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0:24 오후 123호(2021.01)

청년, 미래를 꿈꾸다
늦깎이 취직일기

지난 2월부터 취직을 준비했습니다. 2019년부터 운영하고 있던 협동조합의 확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경험이나 능력, 지역에서의 인맥 없이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고 협동조합을 운영해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자극을 받기 위해서라도 직장생활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을 구하며 몇 가지 조건을 설정해두었습니다. 나의 관심사(농업농촌, 환경, 청년, 로컬 등)나 그동안 해왔던 활동(문화기획,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등)과 연관이 있을 것. 지금 살고 있는 진주시에 있거나 적어도 인근 지역일 것. 이런 조건을 생각해 두고 매일 구직 사이트와 지자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채용공고를 살펴봤습니다.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34살이라는 지금의 나이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취업시장에 나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민단체 활동이나 프리랜서, 협동조합의 대표를 하며 지내왔고요. 아르바이트는 꽤 많이 했지만 이번에 확인해보니 4대보험 직장가입이 되었던 적은 학교 다닐 때 포스코 스포츠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가 전부였습니다. 취업시장에 나갈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격증의 필요를 느낀 적이 없어서 가진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증뿐이었습니다. ‘증빙 가능한’ 경력과 실적도 많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태로 일자리를 구하려니 제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들을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나라는 상품이 시장에서 팔리긴 할까라는 고민을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진주시나 경상남도, 교육청과 같은 공공기관에서 백 명 이상이 모이는 토론회를 기획하고 진행한 경험들, 각종 공모사업과 연구사업을 하면서 쌓은 경험들, 협동조합을 운영하며 배운 행정실무 능력들을 포장하여 이력서 한 바닥을 채웠습니다. 그보다 문제는 지역에서 원하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 그냥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관심사와 활동에 아주 조금이라도 접점을 가지고 있는 일을 좁은 동네에서 찾으려니 더 어려웠습니다. 경상남도의 청년 지원정책을 수행하는 재단에 서류를 내고 면접도 (제 생각에는) 잘 봤지만 디자인 전공자를 우대한다는 문턱에 걸렸는지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사무팀장을 채용한다는 공고도 있었는데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그런 자리는 전부 내정자가 이미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진주시는 작년에도 공무직과 청원경찰 자리에 현 진주시장의 선거캠프 관계자와 전현직 공무원의 자녀들이 서류 점수에서 하위권이었음에도 면접심사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아 1위로 채용된 바 있습니다. 시민단체와 몇몇 시의원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했으나 진주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만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해 해당 채용자는 자진 사퇴했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채용비리 사건이 정리되었습니다. 이런 일들과 다른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볼 때 이미 내정자가 있을 거라는 주변 분들의 우려에 저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지원도 안 하려니 아쉬움이 남아 또 열심히 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의 비전과 나아갈 방향, 업무계획에 대해 A4 5페이지를 꽉꽉 채워 지원서를 작성해 제출했습니다. 서류접수 마감 직전에 접수를 했는데 제 앞에 접수를 한 사람은 50대 남성 딱 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내정자일까 아닐까 생각하며 돌아왔지요.

어느 날은 도시농업, 메이커 스페이스(일반 대중에게 디지털 기술 기반 제조기기들을 무료 개방하여 자유롭게 창작 작업이 가능하게 한 공간을 말합니다. 주로 대학에서 운영하나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공모를 받아서 희망하는 민간 기업에도 설치 및 운영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와 같은 분야의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몇 가지 형식적 질문을 던지던 사장은 갑자기 예상치 못한 질문을 해댑니다. “최근에 결혼하셨죠?”, “운동권이시죠?”, “노조도 해봤나요?”

40대 후반쯤으로 보였던 사장은 면접을 하기 전에 지원자인 저의 SNS를 탈탈 털어본 것이었습니다. 그게 입사 면접과 무슨 상관이냐며 쏘아붙였다면 좋았겠지만 전혀 예상치 않은 질문을 받아서 그랬는지 그러지 못했습니다. 듣자마자 화가 나지도 않았던 것 같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화가 났습니다. 입사 면접에서 “운동권이시죠?”라는 질문에 적절한 대답과 반응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 끝에 진주에 로컬푸드 사회적기업과 창원에 민간연구소가 최종 선택지로 남았습니다. 로컬푸드, 사회적기업은 평소 관심이 많던 영역이고 진주에서 꽤 오랜 역사와 규모를 가진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보다 업무적으로 저를 단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창원에 민간연구소를 택했고 신입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농산어촌개발, 지역역량강화사업, 마을만들기, 도시재생 주민교육과 같은 일들을 하는 곳입니다. 농촌마을 이장님도 만나고 동네 상인분들 대상으로 교육도 진행하며 열심히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하는 동안에는 최대한 마을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저도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 도시재생지원센터는 결국 면접을 가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소문을 들으니 그때 채용한 50대 남성분이 한글이나 엑셀과 같은 프로그램을 전혀 다룰 줄 모르고 일도 성심껏 하지 않아 다른 직원들이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그분은 내정자였을까요? 아니면 제가 면접을 안 가서 일대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하신 걸까요? 그냥 궁금해집니다.

김수현 _ 농경제사회학부 08학번. 청년협동조합 밥꿈 대표. 뭘 하면 좋을까 새로운 꿍꿍이에 골몰하며 내성적인 주제에 계속 사람들을 모으고 커뮤니티, 공동체를 꿈꿉니다. 청년, 사회적 경제, 지역, 마을자치 오만가지 관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Last modified: 2021-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