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10:48 오전 110호(2017.10)

[임진각에 다녀와서]
2017년에도 평화열차와 함께 달리는 서민동

이은정 (서울대민주동문회 사무총장, 컴퓨터공학과 85)

서울대민주동문회가 생긴 이래 해마다 가을이면 달렸던 청춘열차가 올해는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열차가 되어 지난 9월 23일 토요일 임진각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삼삼오오 모여든 서민동 회원들, 아이들을 데리고 온 회원도 있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용산역에서 DMZ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DMZ 열차는 단 3량이었지만 의자까지도 여행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그림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서민동은 3호차 대부분을 점령하고 임진강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열차 안에서 임진각 자유의 다리 앞 철조망에 걸 평화 리본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각자의 메시지를 적었습니다.

평화열차 행사를 위해 부평역 리본공작소에서 후원해주신 세월호 리본과 사드반대 리본을 양끝에 달고 회원들의 염원이 담긴 평화 리본을 가운데에 매달았습니다. 11시 반경 임진강역에 도착하여 임진각 옆 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에 리본들을 매달았습니다.

올해 행사를 준비한 김상진기념사업회의 선발대가 미리 잡아둔 평화누리공원 한쪽 전망 좋은 곳으로 장소를 옮겨, 푸짐한 돼지고기와 도시락으로 맛난 점심을 먹으며 서로를 소개하는 친목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 후에는 바로 옆 잔디밭에서 통일퀴즈 한마당을 열었습니다. 중학생용 문제라는데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 많은 회원들이 고전했습니다. 엄청난 실력으로 정답을 맞힌 회원들은 푸짐한 상품을 획득했습니다.

신발던지기, 제기차기, 쭈쭈빠빠 율동 등으로 몸을 써가며 모두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김기사의 정근우 회장님이 평화선언문을 낭독하고 기념촬영을 한 뒤 임진강역으로 이동하여 다시 DMZ 열차에 탑승하였습니다.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는 열정의 사회(?)주의자 김상민 산악회장님(자대 79)의 재미난 사회로 노래 솜씨를 뽐내는 시간을 가졌는데, 함께 탑승한 인도네시아 관광단과 일본분도 자기 나라의 투쟁 가요를 불러주어 열차는 어느새 아시아인이 화합하는 아시아 평화열차로 열기가 달아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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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에 서민동이 결성된 지 이제 4년이 다되어갑니다. 사실 제가 올해 서민동, 이공회 사무총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건 자원자가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였습니다. 2005년 공대 동기의 소개로 나가게 된 공대 등산모임 불암산악회가 그 시작이었죠.

산이 좋고 선배들이 좋아서 매달 나가다보니 어느새 자연대 선배들까지 참여하는 이공산악회가 되고, 저는 산악회 부총무에서 총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공산악회 등산이 제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이공회도 제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제게 있어서 이공회는 좋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날 수 있는, 하지만 단순한 친목모임만은 아닌, 큰 틀에서 민주사회를 지향하는 서울대 동문들의 친목단체였습니다. 그러던 이공회가 자하연, 김상진기념사업회와 연합하여 서민동을 결성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민주 동문들의 구심점이 될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전 서민동 임원은 아니었기에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시국이 바뀌면서 서민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겨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선 매주 서민동의 깃발이 나부꼈고, 서민동 깃발은 많은 민주동문들이 모이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박근혜 퇴진 서명을 위해 카카오톡에 열린 서민동 단톡방에는 700명이 넘는 민주동문이 아직도 모여서 뉴스와 의견, 서로의 소식을 나누고 있습니다. 민주정부수립으로 열린 새로운 기회 앞에서, 개헌운동, 사드반대 운동, 반핵운동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모임 안내 등이 올라오고 있고, 각각의 운동에 서민동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라는 회원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서민동은 상근자도 없었고 생계를 위한 각자의 일이 있는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조직이므로 시민운동단체로 자리매김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7월부터 반상근자로 상도동 서두레 사무실에 출퇴근하기 시작했지만, 인력과 회원들의 시간의 한계 때문에 지속적으로 일을 추진하고 행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민주동문회는 모임의 특성상 동문들의 친목단체와 시민운동단체 그 중간 어디에 자리하는 모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꼭 하나의 정체성을 한계 지을 필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때그때 친목단체 역할도, 시민운동단체 역할도 해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작년 초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박근혜가 탄핵되고 새 시대가 열렸듯이, 그리고 돌아오는 평화열차에서 뜻밖의 아시아인의 평화한마당이 펼쳐졌듯이 말입니다. 그런 서민동에서 김상진기념사업회는 30여 년 동안 조직의 역량을 축적해 온 소중한 자산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김기사와의 만남은 몇 년 전 마석 모란공원 김상진 열사 추모제에 참여했을 때입니다. 묘지 곳곳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에게 멋진 공연과 푸짐한 맛난 음식을 제공해 주셨지요. 그 후에도 항상 김기사와 함께한 모임은 먹을거리가 풍성하고 많은 후배들을 만날 수 있는 훈훈한 공간이었습니다.

올해 행사에서는 회장님이 일일이 가족 단위로 참여한 회원들의 안부를 물어주시는데, 김기사 전체가 하나의 가족 같은 분위기로 느껴져 엄청 부러웠습니다. 서민동에게도 저에게도 이렇듯 소중한 김기사지만, 제가 느꼈던 아쉬운 점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김기사는 김상진추모사업회이지만, 동시에 농대 민주동문회이기도 합니다. 지난 30년 동안 김기사 이외에 어떤 다른 농대 민주동문회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떤 조직이 충분히 ‘가’이면서 ‘나’도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도 회사에서는 ‘부장’ 등의 직책을 갖지만 가정에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김기사가 추모사업회에 머물러 있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농대 민주동문회로서 서민동에서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면 서민동 사무총장인 저의 욕심일까요? 일단 김기사에서 매분기마다 발행하는 <선구자>같은 잡지를 서민동도 발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만 되어도 서민동이 한 단계 성장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기사의 가족 같은 분위기도 서민동이 닮고 싶습니다. 모임의 대의명분도 중요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정도 우리 세대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는 훈훈한 분위기의 서민동이 된다면 점점 삭막해지는 이 사회에서 민주동문들이 서민동으로 결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얼마 전 걸음마를 시작한,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서민동이 명실상부한 서울대 민주동문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김기사의 응원과 비판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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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_ 올해 초부터 서민동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는 공대 컴퓨터공학과 85학번 이은정입니다. 컴퓨터프로그래머와 기술번역가로 먹고 살았지만, 이야기, 인문학, 음악을 좋아하는 서민동의 일꾼입니다.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