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영 (서울대 동물생명공학과 석사과정, 동물생명공학 12)
2월에 <라스트 쇼>라는 연극을 봤다. 귀여워서 동물을 데려다 키우고, 사랑해서 잡아먹는 동물애호가, 아들로 인해 아내가 떠났다고 생각해 아들을 증오하는 아버지, 위기의 상황에서 ‘의욕이 과하여’ 다 자란 어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 등 뜨악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극이었다.
이 연극에 대해 한 친구는 인물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모성애적 사랑의 충족 여부’라고 해석했다. 자신이 가진 결점과 무관하게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모성애적 사랑을 충족시킨 인물은 기괴하지만 행복할 수 있고, 그 사랑을 잃은 인물은 분노하고 일상적 의사소통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었다. 극 중에서, 우스꽝스러운 어른의 모습으로 태어난 아기에게 아기의 엄마는 “너는 나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어”라고 말하며 모성애적 사랑을 보여준다.
그 친구의 해석을 듣고 나서 모성애적 사랑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무조건적인 사랑. 존재에 대한 완전한 긍정으로의 사랑. 어쩌면 누군가의 인생을 구제할 수도 있는, 적어도 누군가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랑.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이 잘 되었으면 좋겠고, 그러지 못할까봐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그 사람이 가진 결점이 그 사람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까봐 걱정하는 마음에 그 결점을 고치는 것에 대해 말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거야’ 류의 잔소리를 하게 된다. 결국 사랑하기에 결점을 지적하고, 사랑하기에 있는 그대로 둘 수 없는 모순이 생기게 된다.
상대의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과 내가 찾은 결점들을 고치도록 지적하는 것 사이의 적당한 선을 찾는다고 해도, 여전히 모성애적 사랑을 주기란 쉽지 않다. 완전한 사랑을 주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나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상대의 나쁜 곳조차 아닌 곳을 미워하기도 하며 어떤 점은 상대가 나에게 맞추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더욱이 나 역시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는 사랑을 준다고 하는 행동들도 사랑받기 위한 행동처럼 느껴지고,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나를 사랑해달라는 말처럼 느껴진다.
모성애적 사랑을 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와 비슷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나쁜 사랑꾼이 되려고 한다. 이는 록산 게이의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작가가 스스로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것을 따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녀는 자신은 인간이고, 그래서 엉망진창이기에 완벽하려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이 믿는 것을 지지하고 세상에 뭔가 도움이 될 일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핑크색을 사랑하면서도 가끔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하는 음악을 즐기기도 하는, 그렇지만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한다.
나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보기 싫고,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싸우고, 내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면 누군가를 사랑할 여유를 잃으며, 내가 사랑을 준 대상에게서 어느 정도의 사랑을 보상받기를 바란다. 나는 이렇게 부족한 사람, 사실 그저 보통의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모성애적 사랑과 유사한 어떤 사랑을 줄 수 있기를 꿈꾼다. 나의 사랑으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나인채로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나쁜 사랑꾼이 되기로 한다.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때때로 지적을 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상대의 존재를 긍정하며 사랑하는 나쁜 사랑꾼이 되려고 한다.
“네가 참치회를 쌈장에 찍어먹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네가 먹는 모습은 사랑스러워”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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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영 _ 동물생명공학과에 재학 중인 12학번입니다.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모여 술 마시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이고, 요즘은 야구 보는 것에 빠져있습니다. 2학년 때 김상진열사 추모제의 후기를 쓴 것이 계기가 되어 학부생의 입장으로 선구자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해보려고 합니다.
Last modified: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