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4 오후 138호(2024.10)

[선구자 인터뷰]
“강릉인권영화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거리로 나간 2년, 지역을 넘어 연대와 확장의 장으로
– 김중남 강릉인권영화제 조직위원장, 강승호 강릉원주대교수, 제1강릉포럼 공동대표, 이요한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임세진 편집위원

제25회 강릉인권영화제가 2024년 9월 6일부터 10일까지 개최됐다. 독립다큐영화 <1975.김상진>과 2014년 4월, 세월호 현장에 있던 언론인, 유가족, 생존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세 편의 이야기 <세가지 안부>, 이태원 참사를 다룬 <별은 알고 있다>를 비롯, 원주 아카데미 극장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투쟁, 차별 없는 세상을 그리는 교육노동자 이야기, 미군 사드 배치를 다룬 이야기, 보수와 진보 정치인을 꿈꾸는 두 청년의 정치 도전기, 강릉지역 단편영화 3편 등 다양한 영화가 상영됐다. 13편의 영화상영과 7편에 진행된 GV, 그리고 <강릉인권영화제 시민을 만나다>, <‘무용신’이 체험한 재외코리안 인권의 현주소>, <김성수, 청년, 인권>, <노동·인권> 등을 주제로 한 세미나, 인권강연 <경쟁교육과 인권> 등과 함께 문화공연, 축하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로 꽉 찬 5일이었다. 영화제를 진행한 김중남 조직위원장과 강승호(제1강릉포럼 공동회장, 중문 82) 강릉원주대 교수, 이요한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을 만나 강릉인권영화제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 주>

김중남 강릉인권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 제1강릉포럼 공동대표, 더불어민주당강릉시지역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에서 학업을 마친 후 공무원의 삶을 산 김중남 위원장은 2003년, 공직사회의 개혁과 변화만이 자신이 할 일이라 여기고 공무원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두 번의 해직을 겪었고, 노동조합을 대표해 형사처벌도 당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100만 공무원을 대표하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전국위원장을 역임했다. 2017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강릉시장 선거에 출마해 거대양당을 상대로 ‘1만 표, 10.09%’를 받으며 참신하고 새로운 지역 정치인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2024년 더불어민주당으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비록 보수의 벽을 넘지 못하여 낙선했지만, 권성동(국민의힘)을 상대로 강릉에서 무려 43%를 얻는 기염을 토하여 선전했다.

다양한 이력을 가진 그가 강릉인권영화제 조직위원장이 된 계기를 물었다.

김성수 열사와 오버랩되는 영화 <1975.김상진>

김중남 조직위원장은 먼저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 정근우 회장님 하고 안병권 감독님이 오셔서 행사가 빛났습니다. 대표님하고 감독님이 GV1도 잘해주시고 영화상영 이전부터 같이 계셔주셔서 인권영화제가 더 좋았다는 평이 있었고요. 내년에 50주년 기념행사 관련된 설명도 해주셔서 무척 좋았습니다. 와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전했다.

1) Guest Visit. 영화 상영시 감독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직접 방문하여 영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관객들과 질의응답도 주고받는 무대를 말한다.

9월8일 <1975.김상진> 상영후 진행된 GV


김중남: 영화 <1975.김상진>을 보면서 김성수 열사하고 오버랩이 돼가지고 더 의미 있었어요. 김성수 열사 관련 영화는 없는데, 사실 인권영화제 안에서 매번 김성수 열사를 얘기하고, 김성수 열사 부모님 모시고 인사도 하고 있는데 하는데 대표적인 의문사임에도 조명이 안 된 것 같아서 2021년에 뉴스타파에 방영된 <1986 김성수 의문사>를 틀고 열사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얘기를 했죠. 2022년에는 김성수열사 추모집 『김성수』를 한 권 냈는데 지금 김성수 열사 자료가 없거든요. 김성수 열사 어머니, 아버지가 강릉 강동면 언별리에 사셨는데 수해가 나면서 다 쓸려 내려갔어요.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어요.

강릉 독립영화 운동단체 씨네마떼끄가 운영해 온 강릉인권영화제

저희 강릉인권영화제가 25회를 했는데 시작한 지는 27년이 됐어요. 코로나 때 2년을 못 했죠. 강릉에 있는 정동진 독립영화제가 26회거든요. 강릉에서 정동진 독립영화제하고 강릉인권영화제가 같이 가는 구조입니다. 근데 두 개를 다 사실은 강릉에 있는 ‘씨네마떼끄’2라는 독립영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만든 거예요. 98년도에 하나는 그냥 독립영화제로 하고 하나는 김성수 열사와 관련된 부분을 같이 연결을 해서 인권영화제를 만든 거죠. 그리고 씨네마떼끄가 다 운영을 해 왔어요. 강릉인권영화제는 사실 영화인들이 하는 거였죠. 다른 단체나 참여하는 사람들은 옆에서 도와주는 형태였어요. 저는 공무원노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고 공무원노조로 참여하게 됐죠. 초창기에 정동진영화제나 인권영화제가 대단히 어려웠었거든요. 당시에 저희 공무원노조가 영화제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직접적인 운영이나 진행에 참여하지는 않았어요. 필요 서류 안내, 행사를 위해 시(市)가 해야 될 것들을 중재 또는 알선 등의 도움을 주고 주로 재정적 후원을 중심으로 했죠. 저희가 공무원 노조할 때 강릉시청에 조합원이 최고 1천 명 정도가 됐거든요. 어려웠던 시기에 도움을 많이 줬고, 강릉인권영화제는 지금도 공무원 노조가 가장 커다란 후원 단체예요. 막상 제가 진행하면서 보니까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씨네마떼끄가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2) 강릉씨네마떼끄는 영화공동체를 꿈꾸며 1996년 강릉에서 창립되었다. 초창기 소규모 상영회와 영화 세미나 등을 시작으로, 지역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독립영화를 공동체상영하고 영상미디어교육활동을 진행했다. 1999년부터 매년 8월 정동초등학교에서 새로운 독립영화를 만나는 정동진독립영화제를 개최하였으며, 1998년부터 2017년까지 강릉인권영화제를 개최했다. 2012년 강원 유일의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을 개관하여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대규모 산업 주도의 영상문화 속에서 영화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적 가치에 주목하고 꾸준한 실천을 모색하며 영화의 자리를 넓혀나가고 있다.

이십 년을 넘게 이어온 영화제, 운영주체의 고충으로 해소 위기

김중남: 이전에는 강릉 씨네마떼끄가 보통 금요일 토요일 1박 2일로 진행했어요. 영화 네다섯 편 정도, GV 한두 편 정도로 그렇게 크지 않은 소규모의 영화제였죠. 정동진 독립영화제 규모가 조금씩 더 커지고 강릉인권영화제는 영화인들이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인들도 자기 본업이 있다 보니까 어느 정도 한계에 부딪힌 거 같아요. 2017년에 씨네마떼끄 박광수 사무국장님이 20여 년 이상을 혼자서 해오다가 어렵다고 손을 놓고 ‘이제 못하겠다’ 이렇게 된 거죠. ‘그럼 어떻게 할까’ 하다가 다른 영화인들이 맡아서 하겠다고 했는데 그분들도 한 해 하고 어렵다, 그다음에 시민단체가 맡아서 했는데 그분들도 한 해 하고 또 어렵다고 해서 2019년 말에 인권영화제에 그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면서 ‘해소하자’고 결정하게 됩니다. 해소하고 각자 가자, 노동이면 노동, 여성이면 여성 이렇게 같이 각자 전문적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얘기가 나온 거예요.
당시에 저는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사실 이름만 걸어놓은 형태로 7~8년 정도 했었죠. 저의 임무는 매년 공무원노조에서 재정지원 받아오고 선배들하고 후배 이런 관계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 정도였죠.
회의를 그렇게 마치고 시간이 좀 지나서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홍진선 대표(농가정 84)하고 얘기하면서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이십몇 년을 유지해 왔는데 어렵다고 해소하는 게 맞느냐는 의견이 나왔죠. 근데 마침 그때 코로나 시기였어요. 그래서 일단 중단하고 코로나 시기가 끝나면 그때 다시 한번 얘기를 하는 구조를 만들어 보자고 했죠.
코로나가 끝나는 22년도에 주관단체 5개 강릉씨네마떼끄, 공무원 노조,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영화인 단체, 전교조가 모여 얘기를 하다가 ‘계속해도 실행을 할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사람을 살 수 있는 재정적인 여건도 안 되고 인권영화제가 자치단체로부터 돈을 받아서 할 영화제의 성격은 아니고, 그렇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금 없다’라는 얘기가 나왔죠. 때마침 제가 공무원노조 퇴직하는 나이가 되어 그만두고 ‘제1강릉포럼’ 사무실을 조그맣게 만들고 인권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그럼 내가 할게, 실무적인 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유지하는 거로 결정을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다만 ‘실무는 다 하는데 영화를 모르겠다. 인권 영화 선정과 관련된 부분만 영화인들이 맡아서 해다오’라고 요청했죠.

그러면서 이제 조직 체계가 바뀌는데 주관단체를 없애자는 애기가 나왔어요. 실제로 주관단체가 자기 역할을 못한다는 거죠. 재정이라도 충분하게 지원을 해주던가 사람을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던가 해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그런 게 강릉 지역에서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그동안 주관단체들이 관여한 건 없지만 영화인들 입장에서는 좀 걱정이 됐던 것 같습니다. 좀 더 발전적으로 주관단체를 없애서 옥상옥(屋上屋)3을 없애고 그냥 조직위원회가 다 하는 거로 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했죠. 대신 주관단체들이 그동안에 해왔던 도움은 계속하기로 하면서 2022년도에 강릉인권영화제가 다시 시작된 거죠.
그러면서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도 조금 더 들어온 거죠. 재정 쪽으로 조금 더 하고 행사 부문에도 조금 더 들어와서 행사 참여도 하고 행사 진행을 위한 활동도 직접적으로 해주고요. 지금 현재로는 저와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지역 영화인들 그렇게 세 파트가 서로 연대하면서 힘을 모아서 가고 있습니다.

3) 지붕 위의 지붕. 공연한 일이나 헛수고를 뜻함

운영방식과 함께 바뀐 일정, 거리로 나가 시민과 소통 시작

김중남: 작년부터 예전에는 1박 2일로 진행되던 일정을 확장했어요. 저희들 생각에는 ‘이렇게 하면 영화제가 유지는 될 수 있겠지만 누구한테도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일단 ‘우리 거리로 나가자’ 이렇게 된 거죠. 인권영화제 시기도 거리로 나가서 할 수 있게 바꾸자. 여름에 하면 가장 좋지만 정동진 독립영화제가 8월 첫째 주 금토일에 개최되니 봄 아니면 가을에 진행해서 강릉의 양대 영화제를 만들자 한 거죠. 3년 만에 조직도 바뀌고 다시 개최하면서 준비기간이 필요하니 가을로 가자, 그래서 9월 첫째 주를 강릉인권영화제 기간으로 잡은 거죠.


작년에 처음 해봤는데 평가는 괜찮다는 분들도 있고, 옛날에 했던 진지함은 희석된 거 아니냐는 평가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강릉에 인권영화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영향력을 미치는 거지라고 생각해요. 욕을 먹더라도 영향력을 미치는 거고…. 그래서 올해도 다시 야외로 나갔죠. 그리고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시민 강연을 해서 오게 되면 들을 것과 논의할 거리를 만들어자, 올해는 세미나 같은 거를 추가해 보자. 인권 영화와 관련된 주제로 청년들, 우리 포럼의 공동대표 강승호 교수와 일본에 계신 분들이 재일교포 인권, 노동 등의 분야별 세미나와 강연 등을 포함해 5일을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5일을 할 만큼의 여력이 되느냐는 걱정도 있었지만 우리가 목표했던 걸 하기 위해서는 기간을 늘려야 된다고 봤죠. 가장 중요한 재정적인 부분을 강승호 교수님 중심으로 서울에 계신 분들, 포럼이 그동안 했었던 일본과 인권 관련된 쪽에 계신 분들이 작년부터 결합을 해주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강릉인권영화제는 강릉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영화제였는데 작년부터 서울 쪽에 계신 분들이 내려오고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는 조금 더 들어와서 영화제에 오시는 분들이 김성수 열사 추모비에도 가고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와 같이 만나기도 하고 일본에서 오신 분들이 저희들과 연계해서 의회 의원들도 만나고 이런 과정들이 생기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들이 다양하게 확대돼 가고 있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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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구조 만든 후 전문가들에게 넘겨드리고파

김중남: 다만 한계는 지금 현재로서는 몇 사람들의 헌신적인 자원봉사로 유지되고 재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는 거죠. 젊은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자기 역할을 안 해주면 안 되는 건데 이분들도 생존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 분들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되는데 시민의 후원 등 만으로 앞으로도 이 정도 규모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겠느냐 라는 과제들이 있죠.
길게는 한 3년 정도 더 하고 최소한의 인건비라든가 운영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건을 만들어서 전문적으로 영화제를 추진해보고자 하는 바람입니다. 인권 활동가 또는 영화인들이 같이 결합하는 조직 체계가 만들어져서 저희들이 이걸 제대로 해서 넘겨드려서 앞으로 한 25년 정도는 계속 운영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간다면 강승호 교수님을 중심으로 제1강릉포럼 쪽에서 만들어지는 국제적 네트워크가 가동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작년에 일본에서도 오셨었고 올해는 일본 인권 관련해서 세미나도 했고 이렇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좀 더 확대된다면 강릉 국제인권영화제를 꿈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꿈을 꾸는 분들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임세진: 강릉인권영화제 인터뷰를 준비하며 몇몇 영화제를 찾아 자료조사를 진행하다 보니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홈페이지가 없더라고요. 20년이 넘은 역사면 사실 그 자료들만 모아도 홍보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들었습니다. 영화제들이 이렇게 살아남는 것 자체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을 축적을 하고 활용을 하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중남: 저희가 주체들이 몇 번 바뀌는 과정들이 있었던 거잖아요. 자료나 말씀하신 그런 것들이 거의 없어요. 저도 여기에 한 10여 년 가까이 같이 해왔지만은 그냥 주관하는 데가 알아서 열심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진짜 막상 맡아서 하다 보니까 이제 그런 부분들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특히 홍보나 이런 부분에서는 지금 대단히 열악한 수준이죠. 다만 작년부터 저희들이 야외 상영도 하니까 시민들 입장이나 문화 쪽에 있는 사람들이 ‘강릉에서 이런 걸 하네’ 이 정도는 알려져 가고 있죠.

영화와 관련된 부분에서 지역의 문화 인프라는 아마 전국 중에서 가장 좋은 곳 중에 한 곳일 거예요. 정동진 독립영화제가 있고, 그것을 운영하는 영화인들이 있고, 영화감독들이나 독립 영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도 강릉에 대단히 많고, 또 한때는 또 국제영화제가 한 해에 개최되기도 했었죠. 그래서 독립영화와 관련된 영역들의 인프라들은 어느 정도 만들어져 있고 그것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가능하다고 봅니다. 인권영화제와 관련된 자료들은 수집을 다시 하고 앞으로의 전망들을 만들어내야죠.

강승호: 인권영화제 판을 아예 바꾼 거는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편에서는 기존에 청소년, 여성, 강릉 진보정당 사람들이 소외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해요. 저는 과도기라고 생각하고 제1강릉포럼이 그런 분들을 다 끌어안고 가야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인권영화제의 제일 축은 현재로서는 애초 사업목적이 인권 사업인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예요.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는 강릉에서는 굉장히 소중한 단체입니다. 다른 지역에 이런 단체가 없을 정도예요. 사실 열사는 민주화 활동을 한 기간이 길지 않죠. 그렇지만 김성수 열사 아버님, 어머님께서 살아오신 역사가 다 강릉 민주화 역사고 인권의 역사이기 때문이죠.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목적 중에 하나가 어머님, 아버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드는 거예요. 강릉 인권영화제 1~2년 안의 사업에 꼭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1975.김상진>이 강릉인권영화제에 들어온 것처럼 영화 <김성수>도 들어와야 되는 거죠.

강릉인권영화제의 든든한 파트너 <무용신>, 확장 가능성 만들어

강승호: 김중남 조직위원장님이 재정적 후원을 해주신 서울에 계신 분들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물론 넓게는 서민동이지만 <무용신>4 회원들이 주축이 돼서 강릉인권영화제를 알려주고 펀딩도 하고 했죠. 또 <무용신> 내용과 방향이 약간 글로벌해요. 그러다 보니까 제1강릉포럼에 <무용신>이 그런 도움을 주고 계신 거죠. 사실은 거의 이번 영화제 공동 파트너라고 볼 수 있죠.

4) 지난 수년간 <무용신>(대표: 조정희, 사회 81)은 대략 4가지 일을 추진해 왔다. (1) 2017년부터 최승희 공연 조사연구, (2) 2020년부터 무용신 캠페인, (3) 2022년부터 조선인 추도비 조사, (4) 2023년부터 연해주 캠페인이 그것이다. 조정희 대표 개인 프로젝트였던 최승희 연구가 다른 활동의 모태가 되었다. 최승희 공연 조사를 하다가 재일동포 무용과 학생들에게 무용신을 전달하는 무용신 캠페인이 시작됐고, 무용신 후원자들의 의뢰로 조선인 추도비 조사를 시작했다. 재일조선학교 후원이 연해주에 알려지면서 연해주 캠페인도 시작됐다. <무용신> 회원은 130명에 불과하고 조직도, 예산도 없지만 캠페인과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담당자가 선임되고, 활동이 끝나면 그때그때 정산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소규모 활동이지만 한국동포가 일본인 활동가들과 협력해 재일동포를 후원하거나, 한국동포와 재일동포가 힘을 합쳐 재러동포를 지원하는 뜻있는 활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용신> 활동은 동포운동으로 인식되고, 통일운동의 한 분야로 평가되고 있다.

김중남: 조정희 선생이 하고 있는 <무용신>을 못 만났으면 강릉인권영화제 내용이 그렇게 풍부해지지 못했을 거예요. 작년에 일본에서 인권 활동하시는 분들이 와주신 게 대단히 큰 전환점을 만들었고, 그래서 올해 관련해서 강승호 교수나 <무용신> 쪽에서 계신 분들 세미나를 진행할 수 있었죠. <무용신>, 서민동이나 서울에 계신 분들, <대륙 학교> 등과 지금과 같이 연계가 계속되고 준비만 잘하면 내년에는 조금 더 규모 있고 내용도 조금 더 충실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인권이라는 주제가 낯설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앉아 있는 것이 바늘방석 같기도 한 주제들일 수 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오게끔, 참여하게끔 만들 거냐가 과제인 거죠.

지배세력에 포섭되는 인권

강승호: 금년 들어서 느낀 게 인권의 출발은 민주화 운동 진영이 시작하고 이렇게 넓게 만든 건데 현재는 지배 세력들이 인권을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로 사용하면서 거기에 우리가 포섭돼 가는 것 같아요. 여성은 여성인권, 장애인은 장애인인권, 인권을 얘기하는 사람 같이 모여야 되는데 노동인권하고 여성인권하고 분리시키고 노동자는 노동자가 다수가 아니라 소수화 시키잖아요. 강릉도 장애인인권영화제가 따로 진행되고 있죠.

김중남: 장애인인권영화제에 관련된 부분은 오래전에 영화인들이 장애인들하고 같이 영화 만들기를 추진하면서 장애인들이 영화를 만들어서 인권영화제에서 틀고 초기에 그렇게 했었죠. 예산이 확보되면서 장애인들이 별도로 하고 있는데 강릉장애인인권영화제도 횟수가 오래됐어요. 그래서 강릉인권영화제에서는 장애인과 관련된 부분은 어느 정도 좀 제외를 좀 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분들의 역할이 또 있으니까요. 제가 제안을 그냥 한 번 했었는데 그냥 인권영화제를 크게 하고 거기에 강릉 인권영화제가 한 3일을 하고 장애인인권영화제도 2일 하고 뭐 이렇게도 한번 해보자는 얘기도 했었는데 앞으로는 고민을 좀 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각 대학에 있는 인권센터와 함께 영화제 안에서 인권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는 구조가 있지 않을까도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강승호: 내가 볼 때 직장에 있는 인권센터들은 인권의 개념을 흐리는 센터라고 생각해요. 그 직장 단위의 구조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가해자 피해자를 찾는 문제로 다 환원시켜 버리거든요. 개인 간의 성폭력, 개인 갑질, 개인의 문제로만 보게 되죠. 그래서 조직의 경영자들이 피해를 떠넘기는 창구로 인권센터가 되어 있는 거죠.

김중남: 그래서 저희는 인권영화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강릉 인권영화제가 추구하는 게 어떤 개인으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과 관련한 부분으로 지속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질 가능성도 많고요. 그런 영화들을 우리가 선정해서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가, 지방정부가 아니면 사회단체가 해야 될 역할과 구조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영화제가 지향하는 바를 뚜렷하게 가지고 가야 하는 거죠. 지금은 ‘당신을 지켜주는 인권’이라는 모토를 쓰고 있지만 함께 쓰는 게 처음부터 썼던 ‘이윤보다는 인간을’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끝까지 지키고 견지하는 영화제를 만들어야죠.

강릉이란 도시가 워낙 보수적인 도시여서 이 영화제가 처음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영화를 진행하고 할 때는 누구도 이와 관련해서 별 얘기를 한 사람이 없었거든요. 뉴스 한두 꼭지 내주는 거로 큰 문제없이 그냥 지나갔어요. 근데 규모가 커지고, 밖으로 나오고,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강릉의 보수성과 마찰이 될 가능성이 많이 있죠. 그럼 그 부분을 어떻게 돌파할 거냐는 것도 고민을 해야 될 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강릉 인권영화제는 몇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같이 함께 연대하고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거야 하는 거죠.

김중남 강릉인권영화제 조직위원장

강승호: 우리 빨리빨리 청년들한테 넘겨야 돼.(웃음)

김중남: 청년들이 안 하는 건 아닌데 자기들이 너무 힘드니까. 이번 영화제에도 청년분이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내가 볼 때는 그 세대들이 주축이 돼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청년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세미나, 자신의 이야기를 인권으로 확장시키다

이요한: 저희가 이번 영화제에 청년·인권 세미나를 했는데요. 저는 김성수 열사 기념사업과 추모제 같은 걸 준비하면서 저만 혼자 고민을 하거든요. 근데 청년들한테 탁 맡겨놓으니까 내용은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지만 준비하는 과정이나 이런 것들을 굉장히 알아서 잘하더라고요. 섭외도 스스로 다 하고 그래서 광주에서도 오고 원주에서도 오고 했죠. 그러니까 일을 맡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우리가 노파심에 일을 안 맡겼는데 일을 맡기고 돈을 주고 하면 잘 굴러가더라고요. 그래서 추모제 준비도 그렇고 저희 같은 경우 사업 자체도 그냥 줘야겠더라고요. 뒤에서 지원만 하고, 지원도 안 해도 그냥 잘 굴러가더라고요.(웃음) 내용이 좀 부족한 부분도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좋다고 그러고 잘하더라고요.

김중남: 저는 올해 영화제에 진행된 세미나 중에서 가장 잘 된 거는 이 청년들이 했던 것 같아요. 청년들이 했던 그 과정이 엄청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보고 다들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도 얘기하는구나, 인권이 저런 버전으로도 이야기가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재밌게 아주 잘 들었어요. 어찌 됐건 강릉인권영화제가 계속 이어지면 김성수라는 사람도 같이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이요한: 저희 주제가 ‘김성수, 청년, 인권’인데 어떻게 매치시켜서 얘기를 할까 되게 궁금했는데 그 주제에 맞게 해 주신 분은 구태우 목사님 한 분이시고 나머지 분들은 그냥 자기가 처한 인권 문제라든가 노동 문제 이런 걸 얘기해 주셨는데 그게 저는 좀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자체가 되게 의미가 있겠더라고요.

강승호: 인권은 약자인 개인이 아등바등하는 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게 인권이거든요. 인권의 시각은 구조적으로 봐야 되는데 그걸 구조적으로 못 보게 자꾸 개인으로 갈라 치기 한다니까. 그러니까 이번 같은 경우 광주에서 영화 관련 일을 하는 하면서 일일 노동자로 13년째 산 친구, 원주의 친구가 자기 얘기를 하니까 그들의 얘기가 인권 테마가 되는 거죠. 근데 따로따로 얘기하면 개인 얘기인 거죠.

김중남: 인권영화제라는 테마 안에서 세미나로 한 주제를 놓고 얘기를 하는 가운데 개인 얘기도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구조적인 문제를 도출할 수가 있는 거죠.

강승호: 개성, 퍼스널리티를 중시하는 시대잖아요. 다들 개성을 개인주의적으로 생각하죠. 근데 같은 류, 동종의 류, 인간 류의 문제를 봐야 인권이 얘기가 되는 거예요. 근데 보면 사회단체들이 ㅇㅇ연대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곳이 제일 협동이 안 되고 연대가 잘 안 돼요. 문재인 정부 때 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뭔가 기대도 많았는데 법인화되면서 소관기관이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되는 거죠. 제도권 안에 들어서니까 부처의 칸막이에 위만 쳐다보고 옆을 안 보는, 옆으로 못 보는 거예요. 옛날에는 그것 없이 그냥 옆에만 있었으니까 서로 부둥켜안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이게 다 갈라져 있는 거죠. 협동조합하고 사회적 기업도 그렇고…. 저는 실제 활동가가 아니고 약간 떨어져서 보는, 학교 내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그런 것만 눈에 보여요.

강승호 강릉원주대교수, 제1강릉포럼 공동대표

강릉인권영화제의 시작은 김성수 열사

임세진: 인권영화제를 시작하면서부터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가 같이 하게 된 건가요?

이요한: 그렇죠. 김성수 열사가 강릉 지역의 국가 폭력으로부터 인권 침해 당한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이고 어머님 아버님이 진상 규명을 위해서 서울은 물론이고 강원 지역 내에 학교 가톨릭 관동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 또 강원대까지 다니면서 진상 규명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시위하다가 구속되면 연대 활동들, 민가협, 유가협 활동들을 지금까지 계속해 오시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김성수열사기념사업에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단체 회원들이나 진보정당 회원들도 있지만 그 졸업생들, 같이 투쟁했던 졸업생들이 함께하고 있고요. 처음 인권영화제 시작할 때 그런 의미로 같이 하신 거죠.

김중남: 김성수 열사가 없었으면 강릉인권영화제가 아마 탄생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김성수 열사가 있었기 때문에 진행을 할 수 있었고 그걸 강릉씨네마떼끄라고 하는 영화인들이 받아서 진행을 한 거죠. 그래서 지금도 매년 아버지, 어머니가 오셔서 같이 해 주시고 있죠.

강승호: 제 느낌에 강릉 지역이 인구에 비해 대학이 많은 곳이에요. 근데 학생운동이나 학생운동 출신들이 강릉 지역에서 이렇게 많이 모이게 된 거는 김성수열사 어머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해요. 유가협 활동을 하면서 강릉에서 구속되는 사람은 다 김성수열사 어머님의 보호를 받은 거예요. 감옥 가면 어머님이 같이 가서 다른 어머님 격려도 하시고 그런 역할이 되게 컸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역에 있는 열사들 단체들이 대부분 동기나 선후배 서클 이런 데서 되잖아요. 우리는 지역사회에 운동권 세력들이 모인 게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가 된 것이죠.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온 역사가 있어요.

강릉 민주화 운동의 새 지평을 연 김성수 열사 부모님

김중남: 아버지, 엄마의 역할이 되게 컸죠. 아버지, 엄마가 계속해서 유가협 활동을 해주면서 강릉에서 정신적인 역할을 다 해주셨거든요. 강릉 민주화 운동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신 거죠.
인권영화제도 규모가 작더라도 계속 유지되고 위기 때 한 2년 안 하고도 다시 할 수 있었던 거는 사실 ‘야, 강릉에서 그러면 김성수나 이런 관련해서 인권영화제 이거라도 있어야지’라는 생각 속에서 어렵더라도 계속 유지돼 왔던 거죠. 그런 부분에서 보면 아버지, 엄마가 강릉에서 기존의 질서와 다른 한국사회가 가야 될 새로운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바람직한 모습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구조를 계속해서 본인들이 몸소 실천해 왔고 그걸 만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강승호: 지역사회나 전체적으로는 아니지만 <무용신> 중심으로 서울에서 오는 팀들의 경우는 지금 인권영화제의 메인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강릉고 추모비 참배예요. ‘영화는 안 봐도 된다. 강릉고의 추모비에는 모여라’ 이게 이제 메인 프로그램입니다. 영화는 이 영화제에서 안 봐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가 있거든요.(웃음) 그 점에서 특이한 인권영화제라고 할 수 있죠. 다른 지역 인권영화제에는 그런 프로그램은 없을 테니까요.

이요한: 너무 고맙습니다. 김중남 조직위원장님이 아까 코로나 때문에 힘든 부분들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 다시 계속할지 결정할 때 김중남 위원장님이 가장 큰 의지가 있었고 또 한 명은 저희 홍진선 대표님이었어요. 둘이서 같은 생각이셨죠. 솔직히 저도 좀 긴가민가 했었는데 워낙 의지가 높으셔서….(웃음) 김성수열사기념사업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리플릿이나 홍보에도 강릉인권영화제는 꼭 들어가거든요.

강승호: 사실 기념사업회의 메인 모임은 부모님 모시는 일이에요. 회원들이 설날 모임(도배례), 어버이날, 추석에 부모님을 찾아가서 인사드리는 거죠. 그리고 추모제 때 강릉팀은 강릉고에서 모여서 마석으로 가고 서울의 서민동 사람들이 와서 만나는 장소가 김성수열사 묘지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서민동 사람들이 강릉고에 와보고 싶어 하고 또 강릉고에 와야 된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 강릉고 추모비를 반드시 코스에 넣게 하는 게 이번에 추진됐죠.

이요한: 패키지 코스인가요?(웃음) 저희 홍진선 대표님이 대표되고 나서 서민동이나 김상진 기념사업회하고 교류가 활성화되고 추모제 때 항상 오셔서 너무 고맙게 생각합니다.
강릉고 추모비가 생기면서 지역에 거점이 생긴 거예요. 예를 들어서 출마한다 그러면 김성수열사 추모비에 가서 참배를 하죠. 강릉 지역 분들의 물리적인 거점이 하나 생긴 거고요. 김중남 위원장님이 강릉시장이 되거나 국회의원 되시면 추모공간 하나 마련해 주실 거라고 믿고요.(웃음) 저희들이 홍보나 이런 것들을 한다고 하지만 계속 후대에 알리기 위해서 책 『김성수』가 2022년에 나왔고요. 장기으로는 영화도 솔직히 좀 욕심이 있어요. 영화는 계속 보존이 되니까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고, 소환할 수 있는 그런 극영화든 다큐멘터리든 이런 것들을 좀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김상진기념사업회가 저희들의 롤 모델인 거죠.(웃음) 사단법인 만들 때도 정관이나 이런 것들 참고했고요. 우리 홍 대표님이 여러 단체에서 받아서 했는데 저희들도 영화도 제작하고 그럴 장기적인 계획은 있습니다.

이요한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

임세진: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 조직이 굉장히 탄탄해 보이네요.

이요한: 근데 저희 사업이 추모제가 핵심인 거고 부모님 만나는 세 번이라든가 뭐 그런 사업들 중심이거든요. 그러니까 약간은 좀 한계인 거죠. 사단법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단법인의 역할들을 솔직히 못하고 있어요. 내부적으로는 잘 뭉치고 잘하지만 솔직히 외부적인 부분은 많이 부족해서 많이 비판받고 있는 지점들입니다.

김중남: 강릉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대부분 다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하고 다 연결돼 있죠.

강승호: 거기에 안 걸쳐 있으면 강릉 사람이 아닌 거예요.(웃음) 그나마 지도위원으로 걸쳐져 있어서 아, 나도 강릉 사람이구나 하고 있죠.(웃음)

임세진: 다양한 방법으로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만남을 하고 계시니까요. 더 확장도 가능할 거 같고요. 또 요즘 젊은 친구들에 맞춘 방법이나, 특히 후세로 이어지는 방법들은 여러 가지일 거 같아요.

강승호: BTS가 윤리적인 거를 던지면 젊은이들이 다 다 공감하잖아요. 인권은 보편적인 이슈라서 그렇게 갈 수 있어요. 너무 무겁지 않게도…. 예를 들면 요새 기후 관련 소송이 늘고 있는데 60~70년 뒤에 미래 세대의 문제거든요. 저는 어떻게 보면 기후 문제가 지금 인권 문제가 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다 하나로…. 그래서 인권 개념은 우리가 넓혀놓으면 보수 세력은 그 넓힌 데를 쪼개서 자꾸 들어오거든. 그 틈을 없애고 우리가 튼튼하게 메꿔서 넓혀야 된다는 생각이죠.
인권이 보편적인 문제인 만큼 세분화되고 분리되는 것도 막아야 되고, 이제 우리보다 더 큰 우리를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의 첫 번째가 코리안 디아스포라 재일교포, 그다음 고려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이주 노동자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가까운 문제고 그래야 인권 문제도 확장이 된다고 생각이 돼서 그런 쪽에도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점검과 평가를 통해 발전, 확장의 장 만들어야

김중남: 제가 올해 진행할 때 이제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끝나고 나면 기존에 했던 방식과 작년과 올해 했던 방식을 비교해서 검토를 해보자. 밖에 나와서 일반 시민을 만나고 축하 공연도 하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몇 가지 실험들을 한 거잖아요. 5일까지 기간을 넓혀간 거고 내용도 축하 공연, 풍물, 세미나, 강연 등으로 늘어나면서 지역 영화관의 입장도 들어보고 종합적으로 어떻게 가는 게 더 나을지 검토해 보는 거죠. 그런데 그 방식과 목표에서는 어찌 됐든 시민들을 계속 만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을 만나야 되고 이 이야기가 강릉에서만 이야기되지 않는 구조로 갔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의 관점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들을 얘기해서 인권의 이야기가 좀 정리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김성수열사기념사업회라든가 제1강릉포럼, 기존에 후원해 왔던 조직들하고의 관계들도 한번 재점검 좀 해보고 서울에 계신 <무용신> 쪽이나 이런 쪽 하고 어떻게 연대를 더 확대할 것인지, 영화인들과 관계도 어떻게 확대해 나갈 것인지 그런 몇 가지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점검을 해야 될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좋은 모습으로 김상진기념사업회에 계신 선배님들을 다시 모시고 활동했으면 합니다. 다시 영화제에서 뵙고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요한: 김상진기념사업회가 강릉인권영화제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늘 저희 김성수 열사 추모제에 함께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11월 2일, 서울대 합동추모제에 가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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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마감하던 중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려왔다. 첫날은 그저 ‘대단하다’는 말만 계속 반복됐다. 하루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감동이 왔다. 그리고 하루 더 시간이 지나니 광주 출신에 연대 89학번으로 작가가 지나왔을 한국근현대사와 작가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억압과 폭력을 마주하는 그 글쓰기들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지만 외면하지 않고 한줄한줄 써나갔을 작가의 걸음이 우리 사회 민주화의 길에 있는 모두의 걸음이 아닐까. 강릉인권영화제 역시 결코 쉽지 않은 길을 한 걸음씩 묵묵히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걸음은 노벨상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뜨겁게 남는 기록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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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진_ 숭의여전 문창과에 입학, 문예창작보다 학보사 기사를 더 열심히 쓰고, 졸업 후 전국연합 기관지 ‘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신문 ‘건치신문’ 만드는 일을 하였다. 이후 성공회대 사회학과에서 공부하고 KOICA 봉사단을 다녀온 후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인터뷰하고있다. (sejin3025@hanmail.net)

Last modified: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