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훈 (농민, 농교육 75)
일손이 없어 체리를 따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멀리서 회원들이 와 주셨습니다. 서울에서 이병호, 백혜숙, 정철훈 부부, 김용진 부부가, 나주에서는 오내원 형과 국승용 가족, 순창에서 김승희 부부, 남원에서 이강철 회원이 오셨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반갑게 맞을 친구들이 있다는 걸 우리는 왜 평소에는 잊고 사는 걸까요?
일손이 없어 수확을 못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체리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체리는 한꺼번에 익지 않기 때문에 익은 것만 골라서 따야 합니다. 그리고 여느 과일과 달리 알이 작아서, 드는 품에 비해 수확되는 양은 많지 않습니다.
주로 높은 곳에 열매가 달려 있어서 사다리로 올라가 따야 하는 불편함도 있죠. 그렇게 딴 것 중에서도 흠이 있거나 너무 작은 놈은 비품으로 다시 골라내야 합니다. 정품 1kg을 따려면 아마도 한 사람이 한 시간 정도는 따야 할 겁니다.
체리 따는 시기는 사과 과수원에서는 일 년 중 가장 바쁜 땝니다. 사과 열매를 솎아주어야 하는 때지요. 그 일이 급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노동효율이 낮은 체리 수확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이병호, 이강철, 백혜숙은 먼저 와서 열 시부터 체리를 따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땀을 흘리며 열심히 땄는데도 오후 세시까지 수확한 게 겨우 25kg 남짓이었습니다. 미리 주문받은 긴급히 보내줘야 할 정품 15kg을 포장하고 나니 남는 것은 흠이 있거나 알이 작은 비품뿐이었습니다. 김기사 총회에, 그리고 멀리서 일을 거들어 주러 온 친구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못하는 게 마음 아팠지만 익은 게 그것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체리는 사과 밭 여기저기 남는 자리에 이십여 그루를 심었는데 올해는 제법 많이 열렸습니다. 열매가 너무 많이 열려서 알이 작은 나무도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체리가 잘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올해 결과를 보니까 되기는 됩니다. 하지만 수입을 바라고 할 일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
수확을 마친 후에는 이강철 회원이 가져온 유기농 수박과 오내원 형이 사온 막걸리를 가지고 소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오고가는 정담과 웃음소리가 오래도록 황산 자락을 맴돌았습니다. 마지막 뒤풀이는 인월 전통시장 ‘한우정’에서 김승희 회원이 한우등심으로 푸짐하게 쏘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이 멀기는 하지만 친구, 선후배님들이 보고 싶으면 사과 수확철에 또 한 번 잔치를 벌일 생각입니다. 체리는 많지 않지만 사과는 많으니까 좀 더 푸짐하게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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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훈 _ 사과 농사 지은 지가 30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사과 농사가 제겐 취미이자 직업입니다.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