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호 (아세안 산림협력기구 프로젝트 매니저, 산림자원 92)
현재까지 보고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약 50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수많은 식물들이 하나하나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혹시 여러분은 주위에서 피어나는 식물들의 이름을 불러보거나 그 이름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이 식물 이름들이 2015년부터 큰 논란으로 떠올랐다. 한일문화어울림 연구소장인 이윤옥 씨가 집필한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 바로 그 논란의 책이다. 저자는 1937년에 출간된 <조선식물향명집(朝鮮植物鄕名集)>의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우리 땅에서 자라는 수많은 식물들의 이름이 우리가 붙인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이 붙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첫째, 꽃 이름에 대한 오류가 많고, 둘째, 우리의 고유명을 일본명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셋째, 학명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고, 넷째,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은 일본 식물명의 번역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윤옥 씨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조선식물향명집의 서문을 읽어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당시 조선식물향명집의 저자들이 일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우리 고유의 식물명을 정리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대개 식물명에 관하야는 세계 공통 학술어인 학명 이외에 고래로 각국에는 각기 고유 명칭이 있는 것이다. 우리 조선에도 통일은 되지 못하였으나 고래로 식물의 고유 명칭이 파다하니 차를 수집하여야 되겠으며 또는 교수상 운용상 하로 밧비 차를 정리 통일할 필요에 직면한 우리 식물부원은 이래 부단의 노력을 가하여왔다.
그런데 조선산 식물의 향토명은 향약채집월령, 향약본초, 동의보감, 산림경제, 제중참편, 방약합편 등 고적에 산견되는 외에 총독부편 조선어사전, 삼박사 저 조선식물명휘, 石戶谷(이시도야)·정태현 양씨 편 조선삼림수목감요, 중정박사 저 조선삼림식물편 등에 기재된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차등 명칭 중에는 동물이명, 혹은 이물동명의 것과 又는 동일종에 수 개의 지방명칭이 있는 것도 있으며, 조선어에 생소한 내외 선학들의 오전오기도 불소하야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자에 편자 등은 종래부터 연구 조사하여 오든 차에 일층 채집과 조사에 진력하는 한편 연 삼년간 백여 회의 회합에서 편자 등의 수집한 방언을 토대로 하고 전기 문헌을 참고로 하여 식물명칭을 사정하기 범 이천여 종에 달하였다. 그러나 아직 사정 미완된 것은 점차 조사를 거듭하야 미구에 속편이 발행되기를 자기(스스로 기약)하는 바이다.
조선식물향명집은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 분포하는 2천여 종의 식물명을 우리말과 일본어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식물도감이다. 1937년에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가 저술하였다. 이 책을 제작하기 위해 조선박물연구회에서는 조선 각 지역의 민간에서 불리는 식물명을 실제로 조사하고 수집하였으며, 고문헌의 식물 이름도 반영하여 수록하였다.
종의 구분을 위하여 식물의 형태적 특징, 유래, 산지와 발견자 등을 정리하여 기록하고 있다. 또 식물의 과별 분류체계에 따라 식물의 학명, 국명, 그리고 일본명이 쓰여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상당수의 식물명은 이 책에서 정리된 내용을 따르고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박과 사전).
물론 <조선식물향명집>의 우리 식물명에는 일본 잔재가 남아있는 것이 있고, 앞으로 이것을 우리의 현실에 맞게 바로잡아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저자들은 일제강점기의 서슬 퍼런 감시 속에서 어렵사리 ‘시골 풀이름’을 모아 한국 식물학자의 힘으로 우리의 식물을 설명하는 <조선식물향명집>을 엮어냈다. 당시는 우리 국토가 일본 식민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국명(國名)이라고 쓰지 못하고 지방이라는 뜻의 ‘향명(鄕名)’이라는 이름을 써야 하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었다.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은 출간되자마자 정보의 오류와 왜곡된 시각으로 인해 언론 및 제도권 안팎의 식물학자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국내 유수의 포털인 네이버는 책의 사실여부에 대한 검증 없이 이 책을 지식백과 사전으로 등록하는 실수를 범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사전 서비스는 어떤 곳인가? 요즘 트렌드에 비추어볼 때, 초등학생을 포함한 수많은 학생들이 이곳의 자료를 사실로 믿고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이트다.
이윤옥이 집필한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의 네이버 지식백과 서비스와 관련하여, 그 책이 안고 있는 무수한 문제점과 네이버의 파급효과를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필자가 그룹장으로 있는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페이스북 그룹에서도 이 책이 담고 있는 잘못된 내용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고 네이버 측에 지식백과 사전의 취소를 요청하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다행히도 주변에 계신 아마추어 식물전문가들께서 그 책에 대한 문제점 지적 및 법적 대응에 대해 네이버 측과 6개월간 대응한 결과 네이버측은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의 네이버 지식백과 서비스를 취소하게 되었다. 올바른 자료와 정보를 제공할 책임이 있는 포털 사이트가 진실의 왜곡에 앞장선다는 점에서 참 개탄스럽기까지 하였다. 네이버 측과 힘든 싸움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역사란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준다. 역사를 왜곡한다면 미래를 살아갈 다음 세대는 잘못된 역사 인식으로 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현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책을 집필해야 한다. 이 책으로 배우는 학생들 또한 이러한 왜곡을 방관하지 말고 평소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선식물향명집의 표지 및 머리말 : 한글디지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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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호 _ 서울대학교 산림환경전공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아시아산림협력기구(AFoCO)에서 근무중이다. 페이스북 그룹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방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을 덕으로 품어 안는 성격으로, 업무를 추진할 때는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스타일. 아시아산림협력기구가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으로 발전하는데 작은 힘을 보태고 싶은 꿈이 있다.
Last modified: 2024-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