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13 오전 138호(2024.10)

[실화소설 ‘사막의 과학자’]
노무현과 황우석

노광준 OBS 피디, ‘오늘의 기후’ 뉴스레터 발행, 농화학 88

노무현과 황우석, 내가 이 두 사람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조선일보 보도 덕분이다. 논란 당시 많은 누리꾼들은 주류언론의 말 바꾸기 논조변화를 비판했다. 특히 조선일보 보도는 노골적이었다. 이랬다. 아직까지 황 박사가 국민영웅일 당시 <조선일보>는,

“황우석 교수 옆에 정부는 없었다. 이번 파문에 황 교수 혼자 시골이장처럼 뛰어…. 박기영 보좌관은 어디에 있나?” (조선일보, 2005.12.7)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황 박사가 국제사기꾼이 되어갈 무렵에는 이런 제목을 뽑았다

“청와대, 초기부터 황 교수 전폭 지원. 박기영 보좌관은 황 교수의 최대 지원자였다.” (조선일보, 2005.12.17)

황 박사가 잘 나갈 때는 왜 이거밖에 지원 안 해주냐며 노무현을 까고, 사기꾼으로 몰리자 처음부터 전폭 지원해 준게 노무현이었다며 또 깐다. 놀라운 것은 이런 논조변화가 불과 열흘 만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12월 7일→12월 17일).

이런 기사를 통해 내가 주목하게 된 사실은 의외로 노무현 정부가 황 박사 연구를 열심히 지원해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 황 박사한테 24시간 경호를 붙였어, 노무현이? 황 박사 연구소를 직접 찾아가서 ‘마치 마술을 본 것 같았다’고 감탄하는 말을 했었다고? 노무현이? 그랬다. 노무현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 초기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황 박사 개인에게는 24시간 경호를 붙였다. 실제로 서울경찰청 소속 민완 경찰들이 경호를 맡았다. 나중에는 국정원도 합류했다. 그리고 외무부와 과기부가 힘을 합쳐 황 박사 연구에 대한 국제적인 생명윤리 관련 법제도 변화에 대해 외교적으로 대응했다. 국제특허 등록을 지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최고과학자 제도가 만들어진 것도 사실 황 박사에 대한 지원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뿐만 아니라 줄기세포를 활용한 10년간의 로드맵을 공식적으로 짰다. 의료보험 혜택을 줄기세포에 적용시킬 방법을 강구하기도 했고, 앞으로 전 세계 줄기세포 연구와 난치병 환자 치료를 돕게 될 줄기세포 허브를 어떤 지역에 어떻게 만들어 ‘특구’ 형태로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깊숙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런 지원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 기원을 따라가 보니 2003년 12월 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전에 사전논의가 있었겠지만, 그날 노무현 대통령 부부는 직접 서울대 연구실을 찾아갔다. 황우석 팀의 연구현장을 둘러본 뒤 그는 배석한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 느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 발언은 황 박사가 <사이언스> 표지논문을 발표한 국민영웅일 시점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PD수첩>과 <서울대조사위> 발표 이후 국제사기꾼으로 낙인찍힐 무렵에는 정말로 큰 문제가 됐다. 보수언론도 진보언론도, 심지어 노무현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당시 저 발언을 언급하며 ‘우리 노짱의 흑역사’라는 의견들이 올라왔다. 게 중에는 대통령을 아끼는 마음에서 대통령을 공격하기보다는 대통령 주변 사람들, 이를테면 과기부는 뭘 한 거냐, 특히 박기영 보좌관은 도대체 뭘 한 거냐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러다 보니 박기영 보좌관(당시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은 여기저기서 얻어맞는 피떡신세가 됐다. 조선일보도 박기영 뭐 했냐, 한겨레도 박기영 뭐 했냐, 노사모에서도 박기영 뭐 했냐…. 결국 논란 이후 박 보좌관은 조용히 사퇴했고 직후 가택에서 자살기도로 보이는 일 끝에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17년 8월 박기영 교수(순천대)가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임명되자마자 과학계에서는 당시 황우석 논란의 책임을 거론하며 사퇴요구가 이어졌다. 결국 그녀는 지명된 지 나흘 만에 스스로 물러섰다.

그런데 난 이렇게 생각한다. 당시 참여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박기영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건 오롯이 노무현의 결단이었다. 이 사안을 들여다보며 나는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의 다양한 얼굴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노무현을 고졸 출신의 인권변호사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만 알았다. 그런데 그는 변호사가 되기 전에 이미 발명가였다. 사법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 그는 여느 고시생들처럼 독서대 위에 책을 놓고 공부를 하던 중 불편함을 느끼고 동시에 책 두 권을 놓고 볼 수 있는 ‘2단 독서대’를 발명했다. 단순히 뭔가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특허청에 실용신안 등록까지 해버렸다. 실용신안이란 특허보다는 기술적으로 수준 높은 발명이 아니지만 ‘실용성 있는 개량기술’을 인정해 주는 제도로 보통 출원일로부터 10년을 보장받는다. 이런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2단 독서대를 고안한 도면부터 실용성과 개량성을 입증하는 서류 작업이 필수다. 뭔가를 설계하고 만들고 증명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197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그런데 60명 합격자 중 자신이 유일한 고졸출신임을 알게 된 뒤 법조인으로서의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고 친구와 함께 자신이 개발한 ‘2단 독서대’ 제작과 판매 사업을 벌였다고 한다. 사업은 1년 만에 망했는데, 이를 두고 <한겨레> 최상원 기자는 이렇게 썼다.

“만약 그가 사업가로 성공했다면 미래의 ‘대통령 노무현’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독학으로 리눅스 프로그램을 배운 소프트웨어 개발자이기도 했다. 90년대 IT열풍이 불어닥칠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독학한 그는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던 1994년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해 내놨다. 정치인들이 늘 중요하면서도 애를 먹고 있던 명함관리, 일정관리를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한라 1.0’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정치인으로서 주목받으려고 시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그는 한라 1.0을 계속 업그레이드시켜서 1998년에는 ‘노하우 2000’이라는 프로그램을 출시했는데 여기에는 일정관리부터 연락처와 메모, 회계, 메신저 기능까지 장착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개발열정은 그가 대통령이 된 뒤 청와대 통합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 프로그램 개발로 이어졌는데, 당시 기자들이 이지원 특허출원인 명단에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있는 걸 보고 ‘아니 왜 대통령 이름이 거깄냐’며 파고들면서 이러한 그의 개발이력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가 특허출원한 게 또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감 따는 기구였다. 그는 청와대 관저를 산책 중 높다란 감나무에서 어떻게 하면 감을 쉽고 안전하게 딸 수 있을지 그에 관한 기구를 고안해 특허 출원했다.

이런 그의 이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노무현을 ‘덕후’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노무현은 뭔가에 빠지면 그것에만 집중하는 ‘덕후’라기보다는 생활 속 불편함이나 불합리를 참지 않고 고쳐가려는 ‘실용주의 혁신가’같다. 고시공부를 하다 독서대를 고치고, 정치를 하다 명함관리 프로그램을, 대통령 업무를 하다 통합관리시스템을 개발한 그의 이력은 평생을 낡은 지역갈등, 정치관행에 맞서온 그의 삶에 비춰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런 노무현에게 과학기술이란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구체적으로 바꿔 나아갈 또 하나의 무기 아니었을까?

“역대 대통령 중 과학기술인과 가장 많이 대화하는 대통령 되겠습니다.”

그가 2003년 8월 20일 서울 홍릉에 있는 K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을 찾아 연구자들 앞에서 한 말이다. 그의 약속은 빈 말이 아니었다. 그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켰다.(2004. 10. 18) 이미 선진과학강국에서는 국가의 중요 의사결정 요직의 상당수가 이공계 출신인 만큼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 결과 참여정부 출범 후 R&D 투자증가율은 연평균 10.6%에 달했다. 자연스럽게 임기 초 27위였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경쟁력은 임기말인 2006년 6위까지 상승했고 스위스 경영대학원 평가에 따르면 우리의 기술경쟁력도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 과학기술 R&D 투자를 그 무렵 나라살림 지출증가율보다 높게, 교육이나 국방분야 지출보다 더 높게 책정한 게 노무현 정부였다. 그래서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을 때 과학기술인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그중에는 황우석 박사도 있었다. 누구보다 과학자를 아끼고 도와준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2003년 12월 10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울대 방문현장 (당시 방송기사 화면갈무리)

그런 노무현이 서울대를 찾아 황우석 연구팀을 만났다. 2003년 12월 10일, 그는 무엇을 봤을까. 당시 현장에 있던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그는 단지 줄기세포 하나 달랑 보고 사진 찍고 간 게 아니었다. 이미 정점에 올라있던 황우석 팀의 체세포 핵이식 기술로 어떤 미래가 가능할지 구체적인 힌트를 얻으러 온 것이었다. 방진복을 입고 에어샤워로 소독을 한 뒤 연구실로 들어온 노 대통령 부부는 가장 먼저 무균돼지 연구현장을 봤다.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제 방에는 아직도 당시 찍어놓은 사진이 걸려있죠. 권양숙 여사님도 오시고.” (김대영 가천대 생명과학과 교수, 2017. 8)

가천대 김대영 교수는 당시 황우석 연구팀에서 장기이식용 무균돼지 복제를 담당했었다. 이미 소, 돼지에서 체세포 핵이식 효율을 향상시켜 온 황우석 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장기이식이 시급한데 장기기증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초급성 환자들에게 일정기간만이라도 인간의 장기를 대체할 장기이식용 무균돼지를 복제하는 연구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충북대 정의배 교수(수의과대학)는 이미 그 당시에도 장기이식용 무균돼지 복제기술 분야에서 황우석 연구팀이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있었다고 평가한다.

“황교수님 기술이 가장 앞서있었죠. 외국에서도 인정하고…. 왜냐면 만들긴 만드는데 얼마만큼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느냐….” (정의배 충북대 교수, 2017. 8)

수의사 출신으로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까지 받은 정의배 교수는 당시 이 만남을 통해서 노무현 정부는 사람에게 돼지 장기 이식을 연구하는 대규모 장기이식 연구센터 건립을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가 광교 신도시에 부지를 제공하고 건물은 과기부가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미국의 피셔교수라는 (이분야) 대가도 이 연구는 일정 규모가 있어야 한다며 시설투자를 강조하고 있었죠. 그래서 경기도는 땅을 제공하고 건물은 과기부가….”

또 한 가지 테마는 형질전환 복제동물이었다. 이미 정점에 오른 체세포 핵이식 기술에 DNA 기술을 접목시켜 광우병 내성소나 신약개발에서 쥐를 대체할 실험동물개발 등 다양한 용도로의 활용가능성 연구였다.

“그 당시 이미 생산효율에서 세계 최고였으니까요. 체세포 복제는 최고수준…. 논란 이후 지금까지도 개를 복제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 말고 없으니까.”

그날 노무현 대통령에게 형질전환 복제소를 설명했던 조종기 충남대 교수 역시 줄기세포 사태 이후에도 황우석팀의 체세포 핵이식 기술력에 대한 국제 학계의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고 내게 말했다. 논란 당시 황우석 팀의 거의 모든 걸 부정하다시피 한 서울대 조사에서조차 당시 황우석 팀의 체세포 핵이식 기술력에 대해서는 이렇게 평하고 있다.

“개복제 등을 볼 때 체세포 핵이식 기술 국제 경쟁력 갖춰”

그렇게 돼지와 소를 본 대통령 부부는 또 뭔가를 보려 좁고 밀폐된 실험공간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대외비 연구성과가 이뤄지고 있는 장소였다. 워낙 좁은 공간이라 대통령을 수행한 대규모 경호인력도 다 들어가지 못했다. 서울대 학장들 같은 보직교수들도 들어가지 못했다. (나중에 이를 두고 두고두고 말이 나올 정도로 보안에 엄격했다) 대통령 부부와 필수경호인력과 황우석 박사, 그리고 실험실에 있는 몇몇 연구원들 뿐인 좁은 공간, 그곳에서 대통령은 무엇을 봤다. 그리고는 현장방문이 끝난 뒤 종합적으로 ‘기술이 아니라 마술을 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날 그가 본 것은 NT-1이다. 논란 이후에도 유일하게 살아 남아 실존하고 있는 황우석 팀의 최초 수립 줄기세포, 현재 미국과 캐나다, 호주에서 특허로 등록되어 있고 우리나라 질병관리청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배아줄기세포주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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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우리농촌연구회에서 농업농촌의 현실을 깨닫고 토양학 실험실에서 흙을 연구하던 중 BBC ‘Farming Today’같은 농업전문방송을 꿈꾸며 방송에 입문, KBS TV 구성작가와 경기방송 PD를 거쳐 현재 OBS에서 2023년 상반기 개국한 OBS 라디오(FM99.9MHz)의 기후변화 전문 프로그램 진행중, 별명 기후보좌관.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