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사회복무요원, 임산공학과 08)
#10.
오랜만에 동사무소를 찾았다. 매월 보고사항을 전달하고 새 지시사항을 전달받기 위해서다. 마침 복무중단 중이던 최고참 선임이 재복무를 위해 사무실로 복귀했다. 지금 사무실에는 복무중단 전에 그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이 4명 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 보는 다수의 사람들을 어색해 하는 그를 위해 남은 이들이 조금 더 들뜬 분위기로 선임의 복귀를 축하했다. 이제나마 다시 열심히 복무해서 남은 복무일수를 채우라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그는 자리를 배정받고 앉았다.
후임이 그와 업무내용을 공유하고 업무를 분장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이미 선임은 잠에 골아 떨어졌다. 담당자는 그가 원래 많은 약을 복용하고 있고, 그 부작용으로 늘 잠에 취해 있다고 했다. 후임은 혹시 앞으로는 자기 혼자 모든 업무를 부담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나에게 앞날이 캄캄하다고 하소연했다.
몇 주 뒤 후임에게 연락이 왔다. 그 선임이 연락 없이 결근한 지 8일이 넘어 형사고소에 들어갈 위기라고 했다. 원칙대로라면 그렇게 해야 하지만 그러면 기관의 사회복무요원 자리가 하나 줄어들게 되기에 담당자가 신고를 미루는 상황이라고 했다. 얼른 복귀시키기 위해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에게도 아는 게 있나 물었으나 나는 그를 그날 처음 본 것이기에 아는 것이 없었다.
며칠 뒤 선임이 복귀한 모양이었다. 그의 복무기간은 20일 연장되었다. 이런저런 사유로 그는 4년째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11.
옥상 텃밭의 기존 작물을 다 갈아엎고, 새 흙을 넣고, 새 모종을 심었다. 그 과정에서 담당 조경업체가 직원들의 오더를 무시하고 이상하게 시공을 했나 보다. 불만을 잔뜩 품은 구청 직원들이 텃밭에 올라왔다. 텃밭을 둘러본 구청직원들은 나에게 화를 풀고 싶어했다.
구청 직원들이 몰려와 화를 내기 직전에 구의원 나으리가 출두했다. 그는 텃밭에 와서 모종 한 포기를 심고 마치 나머지도 자기가 다 심은 것처럼 포즈를 취하며 사진 다섯 장을 찍어갔다. 연말에 노인정 세 곳에 김장봉사를 해야 하는데, 그래서 배추 100포기가 필요한데, 여기서는 50포기밖에 안 나와서 안타깝다고, 더 심으라고 구청직원들을 닦달했다. 그들이 시선을 이리저리 회피하자 그 닦달은 나에게 향했다.
그는 아저씨 아저씨 하면서 반말로 명령했다. 배추를 더 심으라고. 나는 그에게 똑같이 응, 응, 못하는데 하는 반말로 응대했다. 그는 기분 나빠하면서도 앞으로 종종 보자며 번호를 건넸다. 주변을 둘러보더니 더럽다고 청소를 명령했다. 나는 그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전혀 없었기에 대답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는 배추가 혹시 하나라도 죽으면 내 책임이라고 했다. 나에겐 그런 책임을 질 권한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어이없어 하는 그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화제를 전환하여 매일 아침 8시 30분마다 올 거라고 문을 열라고 요구했다. 문을 여는 것은 가능하나, 그에 맞춰서 퇴근시간을 당겨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조금 머뭇거리더니 안 오겠다고 하며 옥상을 빠져나갔다.
찾아보니 그의 소속은 자유한국당이다.
#12.
목요일 퇴근길에는 건물 앞 쓰레기더미를 다시 한 번 점검한다. 쓰레기 배출 및 수거일은 금요일이지만, 꼭 목요일에 쓰레기를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나다를까 몇 봉지가 놓여 있었다. 봉지를 헤집어 신상을 알아내어 과태료를 물릴 수도 있지만, 민원이 없는 보통 날은 내용물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다시 잘 묶어 두는 걸로 넘어간다.
근무지 맞은편엔 교회건물이 있다. 교회건물 앞에 쓰레기가 놓여있으면 지속적으로 온갖 곳에 민원을 넣는 모양이다. 교회 앞의 쓰레기를 우리 건물로 옮겨 놓는 일도 일상 업무에 추가됐다. 두 봉지를 옮겼다.
한 사람이 교회 주차장에 주차된 차에서 내렸다. 그는 교회에서 나오던 사람들과 목례를 나누며 서로의 신앙생활이 앞으로도 올바르기를 기원했다. 이내 차에서 내린 두 아이를 챙겨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두 아이는 신나서 내달렸고, 한동안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잊은 것이 있었는지 차로 되돌아갔다. 차에서 보자기 같은 걸 꺼냈다. 예배에서 머리에 쓰는 흰 천 느낌이 나는 물건이었고, 약간의 얼룩이 묻어 있었다. 주변을 몇 번 살피더니 보자기를 우리 건물 앞 쓰레기 봉지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당황했다. 아무 말이나 했다.
“아줌마, 쓰레기는 쓰레기 봉지에 넣어 버리셔야지요.”
완전범죄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들어온 참견이었을까? 흠칫 놀란 그는 잠시만요~ 하면서 내 눈을 피해 차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여전히 주차장을 뛰놀고 있었다. 1분? 2분? 얼마간 짧으며 긴 시간이 흐른 뒤 차에서 내린 그는 아이들을 차에 태웠다. 시동을 걸어 차를 뺐다. 창문을 내리며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 멀어졌다.
나는 그저 멀어지는 차 번호를 몇 번 되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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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 자연반 강사이며 현재는 관악구 청림동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