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12 오후 108호(2017.03)

[살아가는 이야기]
익숙한 것과의 아름다운 이별

황종섭 (정의당 대표비서실 차장, 지역시스템공학 03)

2017년 1월 18일은 저에게 뜻 깊은 날입니다. 2001년부터 꼬박 15년을 함께해온 연초와 이별한 날이기 때문이지요. 2002년 학교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걸려 3일간 벽만 쳐다보고 있었을 때도, 2014년 갑자기 찾아온 아토피에도, 2015년 담뱃값 인상에도,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담뱃갑에 붙어있는 끔찍한 사진을 보니, 도대체 담배를 피울 마음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전자담배로 갈아탔습니다. 의외로 전자담배의 만족도가 높아 2달 가까이 연초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딱히 몸이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몸에서 담배냄새가 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입니다.

지난 3월 10일에도 기분 좋은 이별이 있었습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 1474일 만에 파면되었습니다. 그런데 파면되면 바로 청와대에서 나오는 줄 알았던 대통령이 아직도 청와대 안에서 버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12일 현재에도 민간인 박 씨는 이렇다, 저렇다 입장 발표도 없이 청와대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못 받아들이는 것인지, 아니면 옆에서 조언해주던 사람들이 모두 구속이 되어서 그런 건지, 아무튼 그냥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청와대를 쓰고 있습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지저분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글이 인쇄가 될 때쯤에는 서초동을 거쳐 의왕시로 가시는 것으로 거처 문제가 정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말씀드리는 순간 청와대에서 짐을 빼고 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아름다운 이별과 함께 올해 반드시 우리가 아름답게 이별해야 할 것이 있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낡은 정치구도’와의 이별입니다. 우리가 촛불로 만들어낸 5월 대선마저 촛불 이전에 치러진 대선처럼 ‘정권교체냐, 정권연장이냐’ 하는 낡은 질문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정권교체는 국민들이 이루었습니다. 이미 여당이 없는 선거입니다. 그러니 이번 대선만큼은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어떤 정치구도가 필요한가, 이것을 중심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번 대선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단독으로는 수많은 개혁 과제를 해결할 힘을 갖기 어렵습니다. 연합정치가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에서 만들어질 정치구도에 개혁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과 동떨어져 있는 정치의 갈등선을 국민의 삶 곁으로 바짝 당겨 와야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 노동의 문제가 정치의 제1과제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민주당과 정의당이 경쟁하는 정치구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정권교체를 통해 국민의 삶이 의미 있게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15년을 동고동락했던 담배를 과연 끊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끊고 보니 이게 뭐 좋다고 이렇게 오래 피웠나 싶습니다. 또 대통령이 탄핵되면 나라에 대혼란이 오는 것이 아닌가, 왜 걱정을 안 했겠습니까? 하지만 혼란은커녕 결과적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증명해낸 대사건이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민주 대 반민주’라는 익숙한 정치구도와도 이별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이미 반민주 세력을 퇴장시켜버린 이번 대선이야말로, 한국의 정치지형 전체를 왼쪽으로 이동시킬 절호의 기회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놓고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경쟁하는 구도로 만들어 놓아야 차기 정권에서의 과감한 개혁도 가능할 것입니다. 익숙한 것과의 아름다운 이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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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섭 _ 재학 시절인 2006년 농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뛰어들어 진보신당(현 노동당) 서울시당 조직국장, 노동당 대변인실 언론국장을 역임하고 2016년 1월부터 정의당으로 옮겨 현재 대표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다.

Last modified: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