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란(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이 곡은 10대부터 클래식 음악에 빠져서 좋아했기에 어지간한 오페라의 유명한 곡들은 빠삭하게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내 자만심을 무참히 깨부순 곡이다.
푸치니의 3대 비극인 ‘라보엠’, ‘라 토스카’, ‘나비부인’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나부코’ 등 주로 비극 위주의 오페라만 알고 있던 내게 영화 ‘쇼 생크 탈출’에 나오는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는 충격이었다.
“아니 저렇게 아름다운 곡을 이제야 듣게 되다니!”
“저 유명한 곡을 내가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겠지!’
허나 내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10여 년 전 ‘예술의 전당’에는 ‘클럽 오페라’라는 오페라 동호회가 있었다. 예술의 전당 차원에서 오페라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에서 ‘무지크 바움’의 오페라 동호회 회원인 김윤환 선생님의 ‘피가로의 결혼’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오페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말솜씨로 녹여내는 멋진 김 선생님의 ‘피가로의 결혼’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했다.
그의 해설이 어찌나 훌륭한지 오페라보다 그의 해설이 더 재밌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그의 맛있는 해설은 나를 행복의 강에 퐁당 빠트렸다.
이 곡은 어여쁜 소녀가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백작 부인인 로지나와 하녀인 수잔나의 이중창이다.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의 다른 제목은 ‘편지의 이중창’으로 수잔나에게 수작을 부려서 그녀를 차지하고 싶어 하는 백작을 마님인 로지나와 하녀인 수잔나가 공동작전으로 골탕을 먹이는 내용이다.
이 장면에서 여자인 내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참 어쩔 수 없어! 그렇게 공을 들여서 어여쁜 로지나를 차지했으면 끝까지 그녀를 사랑해야지…. 그 열정은 모두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한눈을 팔다니! 쯧쯧”
모차르트의 희극 오페라인 ‘피가로의 결혼’의 전편은 롯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이다.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알마비바 백작은 한 미모 하는 로지나에게 퐁당 빠져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서 애간장이 다 녹는다. 백작의 갖은 노력 끝에 결국은 로지나와 알마비바 백작이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 이들의 결혼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피가로는 이후 이발사를 그만두고 백작의 하인이 된다. 그런데 의리 없게도 자신의 결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피가로의 약혼녀인 수잔나를 욕심내는 게 말이 되냐고요!
편지는 수잔나가 백작에게 자신을 만나고 싶으면 저녁 무렵에 정원의 소나무 아래로 나오라고 적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수잔나로 분장한 백작 부인이 기다린다. 결론은 백작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부인인 로지나와 화해한다.
‘쇼 생크 탈출’에서 전직 은행의 부행장이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그는 감옥에 갇힌 죄수들에게도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노래를 틀어준다.
“아름다운 음악은 세계 공통의 최고의 소통 도구이다.”
이 노래를 들으며 죄수들이 눈물을 흘리고 나도 눈물을 많이 흘렸다. 대부분의 자유가 억압된 감옥에서 오랜만에 듣는 아름다운 음악은 죄수들의 가슴을 정화했을 것이다. 이때 주인공의 흑인 친구인 레드는 노래를 들은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난 이탈리아 여자들이 노래하는 것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사실 난 몰랐다.
나중에야 느낄 수 있었다.
노래가 아름다웠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는 높은 곳에서
아름다운 새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교도소의 벽들도 무너지고
그 짧은 순간에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클래식 음악은 영화의 품격을 높여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곤 한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가장 감명 깊은 장면은 교도소 담장 안에 울려 퍼지는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가 나올 때였다. 영화에 쓰인 클래식 음악은 서로 견인차 역할을 해준다. 작품성 흥행성 모두 성공한 이 영화로 인해 이후 사람들은 모짜르트의 음악을 알게 됐고 이 음악을 들으면 영화 ‘쇼생크 탈출’을 연상하게 된다.
.
박애란 _ 선생은 서둔 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2019년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엮은 책 『사랑 하나 그리움 둘』을 출간하였고 유튜브 ‘사랑 하나 박애란 TV’ 채널에 서둔 야학 이야기를 연속 제작해서 올릴 예정이다.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