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경 (편집주간, 농학 95)
세뇌의 힘은 무섭다. 이것을 나는 20여 년 전 대학생 시절에 뼈저리게 체험했다. 당시 나는 토익 시험 준비를 하면서 영어 학원을 찾고 있었다. 마침 한 친구가 ‘박ㅈ 어학원’이라는 곳을 추천해주기에 그 학원 이름을 머리에 새겨두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음악 때문에 즐겨듣던 라디오가 화근이었다. 프로그램 중간 중간에 ‘박종〇 어학원’이라는 광고가 유난히 끈질기게 나왔다. 한 달쯤 뒤, 강남의 ‘박ㅈ 어학원’에 강의 등록을 하러 간 나는 홀린 듯이 ‘박종〇 어학원’을 찾아 들어가 등록을 하고 말았다.
강의 수준은 실망 그 자체였다. 이미 토익 시험이 많이 어려워지는 추세였는데, 그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교재로 대충 시간을 때우는 수업이었다. ‘강사는 요즘 토익 시험을 한 번도 안 봤나?’ 접수 데스크에 항의하러 갔다가 마침 학원 설립자라는 박종〇 원장을 만나서 얘기를 했지만, 20만원에 가까운 수업료는 환불받지 못했다. 씁쓸한 추억이다.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어떻게 박종〇를 박ㅈ으로 착각하고 한 달 치 수강료를 날렸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내 인생에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 짧은 다짐과 함께 그 일은 어느새 시간 속으로 잊혔다.
‘뭉쳐야 뜬다‘가 화근이었다. “패키지 관광 한번 떠나볼까?”
그런데 20여 년이 지나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줄이야. 지난 여름, 우연히 JTBC 예능 프로그램 ‘뭉쳐야 뜬다’를 보게 된 나는 프로그램을 1회부터 다운받아 차근차근 섭렵하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에도 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즐겨 보는 편이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여행 영상들은 피서용으로도 그만이었다.
‘뭉쳐야 뜬다’는 가이드가 짜준 일정을 따라다니기만 하면 되는 소위 ‘패키지 여행’을 다룬 프로그램이다. TV를 통해 본 패키지 여행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가라는 대로 가고, 보라는 대로 보고, 먹으라는 대로 먹는 여행이란 얼마나 편한가. 내손으로 일일이 일정과 정보를 알아볼 필요가 없으니 시간과 노력도 절약돼서 좋다.
김용만, 김성주 등 출연 연예인들의 바람잡이도 나의 환상에 한몫을 보탰다. “역시 가이드 여행이 좋아”, “가이드가 있으니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는 추임새들. 그것이 사실은 모두 여행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밑밥이었음을 그때 내가 어찌 알았을까.
남편과 나는 둘 다 여행을 좋아해서 일 년에 한번은 꼭 해외여행을 떠난다. 작년에는 일본, 재작년에는 미국과 중국을 다녀왔다. 모두 우리가 직접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하고 현지에서도 우리가 발품을 팔아 정보를 구해서 다니는 일정이었다.
미국‧중국 여행은 2주, 일본 여행은 1주라는 짧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저가 항공과 현지 민박을 이용했기에 비용은 얼마 들지 않았다. 그냥 하던 대로 할 것을. 그놈의 ‘뭉쳐야 뜬다’가 내 맘에 불을 질렀다.
“오호라, 패키지 관광이야말로 괜찮은 여행이 아닐까?”
급기야 지난 달 초, 나의 설득에 넘어온 남편이 인터넷을 검색해 베트남으로 떠나는 패키지 상품을 찾아냈다. ‘날짜 임박 땡처리 특가.’ 1인당 24만 9천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관광하는 3박 5일 여행이었다.
야호, 24만 9천원에 베트남 여행이라니
당시 우리는 새 집으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짐 정리도 다 안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뭉쳐야 뜬다’에서 본 패키지 여행의 매력에 푹 빠진데다, 저렴한 여행 비용에 홀딱 넘어간 나는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난장판이 된 집을 뒤로 하고 하노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하롱베이! 얼마나 가슴이 설렜는지 모른다.
저녁 8시 반에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각으로 밤 12시쯤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함께 여행하는 팀원은 모두 22명. 그 중 두 명은 다른 비행기로 왔는데, 하필 그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나머지 스무 명이 공항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알고 보니 서로 다른 여행사를 통해서 온 세 팀이 함께 움직이는 일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TV에서 본 패키지 여행 팀원은 10여명이 될까 말까했는데, 우리 팀은 왜 22명이나 되는지 잠시 의아하긴 했지만. 가이드 말로는 그나마 지금은 수가 적은 거고, 가이드 한 사람이 40명 가까이 인솔하고 다닐 때도 있다고 했다.
첫날 밤은 바로 호텔로 이동해서 쉬고, 다음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조식 뷔페는 평범했지만, 눈앞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오믈렛과 쌀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쌀국수 담당 이모님이 손짓으로 알려준 대로 넣은 고추와 마늘 토핑은 우리 입맛에 꼭 맞았고, 신선한 라임즙을 아낌없이 짜 넣은 국물은 짜릿했다.
연유를 넣은 베트남 커피까지 한잔 하고, 9시 반에 가이드를 따라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옌뜨 사원을 방문하는 날이다. 우선 하노이 중심가의 호안끼엠 호수로 가서 스트리트 카를 타고 전통시장 거리인 36거리를 관광한 후 옌뜨로 출발했다.
베트남 고승들의 사리탑들이 즐비한 옌뜨 국립공원은 베트남 불교의 성지라고 한다. 하노이와 하롱베이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있어서 하롱베이로 가는 길에 들르는 일정을 짠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을 오른 후, 다시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서 사리탑과 사원을 구경하는 코스다.
공중에 대롱대롱, 케이블카에서 겪은 정전
그런데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마주친 다른 한국 패키지 관광 팀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둡다. 잠시 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르고 또 오르고.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서 도착한 사리탑과 사원의 모습은 그냥 소박했다.
정말 오래된 문화재이고,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성지라는 것은 이해하겠다. 하지만 외국인인 우리가 굳이 그 고생을 해가며 올라가서 봐야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베트남은 9월까지 여름이어서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다. 한낮 기온 섭씨 33~4도. 땀으로 푹 젖어버린 등짝을 말리며 정상에 잠시 앉아있다 내려왔다. 2만동(우리 돈 약 천 원)을 주고 사먹은 베트남 아이스크림이 더위에 지친 몸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정전으로 케이블카가 멈춰 서는 소동이 있었다. 케이블카 안에 갇힌 채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같이 탄 현지인 가이드는 늘 겪는 일이라는 듯 태평하기 짝이 없다. 베트남은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정전이 드문 일이 아닌 듯했다.
심지어 이튿날 아침 하롱베이의 호텔에서는 나 혼자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기도 했다. 방에 두고 온 물건이 생각나서 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오른 순간 뚝, 암전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렸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런 갑작스런 정전이 오래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케이블카도 엘리베이터도 길어야 3,4분 내에 전원을 복구하고 정상 작동했다.
생각해보면 정전은 불과 30여 년 전 한국에서도 흔하게 겪던 일이다. ‘나 어린 시절에 한국에서도 가끔 전기가 나가서 밤에 촛불을 켜곤 했다’는 얘기를 현지인 가이드와 나누면서 산을 내려왔다.
친절하고 성실한 가이드가 사기꾼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자유여행을 왔더라면 굳이 시간과 돈을 써가며 옌뜨에 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저 패키지 관광의 특성상 3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관광지 한 군데를 더 넣기 위해 옌뜨가 적당했을 뿐. 옌뜨 사원이 딱 하노이와 하롱베이의 중간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패키지로서는 되도록 가까운 거리 안에서 모든 일정을 해결하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잠시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패키지가 그토록 시간에 쫓겨 다녀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관광지 방문도 바쁜 일정이지만, 사실 가이드에게 더 중요한 것은 사흘 동안 4~5 군데 이상 들러야 하는 쇼핑센터 방문이었다. 일정표 상에 하루 종일 하는 것으로 잡혀 있었던 옌뜨 광관은 겨우 한 시간 안에 끝났다.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이동에 네 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을 감안해도 너무 빈약한 일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저녁식사 후 족제비똥 커피라는 위즐 커피 판매점에서 한 시간 이상을 보냈다. 옌뜨에서 보낸 시간만큼을 커피 쇼핑에 쓴 것이다.
한국인 사장의 열정적인 커피 강의(?) 후 5+3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홀려 일행 중 몇 사람이 위즐 커피를 구매했다. 그리고 이틀 뒤 출국하는 공항에서 우리는 그것이 시중보다 약 네 배 비싼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항 가격 기준이니 시내의 가게에서는 더 저렴했을 것이다.)
너무도 친절하고 성실하고 말 잘 하는 가이드가 사기꾼으로 보이기 시작한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이드는 하롱베이로 이동하는 도중 파인애플 농장에 들러 푸짐한 열대과일을 맛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농장에 내려 자리에 앉자마자 패키지에 필수로 따라붙는다는 소위 ‘선택 관광’ 일정표를 들이밀었다.
분명히 ‘선택’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던 선택 관광은 사실상 ‘선택’이 아니었다. 하롱베이의 나룻배 추가 관광, 선상에서의 해산물 식사, 하롱파크, 전신마사지, 뷔페 레스토랑, 야간 시클로 투어 등 가이드가 짜놓은 선택 관광 전체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반 강제적인 강요였다. 가이드는 “한 분이라도 빠지면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긴다”며 읍소했다.
‘선택‘할 수 없는 선택관광, 바가지 씌우는 쇼핑센터
우리가 망설이자 가이드는 밤에 방까지 찾아와서 관광 참여를 종용했다. 우리만 빠지면 다른 분들이 불편해한다고 했다. 사흘간의 여행에 원만하게 함께하기 위해서는 피할 도리가 없어 보였다. 결국 ‘전체를 위해’ 우리는 1인당 230불짜리 선택 관광 일정표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첫날 도착하자마자 걷은 가이드 팁 50불에 선택 관광 230불까지 1인당 총 280불의 추가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여행비용은 처음에 한국에서 결제했던 24만 9천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흘 동안 가이드는 총 네 군데의 쇼핑센터로 우리를 끌고 다녔다. 위즐 커피, 노니, 라텍스, 이런저런 잡화를 파는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이것도 그나마 히노끼 샵 한 군데를 뺀 것이란다. 모두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밀폐된 공간에 모아 앉혀놓고 한 시간 이상씩 구매를 종용해대니 안 살 도리가 있나. 우리 부부는 끝까지 아무것도 사지 않았지만, 가는 곳마다 몇몇 사람들이 물건을 샀다. 물건을 구매해줘야 가이드에게도 수익이 돌아간다는 것 정도는 물론 우리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뭘 좀 사주고 싶어도 시중가보다 너무 비싸서 도저히 그 값을 주고 살 수가 없었다.
심지어 노니 가루는 베트남 현지 가격보다 스무 배 이상 비쌌다. 속는다는 것을 모르는 몇몇 노인들만 물건을 샀다. 그렇다고 가이드가 보는 앞에서 그분들에게 “바가지가 심하니 사지 말라”고 얘기해줄 수도 없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하롱베이에 있는 호텔에서 묵었다. 하롱베이 크루즈 여객선 터미널이 있는 뚜언쩌우(Tuan Chau) 섬의 모닝스타 호텔. 푸르른 오션뷰가 펼쳐지는 객실과 8층 조식당은 좋았지만, 시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변에 볼 것이 하나도 없었다. 밤에 짧게라도 거리 구경을 나가고 싶었던 우리는 이 점이 너무도 아쉬웠다.
이튿날은 베트남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하롱베이 관광을 나섰다. 이날도 역시 조식으로 쌀국수를 한 사발 먹고 여객선 터미널로 가서 배에 올랐다. 말로만 듣던 하롱베이. TV에서나 보던 하롱베이. 내가 상상했던 울창한 기암괴석 숲(?)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다.
우리 팀 22명을 태운 여객선은 하늘의 용이 내려와 만들어졌다는 3천 개의 섬 사이를 천천히 누비고 나아갔다. 때마침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서 전날만 해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었지만, 하늘이 도왔는지 이날만큼은 날씨가 화창했다.
태풍 직전 딱 하루, 하늘이 내린 날씨의 하롱베이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가 하롱베이를 관광한 바로 다음날, 태풍 때문에 모든 여객선 출항이 금지되었다. 우리가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 위로 솟아오른 갖가지 기암괴석들. 지상의 풍경이 아닌 듯한 모습에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베트남 20만동 지폐 뒷면에 등장하는 유명한 향로섬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고,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키스 바위로 더 유명하다는 닭싸움 바위도 구경했다. 닭싸움 바위는 배가 도는 방향에 따라 힘차게 유영하는 잉어로도 보였다. 자연의 놀라운 아름다움 앞에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었다.
나룻배 선착장에서 배를 갈아타고 원숭이섬으로 알려진 항루언으로 들어갔다. 가슴에 젖먹이 새끼를 매달고 바나나를 받아먹는 원숭이도 구경거리였지만, 단 하나의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사방이 높게 둘러싸여 완전히 막힌 공간이 바다 한복판에 있다는 것 자체가 더욱 신기했다. 이곳이 007 등 영화 촬영지로 이름난 이유를 알만했다.
모터보트로 갈아타고 즐긴 아슬아슬한 쾌속 질주와 석회 동굴 투어까지 마치고 다시 원래 탔던 배로 돌아왔다. 싱싱한 회와 온갖 해산물 요리가 차려진 그럴싸한 점심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도미찜, 새우튀김, 키조개 구이, 꽃게찜, 갑오징어 숙회, 낙지볶음 등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미각을 자극했다. 화려한 선상식을 즐기며 처음 출발했던 뚜언쩌우 섬의 터미널로 돌아왔다.
오후에는 마사지숍에 들러 단체 마사지를 받고, 베트남 전통의 수상인형극을 보러 갔다. 1년에 4모작까지도 가능한 베트남은 논농사의 나라다. 도시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어디서나 푸르른 모가 자라는 논을 볼 수 있다. 천 년 전통의 베트남 수상인형극은 수확이 끝난 논에서 벌이던 마을 축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천 년 전통의 수상인형극, 기네스북에 오른 케이블카
키가 1미터 정도 되는 목제 인형에 방수를 위한 옻칠을 하고, 아래에 긴 나무 장대를 달아 뒤에서 사람이 잡고 조종한다. 인형도 사람도 물에 몸을 잠그고 공연하는데, 인형을 조종하는 특별한 기술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다고 한다. 가운데 무대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이, 오른쪽에는 베트남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이 자리했다.
30분 남짓한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천생 광대라고 해야 할까. 연기와 노래가 뛰어난 배우들은 인형의 움직임에 맞춰 농사와 어업, 아이들의 물장구 등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유려한 노래로 풀어냈다. 이에 맞춰 연주하는 악단의 반주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베트남 수상인형극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사전조사를 조금 해간 것도 관람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저녁에는 동남아 최대의 테마파크라는 하롱파크에서 케이블카와 대관람차를 탔다. 하롱파크 케이블카는 세계 최대의 수용인원과 세계에서 제일 높은 케이블카 기둥, 두 가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단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하롱파크와 항구 도시의 야경은 참 아름다웠다.
그날 저녁은 한식당에서 삼겹살로 저녁을 먹고 하롱베이 야시장 구경을 갔다. 그런데 이 야시장이란 것이 창고 같은 건물 안에 조잡한 상품점 수십 개가 입점해 오직 관광객만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었다. 시장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너무 작고, 지역 사람들의 삶이나 문화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급조된 곳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푹 고아낸 장국을 기대했는데, 막상 테이블에는 플라스틱 모형 음식이 올라온 상황이라고나 할까. 패키지 관광이란 이런 것이구나,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호텔로 향했다. 가면서 내내 생각했다. 저 섬 너머 하롱베이 시내의 밤거리 풍경은 어떨까. 만약 쇼핑센터를 가지 않았다면 그 시간에 뭘 할 수 있었을까.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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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경_ 대학 졸업 후 인터넷 신문 ‘민중의소리’ 기자로 일했다. 남보다 조금 더 잘하고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이 글쓰기여서, 아무래도 이것이 평생의 업이 되지 싶다.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안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이 있다.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는 선구자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