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2:04 오후 109호(2017.06)

[신입사원 여의도 생존기]
‘집’으로 돌아보는 10년 서울생활기

박수범(농업정책보험금융원 기획관리부, 농경제학과 09)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서울 살이도 어느새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에게 주기적이고 중대하게 찾아왔던 걱정이 있다면 바로 ‘집’ 문제일 것이다. 고민은 대학 합격의 기쁨이 조금 가시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당시는 철이 없던 시절이어서 기숙사에 당연히 붙겠거니 생각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인간관계 등 다른 걱정에 비하면 미풍과도 같은 것이었다. 참 운이 좋게도 학교 기숙사(관악사)에 붙었고, 보장된 1년 동안 그야말로 대학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다.

물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공대에 다니던 룸메이트는 상당한 야행성에다가 ‘서든 어택’이라는 온라인 슈팅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때문에 매일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 스탠드에다가 자판과 마우스를 두드려대는 엄청난 소음까지, 그 난리 속에서도 별 생각 없이 잘 잤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약간은 술에 절어서 살던 시절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달콤한 일 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기 전, 그 어렵다는 관악사에 재차 붙게 되었다. 같이 기숙사에 거주했던 동기들 중 절반 이상이 떨어진 것을 보면 여러모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 마찬가지로 1년을 채워 살 수 있었지만, 당시 학업에 지치기도 하고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한 학기만 마치고 군대에 가기로 결심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시작한 군 생활 2년은, 의식주는 보장되었으나 자유(自由)가 없는 시간이었다.

복학을 하면서 다시 관악사에 추가합격하여 한 학기를 살았고, 이듬해에는 결국 낙방하여 월세 30의 녹두 단칸방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다. 방 세 칸이 있는 흔한 아파트 식 구조로 화장실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당시 옆방에는 고시 장수생으로 짐작되는 40대 아저씨 한 분이 사셨는데, 어느 날은 내가 걸어 다닐 때 나는 발소리가 시끄럽다며 방으로 찾아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 예민한 아저씨와의 껄끄러운 관계는, 한 학기 후 지역학사에 붙게 되어 방을 빼면서 자연스레 끝이 났다.

대학생활에서 마지막 1년 반을 함께 했던 지역학사는 참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지자체에서 일정액을 지원하여 운영했는데, 월 20만원이라는 저렴한 부담금에 널찍한 2인 1실의 방과 매일 맛있는 세끼 식사가 제공되었다. 학교 기숙사와는 다르게 동향의 선후배들을 여러 기회로 자연스럽게 만났고, 학사 내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지역학사를 마지막으로 4학년을 마치기까지, 지방에서 올라 온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비교적 평탄한 주거 생활이었다.

4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하면서 고향에 내려갔다가, 지금의 직장에 취직하면서 다시 나의 서울생활이 이어졌다. 그러나 작은 기관이어서 사택이란 것이 없고, 합격발표 후 출근까지 시간이 1주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막막했다. 기숙사나 학사와 같은 지원은 더 이상 누릴 수 없었고, 방을 구하는 데도 익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몇 군데 둘러본 끝에 영등포역 먹자골목 근처의 고시원 월세방을 계약했다.

이는 아마도 내 인생의 최악의 선택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전철역과는 가까웠지만 일단 높은 월세에 비해서 방이 답답할 정도로 비좁았고, 정주여건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먹자골목 사이에 위치하여 집에 들어가는 길만 해도 상당히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밤늦게까지 음악 소리가 시끄러워 창문을 열고 자기도 힘들었다.

계약기간 1년 동안 나의 안목 없음을 매일같이 반성했다. 회사 선배들도 안쓰러워했을 정도니 더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는 은행 대출에 그간 모은 돈을 보태어 전세 원룸으로 방을 옮길 수 있었다. 회사 주거래은행의 혜택도 있었지만, 당시 저금리 정책에 따라 기준금리를 최저로 내린 한국은행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그 후로 한 번의 이사를 더 했고, 지금은 그간 좁았던 방들과 비교해 조금은 넉넉한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거비용이 생활비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변함없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어디냐고 생각하고 있다.

타향살이에서 주거 문제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고, 특히 서울은 집값이 높다 보니 더욱 심각한 문제다. 학생 시절에는 취직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주거 문제도 쉽게 해결이 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녹록치만은 않은 것 같다. 원룸도 다 같은 원룸이 아니고, 대다수가 원룸을 넘어 저 멀리 있는 내 집 마련까지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정부에서도 저리 지원이나 공공주택의 확충 등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중인데, 앞으로 다양한 정책이 실행되어 주거난이 점진적으로 해소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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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범_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여의도의 공기업에 입사했다. 전공인 경제학과 관련된 업무가 대체로 적성에 맞아서 앞으로도 성실한 직장인으로 살아볼 생각이다.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하는 ‘대학생 농업탐방’에 참가한 인연으로 선구자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