후 현재 제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sejin3025@hanmail.net)
Last modified: 202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