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애란 (전 평택여고 교사, 후원회원)
지난 5월 20일, 서울 시낭송협회 ‘시음’의 창립총회가 양평의 황순원문학관에서 열렸다. 『소나기』,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 그의 소설을 읽고 나는 황순원님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분은 평생 잡문을 쓰지 않기로 유명했으며 순수 소설만 쓰셨다고 한다. 시음의 창립총회가 내가 존경하는 분의 문학관에서 열리는 것은 아주 뜻 깊은 일이었다.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기에 마음이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단편소설 소나기에는 이제 막 이성에 눈 떠가는 사춘기 소년소녀의 애틋한 첫사랑이 아름답고도 서정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 야학시절 ‘소나기’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분은 열여덟 소년인 조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께 마음을 빼앗겼던 나는 열일곱 살 소녀였다.
극과 현실을 구별 못해 비극이 벌어지는 오페라는 네온 카발로의 ‘팔리아치’다. 소나기의 소년은 아주 잘생긴 조선생님으로, 소녀는 나로 설정해 놓고 이 소설을 배웠으니 내게 있어 그 시간이 얼마나 각별했을까? 정말 달콤한 시간이었고 소나기를 온몸과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내 10대를 지배한 소설은 바로 이 소나기였던 것이다.
김동리 씨와 황순원님은 둘 다 우리 문학계의 거목이다. 평생 선비의 올곧음으로, 한 치의 부끄럼도 없이 살다 가신 분은 황순원님이었다. 그분의 2세인 황동규님은 서울대 교수이자 시인으로 대를 이어서 우리에게 좋은 작품을 선물했다. 그의 시 ‘즐거운 편지’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마음의 시일 것이다.
반면에 친일행적이 있는 김동리 씨의 2세인 김평우 변호사는 이번 촛불집회 때 황폐한 그의 인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도무지 지성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개념의 막말로 국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그가 변론으로 먹고 사는 변호사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의 막말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핵폭탄 급이었다.
그는 처음에 ‘웬 듣보잡이 떠들고 있나?’ 하고 생각하던 나를 세 번이나 경악시켰다. 늙으신 자신의 아버지를 살뜰히 보살펴드린 서영은 작가에게 그랬다는 것은 더욱 충격이다. 더구나 그는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생이라고 한다. 일반 사람들이 왜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을 좋아할까? 그것은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뭔가 사회를 위해서 한몫을 할 거라는 희망 같은 것.
“억울하게 착취당하는 약자들을 위해 나의 삶을 바치겠다. 아무리 대단한 하버드의 교육과 졸업장도 실제로 인류를 위해 훌륭한 일에 쓰이지 못한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은 나이지리아의 전쟁 고아 출신으로 많은 어려움 끝에 하버드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한 여성이 졸업식장에서 ‘약자를 보호하라’는 제목으로 한 말이다.
양질의 서울대 교육이 약자를 괴롭히는 데 쓰이면, 삶의 도구인 지식이 악의 칼날이 되면 그것은 아니 배우니만 못하다. 더구나 이젠 나이도 70이 넘은 사람이 어쩌자고 철학부재의 삶을 살아서 이름을 더럽힐까 참으로 딱해 보였다. 인생은 짧고 오명은 길다. 찰나의 삶인 이승에서의 잘못된 판단으로 후세에 길이길이 남을 오명을 그는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아들의 잘못된 행동거지로 인해서 새삼 조용히 잠들어 있던, 아버지 김동리 씨의 과거 행적까지 들춰졌다. 급기야는 온 국민이 아버지와 아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다”는 말이 있다. 잠깐 살다 가는 인생길에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할 말인 듯싶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 –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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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_ 선생은 서둔야학 시절 야학생과 교사로서 맺은 인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기며 본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평택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