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6:25 오후 124호(2021.05)

[초보 정책가 일기]
혁신이라는 이름의 교육과 행정의 구분, 그 결과

김현수(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 환경재료과학 08)

짧았던 2기 진보정권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시 보수정권의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으로 대표되어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기반을 둔 1기 진보정권과 달리, 2기 진보정권은 개인의 리더십보다 각종 지방정부와의 공조에 초점을 맞추었다. 민주주의 점층적 성장에 따라 시민에게 주어지는 지방선거의 효용성이 보다 증대하여 이재명처럼 중앙만큼 주목받는 지방정부의 수장도 나타났다. 그 2기 진보정권은 이번 2021년 재보궐선거를 끝으로 수명을 다한 것처럼 평가받는다. 2022년에 동시에 있을 대선과 지선은 향후 5년~10년의 향방을 가늠할 텐데 현 상황으로만 보면 앞날이 그리 밝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2기 진보정권의 한 축을 담당해온,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르르 당선되어 지금까지 집권중인, 진보교육감들도 그 자리를 함께 도전받고 있다. 성과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면 내년의 향방에 함께 휩쓸릴 모양의 위기에 직면했다. 당연히, 지금까지 추구해온 혁신교육에 대한 재평가도 부동산 이슈의 부산물 중 하나로 요구받고 있다.

혁신교육은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2020년에 10년의 평가를 스스로 내려보기도 했다. 이제 교육청 장학사의 상당수가 혁신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인적 구성으로 교체되었다. 현장에서 혁신교육을 실천하는 교사의 그룹도 상당하다. 혁신학교의 숫자 자체도 서울은 17%에 이른다. 이들이 해낸 것은 무엇일까.

여러 교육적 가치를 이야기 하지만, 당장은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므로 성과보다 병폐에 대해 돌아보아야 한다. 가장 큰 부작용으로는 교육과 행정의 기계적 분리로 인한 갈등의 증폭이 꼽힌다. 소위 ‘혁신그룹’의 생각에 기저를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① 교원이 맡고 있는 업무 중 반복적으로 해내야 할 행정업무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

② 이것을 교육활동과 잘 분리해보면 뭔가 우리가 더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의 가설이 논리적으로 틀리진 않았다. 그래서 ‘학교업무경감’, ‘학교업무정상화’의 이름으로 하나씩 업무에서 교육을 분리해 보았다. 그로 인해 교무실무사가 늘어나고, 돌봄전담사가 늘어났다. 사서직, 전문상담직, 과학실무 등의 각종 업무를 분리해 공무직원으로 채용했다. 그 중 일부는 교사의 직함을 달았다. 공문처리를 전담하는 업무전담팀을 별도로 만들어 운영하기도 한다. 교육청은 이에 화답하기 위해 각종 학교로 내려 보내던 공문의 절대량을 줄이고, 전반적인 운영도 학교 자율에 맡기는 ‘학교자율체제’를 도입하고자 천명했다. 목적사업도 줄이거나 통합하여 학교가 알아서 운영하게끔 만들었다.

이렇게 업무를 쪼개고 나누어 가급적 교육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분리해냈다. 그 빈자리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 더 투자하는 시간으로 쏟고자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남은 것은 늘어난 교육공무직원의 숫자와 빈번해지는 학교 내부의 갈등이고, 소외된 학생들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분리해낸 것들이 정말 교육이 아닌 것들일까?

놀이터를 관리하는 일은 행정일까 교육일까? 아이들을 위한 준비물을 구비하는 일은 교육일까 행정일까? 학교에 부여되는 거의 대부분의 일은 교육적 목적을 위해 부과된다. 이를 세심하게 뼈와 살을 분리해낼 수 있다는 이상을 갖고 교육과 행정을 분리하려다 보니, 교사는 점점 수업 내의 가르침(Teaching) 이외에는 교육이 아닌 것이라 주장하게 되었다. 포괄적 개념에서 수업을 준비하고 학생과 교류하며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모든 행위를 교육이라 여길 수 있음에도 의미를 의도적으로 협소화 시켰다.

그 결과 혁신 10년 차에 우연히 맞이한 코로나19 위기에서 학교의 민낯이 드러났다. 수업을 지켜보는 부모들은 학교교원이 학원강사보다 나은 점이 뭐냐는 불만을 쏟아낸다. 그간 혁신이라는 이름의 학교업무정상화가 누적해온 교육과 행정의 분리로 티칭 이외의 모든 것을 교육에서 소외시켜온 결과이다. 진보교육감과 혁신그룹은 이 흐름에 원죄를 지고 있다.

물론 해답은 있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소외시켜온 여러 내용 중 학생에 대한 진단‘평가’가 있다. 2019년 전교조는 학생들의 기초학력 진단을 막고자 서울시교육청 본관을 점거했다. 이는 다른 말로, 아이들을 더 이상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 결과 원격교육시기에 방치되어 벌어진 학력격차가 우리 곁에 남았다. 이제는 이러한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아이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뒤처지는 아이들을 끌어올릴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해야 한다.

일반행정은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곳으로 표를 행사했다. 마을과 도시재생, 협치와 시민주도의 서울은 이제 다시 재건축과 재개발, 관주도로 돌아갈 예정이다. 진보 쪽의 일반행정이 사람들의 욕망을 이념으로 억제하려 했기에 생긴 반동이다. 이 상황에서 교육행정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 당장 내년까지 주어진 1년여의 시간 동안 반성과 성찰이 가능할까. 진보와 혁신이 과연 그 길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그냥 방치된 채로 내년이면 2기 진보정권이 전부 막을 내릴 것 같은 우울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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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을 설립하여 활동하다가 현재는 서울시교육청 교육감 정책보좌관으로 일하고 있다. (edukhs1@gmail.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