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아카데미쿱 팀장, 임산공학과 08)
시작하며
그간 낙성대에서 글을 올리던 김현수입니다. 2016년 12월 29일자로 국가의 부름을 받고 병역 의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마치고 관악구청에 소속되어 청림동주민센터 사회복무요원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병역법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글의 소재를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당분간은 사회복무요원으로 생활하며 겪는 소소한 일상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1.
격동의 월요일을 보내고 맞이하는 화요일의 주민센터는 심하게 고요하다. 월요일이 왁자지껄한 시장이라면 화요일은 경건한 종교시설이 된다. 함부로 흩뜨리지 말아야 할 것만 같은 압도적인 고요함이 흐른다. 무료함을 못이긴 복지팀장님은 어슬렁어슬렁 사무실을 활보하며 직원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건다. 심하게 과장하자면 시비를 걸며 시간을 보낼 건수를 만드는 건달 같기도 하다. 그에겐 시간을 보낼 소일거리가 필요하다. 오늘은 난데없이 그 타깃이 나로 정해졌다.
“책은 한 권만 보면 되지 왜 이렇게 여러 권을 꽂아두냐?”
갑자기 들어온 결투 신청에 적절한 대처를 고민하던 와중 추가 공격이 들어온다.
“하나라도 제대로 집중해야지. 나 때는……”
그 뒤의 공격은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흘려 들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적절한 반격을 준비하던 차에 세 번째 공격이 들어왔다.
“분야가 뭐 이렇게 난잡해? 자기 석사라며? 전공 공부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실실 거리며 유들유들하게 평소와 달리 지내던 2주간의 가면을 벗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자치팀장님이 끼어들어 중재에 나섰다.
“요새 뭐 융합의 시대인가 그런데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면 좋지, 뭘.”
자치팀장님과 담소를 나누던 4번 마을유지가 거들었다. [2주간의 관찰 결과 이 마을엔 5개의 독립된 세력이 있고, 그들에게 번호를 붙여 1번부터 5번이라 부른다. 천하오절이다.]
“그러게. 자네도 자기개발에 매진해. 옷 벗고 할 일을 찾아야 할거 아닌가?”
복지팀장님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조용히 앉았다.
#2.
복지민원 담당자의 점심식사가 예상보다 길어졌다. 원래 사회복무요원은 민원업무를 하지 않지만, 이런 경우에는 종종 임시로 대직하는 수가 있다. 보통은 아무 민원인도 오지 않아 자리만 지키곤 하지만, 오늘은 민원인이 찾아왔다.
맞은편에서 둘째 아이의 출생신고를 마치고 온 민원인이 다둥이 행복카드 발급을 요구했다. 나는 의아해하며 그를 쳐다봤다. 그도 나를 의아해하며 쳐다봤다. 내 고정관념에서 다둥이라는 개념은 셋째 아이부터 적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잠시간의 눈싸움을 빨리 접어두고 규정을 찾아보았다. 다둥이 행복카드는 서울시에서 두 자녀 이상을 둔 ‘엄마’에게 혜택을 주는 카드로 발급되고 있었다.
민원인에게 규정을 보여주며 ‘아빠’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고 물어보았다. 민원인이자 아빠인 그는 ‘엄마’는 밖에서 일하고 내가 집에서 일해서 내가 받으러 왔다며, 내가 ‘엄마’의 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문제 없지 않겠냐고 했다.
그렇게 그는 카드 발급신청을 끝냈다.
#3.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발단이 되었는지, 동 관할 모든 건물의 지하 방, 옥탑 방을 전수 조사하라는 공문이 복지팀 앞으로 하달되었다. 이렇게 새 업무가 주어지더라도 기존 업무가 경감되는 것은 아니기에 사회복무요원들을 끌어 쓸 수밖에 없다.
담당자 한 분과 함께 길을 나섰다. 담당 구획의 모든 지하 방, 옥탑 방을 찾아야 했다. 1층으로 되어있는 반 지하 방, 등록되어있지도 않은 옥탑 방도 대상에 포함되었다. 대문부터 잠긴 곳에서는 조금만 기다리면 신기하게도 누군가 나오거나 들어갔기에 목표한 모든 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부재중이었다. 가끔 사람이 있는 경우에는 교회 다니니까 안 오셔도 된다고 문전박대 하거나, 그 물건 안 산다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런 경우에는 그냥 문 앞에 안내문만 붙이고 돌아섰다. 사람이 안 산지 오래된 집도 많았다. 매번 담당자가 먼저 들어가며 동향을 살피다가, 어떤 빈집에서는 머리에 거미줄을 잔뜩 묻혔다.
거미줄을 털어내며 방문한 다음 집에서는 드디어 문을 열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옥탑 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지원후보로 꼽힌다는 사실에 불쾌해했다. 고성이 울리기 전에 죄송하다고 하고 돌아섰다. 다음 번에 열린 문에서는 여유 있으니 필요 없다며 저리 가라고 고성이 울려 퍼졌다.
도움을 위해 나선 길에서 만난 푸대접이 마냥 생소했다. 물론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대접받을 일인가 싶었다. 담당자는 복지업무가 원래 이렇다고 푸념했다. 다른 이들에게 욕 먹더라도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를 한 명을 살리는 것. 그렇게 남은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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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 자연반 강사이며 현재는 관악구 청림동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Last modified: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