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양 사단법인 농업조사전문가협회장, 농학 86
지난여름과 아직 가을 같지 않은 가을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많이 즐겁게 놀았지만 학생농업교육, 고흥문화갑계, 월파서민호선생 관련지 답사만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1. 학생 농업 교육
6월과 7월 중에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강사 신분으로 나주, 장흥, 고흥, 순천 지역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농업의 공공성에 대한 교육’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으나, 제법 재미있게 진행하고 마쳤습니다.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나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5학년을 대상으로 두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한 아이가 쫓아와서 한번 안아봐도 되냐고 했습니다. 일단 안아주고 이유를 물으니, 오늘부터 왠지 농업이 좋아질 것 같다고, 농사지으시는 할아버지와 아빠를 고맙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고서는 인사를 다시 꾸벅하고는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제 가슴이 많이 벌렁거렸습니다.
2. 고흥 문화갑계와 마을공동체 활동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고흥 문화갑계활동을 하였습니다. 작년에는 5명에게 200만 원을 지원하여 주었는데, 올해에는 4명에게 200만 원을 지원하였습니다. 올해는 딱 두 부부가 함께 해서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거금도 적대봉 주차장, 고흥만 들녘, 고흥우주천문과학관 등 많은 곳에서 함께 별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희 부부는 문경세계명상마을, 장흥장평중학교 등에서 별보기체험 봉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한 마을공동체 사업을 함께 진행해서 밤여행으로 별보는 여행을 진행해서 많은 분들과 함께 별을 보러 다녔습니다.
내년에도 더 많은 분들과 더 자주 별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려 합니다.
문화갑계활동비 66만 원으로 활동성과 팸플릿을 만들어서 지역민들에게 나누어 드리고 자랑하였습니다. 지원금 66만 원으로 300장을 제작하고, 개인돈 22만 원을 더 내고 추가로 700장을 더 제작하였습니다.
3. 월파 서민호선생 관련지 답사
2014년 10월 1일에 월파서민호선생님 기념사업회 단체톡방에 아래와 같은 공지가 떴습니다.
드디어 꺾인 더위,
월파 선생의 자취를 따라가는 가을 나들이 초대합니다.
함께 가실 분을 “선착순” 모집합니다.
교육 관광지로도 훌륭합니다. 초등 고학년부터 중·고생 가능합니다.
여기 이름 적으신 것으로 안됩니다. 꼭 구글로 적어 주셔야 합니다.
10월 12일(토) 광주의 조선대역사관과 백범기념관, 순천 평화관 자리
바로 저부터 신청하고 아내에게도 신청을 종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변에도 많이 알렸습니다. 그런데 10월에는 다른 좋은 일들이 많아서인지 많이 신청하지는 않으셨습니다. 40명 정도는 함께 할 수 있었는데, 30명 정도만 신청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출발 전날에 대여섯 분이 취소하셔서 간신히 24명이 함께 하였습니다.
A. 조선대학교 방문
고흥에서 출발하여 순천에서 많은 분을 태우고 가장 먼저 조선대학교로 출발하였습니다. 월파서민호 선생님께서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로 계실 때 민립대학의 필요성을 절감하시고 엄청난 지원을 하셨답니다. 그 과정에서 실무를 담당했던 박철웅이라는 인간이 제가 다 한 것처럼 해서 이사장, 총장을 지내면서 거의 사유화하였나 봅니다. 거의 신격화 수준의 시대를 지나 지금은 민주화가 많이 된 것 같습니다.
총장님! 한 바퀴 더 돕시다.
전국적으로 민주화운동이 거세지는 1980년 무렵, 박철웅 총장은 교수들의 시국선언과 집단행동, 학생들의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교권유린과 교수해직, 폭력으로 탄압했습니다. 박철웅 총장은 시국선언을 막고 교직원을 길들이기 위해 매일 아침 7시 충성 구보를 실시하고, 충성 경례와 충성 서약 결의문을 낭독하게 했으며, “나를 따르는 자만이 살 수 있다!” 등 훈화를 30여분씩 이어갔습니다. 기회를 틈타 총장에게 아부하고 싶었던 한 교수가 총장의 훈시가 끝나자 큰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총장님! 한 바퀴 더 돕시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바퀴 더 돌자는 아부가 메아리가 되어 울렸답니다.
B. 광주 백범기념관 방문
백범께서 쓰신 글의 뜻을 적어 봅니다.
가. 백정범부: 백범이란, 김구 선생이 가장 낮은 계층인 백정과 평범한 범부들의 애국심이 자신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으로 지은 호입니다.
나. 의리: 김구 선생의 스승인 고능선 선생은 ‘아무리 뛰어난 재주와 능력이 있어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그 재능이 도리어 화근이 되기 때문에 사람의 처세는 마땅히 의리에 근본을 두어여 한다’고 하였습니다.
다. 쟁두쟁족: 김구 선생은 특히 청년들에게 ‘머리, 즉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지 말고 발이 되기를 다투라’고 하였습니다. 열심히 발 노릇을 하다 보면 하기 싫어도 밀려서 우두머리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라. 문지기: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독립국이 되면 정부청사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마. 역수어: 김구 선생은 ‘물 흐르는 대로 둥둥 떠다니는 죽은 고기가 되지 말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 고기가 돼라’고 하셨습니다.
바. 독립: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 “그다음 소원은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하셨습니다.
사. 통일: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취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마음속에 38선이 무너지고야 땅 위에 38선도 철폐될 수 있다.
아. 문화: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일행 중 한 분께서 이 글은 지금 윤○○이 꼭 읽고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나라를 책임진 사람과 가정의 가장은 적게 가진 것보다 모두가 고르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C. 순천 평화관 터 방문
마지막으로 순천 평화관 터를 방문하였습니다. 전쟁이 진행 중이었던 1952년 4월 24일 평화관 별관(지금의 순천문화광장)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육군 대위 서창선이 행패를 부리다가 권총을 발사하자 국회의원 서민호가 호신용 권총으로 응사한 겁니다. 다음날 치러질 제1회 지방의회 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민호 의원이 순천을 둘러보다가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일로 서민호 의원은 8년간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미움을 사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국민 방위군 사건과 거창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을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사건은 정당방위로 감형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를 물리친 1960년 4월혁명 덕분이었습니다.
새벽밥 먹고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배우는 것보다 까먹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머릿속에 많은 것은 남지 않았지만, 역사의 현장을 다녀왔다는 뿌듯함은 가득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 또 더 많이 느끼기 위하여 부지런히 돌아다니려 합니다. “쟁두쟁족(爭頭爭足)”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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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양_ 두 차례의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지난해 와포햇살영농조합법인에서 연구부장으로 근무하였고 중학교 텃밭교육 및 귀농인과 청년농업인 컨설팅을 했다. 종자기술사, 농화학기술사, 시설원예기술사 자격증과 천문지도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사단법인 농업조사전문가협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ljycby@daum.net)
Last modified: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