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08 오후 108호(2017.03)

[마을을 꿈꾸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진보하는가?

국승용(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화학 87)

나는 우리나라의 기득권 집단이 무섭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를 노통장, 노통장하고 불렀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민적 이미지를 통장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수는 좋지 않은 의도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그 때 대기업 계열사의 사장을 했던 한 분과 유기농산물 유통 일로 자주 만나고 있었는데 그 분이 지나가는 말로 하시는 말씀이 ‘노통장이 1년짜리라는 말이 있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1년 후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탄핵안 가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1년 전 들었던 ‘1년짜리 노통장’ 이야기는 내 머리 속에 깊숙이 낙인처럼 박혀 버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대통령의 임기를 쥐락펴락 하는 집단이 있는데, 영화 ‘내부자들’ 정도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들은 수도 이전을 막기 위해 ‘경국대전’을 헌법에 준하는 지위에 올리는 개그를 불사하면서 수도 이전을 막고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했다.

지난 해 가을 광장에 모인 촛불이 우리 사회의 어둠을 밝히기 시작할 때 대학 1년생으로 내가 겪었던 87년의 상황이 오버랩 되는 것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 그 시대를 겪었던 사람들 중에 나와 같은 걱정을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통령이 파면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광장의 힘에 밀려 국회에서 탄핵안을 줄다리기할 때만 해도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상황이 떠오르는 것을 말이 씨가 될까봐 입 밖에 내지 못했다.

87년 6월 항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민의 힘으로 일구어낸 것이다. 대학 1학년이었던 내가 본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었을 테지만 낮에는 학생들이 거리에 나섰고, 거리의 시민들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소위 넥타이 부대라고 불렸던 사무직 직장인들이 시위대에 가세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때 시위는 주로 평일에 있었다. 내 기억에는 89년 이후 전노협이나 전농과 같은 부문별 전국 조직이 결성되고 서울 집중 시위를 할 때에는 주말에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87년에는 주중에 전국 동시다발 집회가 열렸다.

노태우가 6.29 선언을 발표할 때, 그들은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4자 대선 구도를 짜서 노태우를 당선시키는 시나리오를 꾸미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의도를 꿰고 있는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 진영에도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개헌과 대통령 선거 운동 국면은 제도권 정치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DJ가 사면 복권되어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지 시민들에게 대선은 3지선다의 객관식 문제였고, 그가 출마를 결심한 후 그것은 4지선다의 문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당시 나는 선거권이 없었고, 우리 가족은 5표를 행사할 수 있었는데, 민중후보 백기완을 포함해서 골고루 5표를 찍지 않았나 싶다.

지난 해 12월 광장의 힘이 여의도가 탄핵안을 가결할 수밖에 없도록 휘몰아쳤을 때, 87년 4지선다의 트라우마를 떠올렸던 사람이 여럿 있었을 것이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87년보다 민주화도 많이 진전되었고, 정치 구조도 같지 않기에 87년처럼 죽 쒀서 개주는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반복되는 것은 대통령 선거 국면에 돌입하는 순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도 87년과 같이 4지선다 객관식 문제를 풀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직접 민주주의가 간접 민주주의보다 반드시 우월한 것이 아니라고도 한다. 대의 정치라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보기 중에서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다독여도 보지만 속상하고 억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공권력의 폭력이 두렵지만 분노를 감출 수 없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힌 사람도 시민이고, 추위에 떨면서 밤늦게까지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른 사람도 시민들이다. 그런데 제도권 정당들은 자신들이 탄핵안을 가결시켰다며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과실을 차지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으로는 우리 사회가 바뀔 것 같지 않다. 87년 체제 이후 30년간 그들은 늘 그래왔다. 진보 정치를 표방했던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 출신의 국회의원들도 그랬던 것을 보면 우리 정치 체제가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특히 이번만은 그저 야당이 집권하는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다. 그런데 집권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한 야당은 그저 집권하는 것 외에는 다른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멀리 본다고 멀리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멀리 보지 못한다면 절대로 멀리 갈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것이 통일이든, 복지사회든, 지방 분권이든, 협동 경제․시민 경제든, 교육 개혁이든, 균형 발전이든, 기본 소득이든, 식량 안보든 모두가 조금은 멀리 보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투표에서는 최악을 피하는 전략적 선택을 하더라도, 생활에서는 멀리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전략적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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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승용 _ 학부를 졸업하고 수년간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느낀 바가 있어 농경제사회학부에서 농산물유통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농업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직장이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나주로 이사해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Last modified: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