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광준 (경기방송 편성제작부장, 농화학 88)
아침에 신문을 보다 뜨악했다. 드라마 혼술남녀 제작현장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제목과 함께 아들을 잃고 목놓아 오열하는 어머니의 사진.
– 어? 혼술남녀? 이거 웰메이드였는데.
– 그래? 봤어?
– 응, 다시보기로. 많이 봤어 사람들.
우리 집 꽃송이도 급관심을 나타냈다. 공시생.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혼자 술을 마시는 요즘 젊은이들의 꿈과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 호평을 받은 드라마. 그 피디는 왜 죽음을 택한 걸까? 서울대 나왔다는데, 정규직이었다는데. 그것도 힘든 일 다 끝내고 성공을 자축하는 종방연까지 마치고 나서 왜?
곧바로 인터뷰를 준비했다. 방송계의 마당발 김현아 피디가 빛의 속도로 인터뷰를 섭외했다. 2017년 4월19일이었다.
– 형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 매사에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었어요. 동생인 제게도 세상을 쉽게 쉽게 나이브하게 보지 말고 이면에 어떤 일이 있는지 관심 갖고 지켜보라고… 형이 현실 속에서 부딪칠 거라 고는 예상했지만 막상 이렇게까지… 마음이 너무 아프네요.
고 이한빛 피디 (28)의 동생 한솔씨는 군부대로 복귀하기 직전 우리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그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 형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는 일을 찾았고, 드라마 피디는 그걸 이룰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일이 세상에 많지 않잖아요?
한빛씨는 그런 꿈을 안고 치열한 경쟁을 뚫어 마침내 드라마 왕국 tvN의 정규직 피디가 됐다.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이었다. 그러나 막상 그를 기다리는 현실은 꿈꾸던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드라마 촬영 55일간 쉰 날은 딱 이틀(그것도 추석 명절 포함해서). 나머지는 하루 평균 20시간 가량의 노동이었다.
– 저희가 형의 카톡을 보니, 사람이 잘 때는 카톡을 안 하잖아요. 물론 깨어있어도 못할 수 있지만. 평균 3-4시간 잤어요.
문제는 이런 현실을 자신도 감내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강요해야 하는데 있었다.
– 정규직 피디는 관리자 역할이었대요. 외주 업체나 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관리하는. 형은 관리자로서 약자와 상생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니까… 오히려 정리해고나 계약해지 등 해고 통보하는 일을 다 정규직 중 막내라고 형에게 떠넘기니까…
동생 한솔씨는 형이 결코 힘들어서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 혼자 쓴 글 중에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다시 새벽이 지나고 있다고. 자신의 모교 학생들은 지금 점거농성을 하고 있고, 세월호 사람들과 촛불 시민들은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자신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노골적인 비아냥과 폭언이었다.
– 한 사람이 그냥 힘들어서 죽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송미디어와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데, 과연 그 제작현장도 행복한지, 오히려 누군가의 희망을 빼앗고 착취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 어려운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솔씨의 수화기 너머로 대통령 유세차량의 유세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그는 군대에 복귀했고, 우리는 고인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유서를 읽었다.
–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 세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솔직히 예상 못했어요. 사회가 굴러가는 데 필수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둥지를 틀면,
운동을 저버리고 내 영달을 찾더라도 세상의 모순과 빗겨날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죠. 바로 이 판을 나왔어야 했는데, 알량한 자존심이 발목을 잡았네요. 지금 그만두면 패배자이자 중도포기자 낙인이 찍힌다는 두려움에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네요. 상태가 이러니 그나마 노동 착취하는 관리자 일조차 제대로 하질 못했구요. (故 이한빛PD 유서 발췌)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왜 꽃 같은 목숨까지 버렸는지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내 가슴속에선 깊이 가라앉아 잊혀 가던 네 글자가 다시 떠올랐다.
비.정.규.직.
1997년, 나는 한 달에 세금 떼고 57만 얼마를 받는 프리랜서 FD(연출보조)로 첫발을 내디뎠다. 농촌이나 산촌 현장에서 농업인들의 성공사례를 영상에 담던 공영방송의 TV 프로그램이었기에 한 달에 많게는 절반이 농촌 출장이었다. 그 시절 대략 네 장면이 그려진다. 하나는 개집 앞에서 개와 눈을 맞추고 있던 나의 모습.
– 아이고 착하지… 자, 조금만 더 참자. 좀 있으면 인터뷰 끝나고 아저씨들 갈 테니 조금만 더 이렇게 얌전히 있자…
개가 하도 왈왈 짖어대니까 인터뷰가 안됐다. 가뜩이나 손동작에 신경 쓰며 연달아 NG를 내던 농민 아저씨도 더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개집 앞에 우뚝 서 개와 눈을 마주치면서 무언의 대화를 나눴다. 그랬더니 참 신기하게도 개는 짖지 않았다. 착하게 생겨서 그랬는지 아님 불쌍해 보여서 그런 건지. 연출보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작진이 현장에서 원하는 그림을 얻기 위한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이다. 개가 짖으면 짖지 못하게 하고, 날이 추우면 불 쬘 공간을 만들고, 촬영이 끝나가면 다음 동선을 챙기고, 다음 촬영지인 시골에는 먹을만한 식당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영수증도 꼭 챙겨 분류해놓고. 그렇게 긴 하루가 지나면 날마다 새로운 모텔에서 잠을 청했다.
– YBM 토익 실전 모의고사
나는 모텔방 욕조 안에서 토익 공부를 했다. 혹시라도 동료들이 깰까 봐 살금살금 욕실 안에 들어가 책을 펴놓고 영어 테이프를 들었다. 꿈에 그리는 정규직 피디가 되려면 반드시 ‘언론고시’라는 방송사 시험을 통과해야 했고 당시 1차 컷은 적어도 800점 이상의 토익성적이었다. 나는 촬영 선배들이 곤히 잠든 모텔방 욕조 안에서 토익문제를 풀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 어? 피디님, 선배들 어디 가셨어요?
방송국에 출근했더니 그 많던 조연출 선배들께서 한 분도 안 계셨다. 아침이면 ‘어제도 편집하느라 밤을 샜다’며 졸린 눈을 비벼가며 편집기 앞에서 하품하고 있던 그 기라성 같은 조연출 선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다. 그게 IMF 외환위기였다. 공영방송도 제작비를 줄였고, 그 자회사였던 우리 프로덕션은 그보다 더 심하게 제작비를 줄였다.
그 결과 프리랜서 신분이던 그 많던 조연출 선배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궂은 일 험한 일 어려운 편집 다 척척 해결해가며 언젠가 자기 이름으로 된 드라마 한 편, 프로그램 한 띠 멋지게 만들며 피디로 입봉할 꿈을 꾸던, 방송사 별관 한 층의 불을 환히 밝히던 그 선배들이 한날 한시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작별인사도 송별식도 없이 사라졌다. 그게 비정규직이었다. 난 아직도 그 고요한 스튜디오의 아침풍경을 잊을 수 없다.
– 오늘 저녁 어때?
– 미안. 내일 건강검진이라 굶어야 해서..
– 건강검진은 무슨… 해봐야 맨날 그게 그거더만…
복도에서 정규직 선배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참 부러웠다. 그 분들에겐 늘상 하는 연례행사인 건강검진이란 것, 나에게도 건강검진이란 걸 받을 날이 올까 싶어서 부러웠다. 운 좋게 작가가 되어 살아남은 나였지만 생활인으로서 현실의 문제는 남아있었다.
정규직은 월급이란 걸 받지만 우리는 회당 출연료라는 개념으로 돈을 받았다. 방송이 나가야 돈이 나온다. 어쩌다 올림픽 중계나 재난방송으로 정규 프로그램이 죽으면 돈이 나오지 않는다. 개편을 통해 프로그램이 아예 없어질 수도 있기에 1년 뒤, 아니 반년 뒤 나의 수입 구조를 예측하기 힘들다. 몸이 아파도 방송은 나가야 하기에 늘 건강해야 한다. 결혼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도 방송은 나가야 하고, 신혼여행으로 빠질 공백기를 준비해야 하기에 난 결혼식 하루 전까지 농촌 취재를 다녀왔다. 그래서 참, 건강검진이 부러웠다.
– 방송은 결국 사람이 경쟁력입니다. 다른 업종과 달리 방송은 기계로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사람의 크리에이티브가 죄우하기에…
세월이 흘러 나는 정규직 피디가 되어 간부회의에서 사장님 말씀을 경청하고 있다.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사장님 말씀. 아마도 부서에 따라 인식에 따라 다른 스펙트럼으로 해석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경영이나 관리부서라면 이렇지 않을까?
– 사장님 말씀이 맞아. 인건비 부담이 너무 세 우리 회사는. 제 돈 주고라도 방송하고 싶은 애들 세고 셌는데 왜 고임금의 오래된 프리랜서들을 계속 써야지? 별거 없더만.
그러나 적어도 어느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어요. 창의성이라는 것, 크리에티비티라는 것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숱한 경험과 도전, 좌절의 역사 속에서 배양되는 것 아닐까요? 청취자가 행복하려면 먼저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나도 이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비정규직이란 오래된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해준 이한빛 피디의 하늘나라 행복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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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드라마 ‘도깨비’의 히로인 지은탁 피디와 동종 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FM 99.9MHz 경기방송 편성제작부장. 언젠가 농촌에 살고픈 닉네임 ‘시골피디’로 나무위키 선정 언론계 황빠 5호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