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삼(삼양동 청소년아지트 센터장, 농경제 79)
나는 세 자녀(아들/며느리/딸)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한 여자의 남편이다.
궁색했다.
어떤 얘기로도 설득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은 가족들 간의 대화와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가정에 속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점에는 나와 아내에게 상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치적 판단이 얽혀 있는 예민한 사회문제도 서로 간에 상처 없이 토론이 가능하다.
우리 아이들은 정치성향 분석을 해보면 비교적 진보 스펙트럼에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더욱 아이들과의 대화가 수월하다. 굳이 밝히자면 우리 집에서 가장 스펙트럼의 좌측에 기울어져 있는 사람은 아내이다. 예전 노동운동을 할 때부터 늘 용감했던 여성 동지였고, 아내는 여전히 봄 이맘때쯤 동네 뒷산인 북한산 진달래 능선에 오를 때면 붉게 물든 진달래를 바라보며 “토벌군과 추위에 쫓기던 빨치산들 이제는 살았네.” 하며 이름 없이 스러져간 민초들을 떠올리곤 한다.
서울과 부산의 시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예전 선거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쓰이는 선거 구호는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도” 였는데 이번 선거는 “최악보다는 차악을”이었다. 그래서 나도 자식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이야기는 “그렇다고 오세훈 찍을 수는 없잖아!”였다. 아비로서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단체 대화방의 피로가 더 쌓이는 기간이었다. 어떤 이들은 선거의 판세가 이렇게 불리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을 “거대한 보수 적폐 언론의 집요한 공작에 의한 ‘위선과 무능’의 프레임 씌우기”로 분석했다. 정말로 그들이 선거 패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을 ‘거대 보수 언론의 공작의 승리’ 때문이라고 본다면 너무 안일한 정세분석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한 번도 우리는 그들 거대 언론 자본의 공작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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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 시절 종합편성 채널의 도입 논의 속에서 거대 보수언론의 방송장악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9년 7월 국회는 신문법과 방송법 일부 개정안에 의해서 신문의 방송사 겸업을 가능하게 했고, 기업의 방송사 지분 소유 허용에 대한 규제도 완화시켰다. 마침내 조선, 중앙, 동아, 매일경제 등 거대 보수 신문사는 방송까지 진출함으로써 TV조선, JTBC, 채널A, MBN을 통해 거대 공룡 언론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집요한 공작을 이겨내고 민주당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까지 전국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거뒀다. 심지어 박근혜 탄핵의 촛불 정국에서는 종합편성 채널인 JTBC 덕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정세분석의 오류에 대해서 반론을 하지 않았다. 그건 상황에 대한 판단이나 분석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귀찮아서’였다. 이런 느낌은 마치 명절 때 가족 친지 모두가 모여 있을 때 ‘절대 정치 얘기는 피한다’는 심정과 같았다. 어차피 자기 생각을 결코 바꿀 리 없는 친지들과 불필요한 논쟁 때문에 감정싸움에 휘말려서 진을 빼고 싶지 않은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그들 강성 덕후들은 더욱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기 쉬웠다.
지난해 말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아시타비(我是他比)’란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기간 중 사용을 금지시킨 단어 가운데는 ‘특정 정당을 연상시킬 우려가 있는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도 있었다.
애초에 긍정의 의미로 쓰이던 ‘대깨문’이라는 용어가 극우의 ‘일베’ 마냥 비아냥의 단어로 쓰인다는 것은 더욱 아쉬울 뿐이다.
민주당 후보를 찍으면서도 권리당원이 아닌 나는 어느 순간에 이번 선거에서 완패를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패배는 안이한 아전인수격의 정세판단을 더욱 활개 치게 하여 촛불시민혁명으로 쟁취한 정권의 주도권을 자칫 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2022년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있다.
이제 또다시 1년이 남았다. 2020년 4·15 총선에서 180석을 몰아줬던 민심을 딱 1년 만에 잃고 말았다. 다행인 것은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이 잘못해서 찍었단다.
이제부터 잘하면 된다. 내주는 데 1년이 걸렸으니까 다시 가져오는데도 1년이면 될 수 있다.
떠나간 내님이 돌아오실 날은 내가 하기 달렸다.
어차피 ‘내 여자니까~ 내 여자니까~’
(노래 가사일 뿐이다. ‘내 여자’라는 단어의 사용이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으로 느껴지는 분은 ‘내 남자’ 혹은 ‘내 사람’으로 바꾸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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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삼_ 젊은 시절 노동운동, 사회운동에 투신하였으며 결혼 후 30년간 강북구 주민으로 살고 있다. 50대 후반에 들어 제2의 생애 설계를 통해 사단법인 삼양주민연대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주민 참여와 자치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주민 권익과 협동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pine@chol.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