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농경제사회학부 08)
2009년 3월,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경찰서 유치장에 가보게 되었습니다. 미대사관 앞에서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을 반대하는 시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연행을 각오하고 했던 시위였지만 어설픈 시위이기도 했습니다. 현수막을 들고 걷던 우리는 미대사관 정문을 지나쳐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기자분들이 어디까지 가냐고 묻자 그때서야 다시 방향을 돌려 대사관 정문 앞에 섰습니다.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 : ‘중요한 결의’라는 뜻으로, 매년 봄에 연례적으로 시행하는 한미연합사령부의 합동 군사훈련이다. 팀 스피리트(Team Spirit) 훈련과 그 이후 이뤄진 한미 연합전시증원연습(RSOI)이 2008년부터 키 리졸브로 이름을 바꾸었다. (편집자 주)
하지만 사진 몇 장을 찍자마자 저희는 바로 경찰들에 둘러싸였습니다. 몇 분 후에는 사지가 들려 소위 닭장차(공식적인 표현이 무엇인지 찾아보려 네이버에 검색했더니 ‘죄수 등을 태우기 위하여 철망을 둘러친 차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 당당히 등재되어 있습니다)에 실려 경찰서에 끌려갔습니다. 그것이 유치장과 벌금형과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 민중의소리에 당시의 기사와 사진이 남아있습니다.
2008년 저는 운이 좋게 농경제사회학부에 입학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을 통과한 것이 하나의 행운이었고, 좋은 선배와 동기들을 만난 것 또한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소심하고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제가 학생운동을 잘 해보고 싶어 과 학생회장도 하고, 농대학생회와 총학생회 후보로 출마도 해보았습니다.
아쉽게도 학생회장에 당선되는 행운까지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용산참사, 반값등록금 집회, 쌍용자동차 투쟁 등 정말로 싸울 일이 많았습니다. 열심히 촛불을 들다보니 유치장도 몇 차례 더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조심해도 경찰들은 귀신같이 채증사진을 찍어 출석요구서와 벌금을 들이밀었습니다.
2014년 12월 입대를 한 이후에는 군대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군 검찰은 수차례 전과가 있고 ‘개선’의 여지가 없다며 실형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생 신분이 된 제게 500만원이라는 벌금은 너무나 부담스러운 것이었는데, 감사하게도 김상진기념사업회 선배님들의 도움으로 부담을 덜고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여러 활동을 시작한지도 어느새 햇수로 10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휴학을 일삼고 공부와는 담쌓았던 저는 여전히 학부를 다니고 있습니다. 함께 대사관 앞에 섰던 친구들 중에는 이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친구도 있고, 노무사가 된 친구도 있고,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도 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는 최근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가 이 시위가 문제되어 비자발급에 어려움을 겪는 중이라고 합니다.)
새내기 시절 이명박이었던 대통령은 박근혜를 거쳐 문재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올해는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승리의 경험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유치장을 처음 경험하게 했던 키리졸브 훈련은 여전히 해마다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 3월에도 누군가는 거리에서 평화를 외쳐야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속도조절을 하고 있지만 미국이 밀어붙이고 친미 관료들이 들여놓은 사드는 철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군사법원에서 검사는 저에게 구형을 하면서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했지만 그동안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이 사회였습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훈련, 노동자들의 죽음, 통합진보당 사건과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 후퇴. 촛불을 멈춰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간 수많은 사람들의 싸움과 헌신이 만들어낸 촛불의 힘으로 2017년 이명박근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으니 개선의 여지는 이제야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물론 새로운 정권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나아질 것인가는 여전히 우리의 몫입니다. 그 몫을 다하기 위해 앞으로도 저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선배님들의 응원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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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_ 늦은 졸업을 준비하며 통일과 농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보다 좋은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삶을 꿈꿉니다.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