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월 12월 14일
[제작일기] 스물다섯 안병권, 상진형을 그리워하다
두 달 여전 전두환의 강제징집‧녹화 공작 존안 자료를 정보공개 청구해서 받았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구 보안사)로부터 날아온 50여 페이지의 내 젊은 청춘.
요즘 내 존안카드를 중심으로 강제징집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군 시절 쓴 군대일기를 다시 읽다가 1985년 4월 11일 자에 눈길이 멈춘다.
상진형 10주기를 추모하며 쓴 글이다.
35년 전의 나, ‘1975.김상진’ 영화를 만들고 있는 요즘의 나
둘은 분리되면서 하나로 꿰매 져서 상진형을 그리워하고 있다.
-형, 형 ,형!
그 위대한 승리가 도래하는 날, 지하에서 소리 없는 뜨거운 갈채를 보내겠노라시며 의연하게 진리의 물결 속에 형님이 가신지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민족 앞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인간성의 질곡과 피폐된 자유를 부둥켜안은 채 험난한 생애를 스스로 산화시킨 형님의 영전에 무슨 얼굴로 고개 숙일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 보잘것없는, 아무 일도 해내지 못한 후배가 그 깊고 높으신 뜻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단 하나 형님을 존경하고, 이 나라의 자유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당신의 뜻을 받들어 영원한 진리의 행렬 속에 제 자신을 두고 싶기에 형님을 생각합니다.
왠지 잠이 오질 않습니다. 처연한 군바리 신세인지라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자야함에도 불구하고 더욱 생생 해지는 머릿속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10년 전 오늘, 당신이 스스로 당하셨던 그 아픔을 생각합니다. 뚜렷한 섬광을 번뜩이며 질책하고 계실 당신이 계시기에 잠을 이룰 수가 없나 봅니다.
만의 하나 당신의 그 의기의 한줄기가 제 가슴속에 이어져 조국의 운명에 분명한 역할을 기하는 인간으로 커나갈 수 있다면 그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략)
질식하고 있는 자유 속에서는 그 어떤 가치도, 그 어떤 행복도, 의미가 없고, 모든 생명의 존재성도, 상실되어지고, 우리의 역사도 정체되어 곪아 터질 것입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으리라는 웅엄한 결의로 조국을 향해, 역사를 위해, 모든 이의 참다운 삶을 위해 불퇴진의 결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형님이 가신 뜻을 이해합니다. 형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형께서 가신 이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겠지요
1985. 4. 11.
상진형의 10주기를 추모하면서 야초(野草)
2020년 12월 1일
[제작일기] 영화 <1975.김상진>촬영현장 _ 김창순과 그때 그 사람들
1975년 4월 11일. 김상진 형 옆에서 학보사 견습기자로 시위를 취재하던 서울 출신 신입생, 김창순은 형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보게 된다. 삶의 궤적이 전면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농민운동, 사회운동….
평생 상진형에 대한 부채감과 의무로 정성을 다했다. 씩씩하게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찾아 떠난 촬영 현장. 촬영 내내 상진형은 창순 선배와 함께했다.
부안 이준희님과 박배진님, 부산, 거창에서 먼길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두 분의 여성 동료들과 부군들. 7, 80년대 농민운동의 산 증인들을 만났다.
그분들이 김창순 선배와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은 ‘관계’였다. ‘관계’는 뜨거웠고 열정적이었고 든든했다. 40년 전 일이지만 함께했던 동지애와 아낌없는 마음은 고스란히 각자의 삶 속에서 ‘옳은 삶’을 향한 원동력으로 작동했다.
촬영하는 내내 유쾌했다. 지금 이나마 우리가 누리는 이 모든 것들은 이런 분들의 헌신과 투쟁 덕분이지 싶다.
2020월 11월 22일
[제작일기] 영화<1975.김상진>과 <김상진 실록>
‘특정한 역사 기록’이 실록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1975.김상진>를 찍으면서 시나리오 만들고, 제작일기 쓰고, 인터뷰와 스케치 촬영 진행 중이다. 인터뷰는 프리뷰로 문서화한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 곡절이 생기고 변수들이 곁들여지지만 차곡차곡 내용을 채워가고 있다.
11월 21일, 부안 신호현 선배(71) 집에서 호남 동문 모임이 있었다. 주경석(71), 김현인(71), 소재선(75), 김승희(76), 박용환(78), 후배로는 김식이와 주연이가 참석했다. 한국사회과학연구회 이사장 허상수(74) 박사는 제주대 출신이지만 선배들과의 운동권 인연으로 참석했다.
김상진 사건 이후 고향으로 도망온 농대 친구들과의 교분, 1980년 4월 11일 김상진 장례식에 참석해서 김대중 선생 등과 함께한 추억을 이야기 나누었다.
71학번 선배들과 허상수 박사를 집중 인터뷰했다. 차 한 잔 나누며 1975년 4월 11일을 전후한 농대의 상황과 이후 각자의 삶에 대해서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 간에 잘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았다.
제작과정 내내 만들어지는 모든 자료는 ’김상진 실록‘이다. 영상, 사진, 문서자료로 이루어진다. 그 당시를 같이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와 남겨진 자들이 만들어낸 겹겹의 스토리들…. 그 무게감이 새삼스럽다.
영화는 영화고, 기록은 기록이다.
제작진의 목표는 투 트랙이다.
2020월 12월 2일
[제작일기] 촬영_햇살이와 할머니
영화 <1975.김상진> 제작진은 서울 공릉동 김창순 선배(75) 따님 집에서 손녀 햇살이와 김창순의 일상을 스케치 촬영했다.
1975년, 서울 토박이 신입생이 대학 입학하고 두 달 후에 눈앞에서 벌어진 김상진열사 할복 의거….
그 후에 벌어진 김창순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삶의 여정. 그리고 지금.
김상진열사에게 가진 부채감, 동시에 그를 넘어서려는 노력, 엄마의 평생은 두 딸에게 반듯한 지표로 내려져 이어간다.
이어지는 김상진의 나비효과로 김창순 선배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콘셉트이다.
2020월 11월 14일
[제작일기] 2020년에도 열일하는 김상진열사 _ 민주인권기념관 촬영
“세월호 엄마들이 부러워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잖아요”
한 어머니의 절규다.
자식의 죽음이 또 다른 자식의 죽음에 얹어지고 있었다.
영화 <1975.김상진> 제작진은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치유모임 현장을 촬영했다.
군피해치유센터 ‘함께’는 어머니들 치유모임이다.
군 의료사, 군 의문사, 군 사고사….
신체검사해서 A급이라 판정해 군대로 데려가 막상 사고가 나면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기록부 및 편지, 일기 등 모든 자료를 열람해서 꼬투리라도 하나 잡히면 “거봐라 인성에 문제 있던 거 아냐? 가족관계가 폭력적이었구먼, 여자 문제네 여자…” 라며 죽음마저 비틀어 버리는 국가. 국가의 과오는 인정 안 하고 당사자와 가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국가.
여전히 적폐의 근거지는 단단하게 또아리를 틀고 있다.
국가는 낱말 하나 얻어걸리면 뒷 그림으로 소설 한 권을 쓴다. 내 새끼가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듯이 몰아간다. 그렇게 자식의 죽음을 난도질하는 나라.
자식의 억울한 죽음보다 다시는 그 억울함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인가 하고 싶은데 세상은 불러주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몰라준다. 그게 더 아프고 외롭다고 어머니들은 말했다.
엄마들은 카메라 앞에서 절규했다. 울었다. 인터뷰 내내 제작진의 마음 또한 먹먹하기 그지없었다.
11월 12일,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7층에서 진행된 오둘둘 회원 연성수 선배의 몸풀기 동작과 강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유와 행복이라는 주제를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지켜낸 자유, 평등, 형제애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다. 현장에서 연선배는 김상진 열사의 죽음과 자신에게 끼친 영향, 그리고 어머니들을 이야기했다.
영화 <1975.김상진>은 ‘시대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지금’, ‘현재’를 이야기로 풀어가는 중이다. 기회가 되면, 이런 엄마들의 아픔과 하소연을 다큐영상으로 제작하려고 마음먹는다.
오늘 촬영의 기본 컨셉은 ‘어머니’였다. 연선배의 마무리 멘트가 가슴에 남는다.
“저분들은 귀중한 민주화운동 자원이다. 아픔 이겨내서 잃은 거, 배운 거 잘 활용해서 세상을 뒤집는데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저분들은 내게 또 다른 어머니다.”
2020월 10월 31일
[제작일기] 순천 드라마 촬영장 답사
영화 <1975.김상진>은 사유 총량이나 시간 개념으로나 70년(間)의 의미를 담는다.
열사의 아래위 동년배들의 삶이 그러하고, 상진형이 고뇌하며 남긴 흔적들이 그러하고, 상진형이 살았던 1960년대, 1970년대가 그러하다.
영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비효과가 되어 오둘둘로, 주변 사람들로 날아가고 다시 그들로부터 다음 세대로 넘어가 2020년 오늘에 이른다.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의 시간과 공간, 사유의 무게가 그만큼 무겁고 엄중하다. 반면에 유쾌하고 경쾌하게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영화에 등장한다.
10월 26일, 영화 속 60, 70년대를 배경으로 상진형의 의미를 촬영 준비를 위해 순천 드라마 촬영장에 다녀왔다. 자취방, 음악다방, 호프집, 청춘, 고뇌, 막걸릿집….
내내 상진형의 생각, 상진형의 시선으로 같이 걸었다. 주막에서 라면 한 그릇, 형과 같이 나누었다.
안병권 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