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57 오후 124호(2021.05)

[김상진 영화제작기 7]
누구나 꺼내 쓰는 민주주의

안병권(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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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든 깨어있는 시민이 없던 시절, 폭정, 폭압, 후안무치로 세상이 암흑기일 때, 홀로 깨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간 한 청년이 있었다.

시민들의 함성소리가 잦아지며 다시 암전 된 화면 속, 희미한 빛줄기 속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한 청년의 다리가 뚜벅뚜벅 걸어 나온다. 그 위로 깔리는 청년의 묵직한 육성.

“힘들지? 하지만, 멈추지 마!”

청년의 다리가 계속 어디론가 향한다. 움직임에 따라 점점 드러나는 청년의 전신.

그대는 누구입니까? 스물의 내가 물었고, 마흔의 내가 묻고, 40여 년이 흘러 60이 넘은 내가 묻는다.

완전한 뒷모습의 청년이 그 목소리에 화답하듯, 문득 멈춰 서서 대답한다.

“시대정신일세!”

아무도 나서지 않았을 때 앞서갔던 존재.

“내 다른 이름은 김상진이네”

한결같다.

뒷모습의 청년이 서서히 뒤돌아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따라오라는 듯 손짓한다.

다시 돌아서서 저 멀리 뚜벅뚜벅 걸어가는 청년의 뒷모습, 김상진이다.

– 1979년, 대학 입학했을 때 상진형은 불꽃처럼 ‘민주주의’로 왔다.

– 2019년, 처음 영화 제작을 기획했을 때 상진형은 ‘시대정신’으로 다가왔다.

– 1983년 6월, 긴급체포, 수원경찰서 보안분실에 4일간 있었다. 다음날 아침 ‘강제입대’ 결정통보받고 밤잠을 설쳤다.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안했다. 그때 간절함으로 불러들였던 존재, 김상진

– 한 갑자 구비구비, 삶의 분기점에서 뭔가 선택을 해야 할 때마다 형을 소환해서 판단을 구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아왔다. 내 인생 나침판이다.

– 2021년 4월 7일,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선에 참담한 마음 가눌 길 없을 때 46주기 추모식에서 다시 형을 소환했다.

이번엔 형이 웃는다

힘들지? 힘들거야 아마도!

하지만, 멈추지 마! 토닥토닥

열사가 누워계신 민주공원에서 나는 ‘긴장을 늦추지 말라’ 민주주의 백신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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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1975.김상진>

영화를 제작하면서 인간사나 세상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음을 새삼스레 느낍니다. 2019년 가을 제작발표, 2020년 늦여름이면 영화를 개봉할 수 있으리라 설계했습니다. 오마이컴퍼니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2천5백만 원, 김기사 후원금 5백만 원을 보태 1차 제작비로 충당했습니다.

2019년 말부터 작년 2월까지 부지런히 관련 당사자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관악캠퍼스에서 오둘둘선배들 인터뷰와 심층 촬영을 오후 내내 진행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흔쾌히 시간을 내주셔서 김상진에서 오둘둘로 이어지는 숨 가쁜 역사를 캠퍼스 구석구석 스케치 촬영하며 마쳤습니다. 그날이 2월 13일입니다.

일주일 후부터 코로나19 상황이 벌어져 이후 촬영은 불가능했습니다. 인터뷰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 아이디어를 보태고 내부적으로 시나리오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을 지냈습니다.

7월에 갑작스럽게 박원순 시장이 돌아가시고 세상은 출렁거립니다. 저는 시장님의 조카 등과 심층 촬영 일정까지 의논 중이었습니다. 중요 인터뷰 대상자이자 오둘둘 현장 멤버인 시장님의 부재는 저희 제작진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가을로 접어들자 거리두기가 부분적으로 여유가 생기는 듯했습니다. ‘김상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삶의 여정을 찾아가는 콘셉으로 서울, 전북 부안 등 현장을 찾아 촬영을 마쳤습니다.

2021년 2월, 제작진은 다시 새로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현재 영화 제작에 필요한 촬영을 55~60%정도 진행했습니다. 남은 일정은 열사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재연)입니다. 주·조연배우들 30여 명과 촬영, 조명, 의상 등 스텝진들과 함께 캠퍼스, 순천드라마 세트장, 군대 세트장등 특정한 촬영지로 내려가 일주일 정도 촬영하는 일입니다.

변수가 없으면 7월 중으로 현재까지 촬영 물량으로 1차 편집하여 ‘내부 시사회’라도 가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군요. 그래서 다시 스탠바이 상태입니다.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니 급하지 않게 만들어 가겠습니다.

제작진은 영화 이외에 ‘김상진 영상실록’을 기록 중입니다. 직접 당사자이자 관련자인 우리의 눈으로 열사와 관련한 인물들과 행사, 자료, 영화 촬영 장면 등등을 생생한 영상자료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쓸 것은 꺼내 쓰고 남은 자료들은 일목요연하게 정리 기록할 것입니다.

훗날 대한민국의 역사가 ‘김상진 스토리’를 다시 필요로 할 때 누군가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서너 달 안에 코로나 방역 거리두기가 조금 풀려서 5인 이상이 모일 수 있으면 여름쯤엔 촬영이 진행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금년 안에 1차 ‘내부 시사회’ 마치고, 결과와 의견을 반영하여 보강·촬영하려고 합니다. 2차 편집해서 연말에는 세상에 선을 보일 수 있습니다.

김상진 형의 ‘삶 결’이 시대를 타고 넘어 ‘민주주의 시대정신’으로 아로새겨지길 기대합니다.

다시, 김상진.

‘기억하기 좋은 김상진’이 아니라 ‘퍼트리기 좋은 김상진’으로 지금과 앞으로의 시·공간에서 ‘누구나 꺼내 쓰는 민주주의’로 작동하기를 바랍니다.

제 작업이 후회 없이 마무리될 때까지 아낌없는 후원과 격려 보내주십시오.^^

조만간 다시 소식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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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권_ 이야기농업연구소장, 농생물 79,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는 것을 돕는 ‘이야기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 『도시와 통하는 농촌 쇼핑몰 만들기』, 2011년 『이야기 농업』, 2015년 『스토리두잉』 등 세 권의 책을 펴냈다. (ecenter@naver.com)

Last modified: 2023-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