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섭 (정의당 대표비서실 차장, 지역시스템공학 03)
2년 만에 베를린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2년 전에는 독일 사회를 훑어보는 수준의 여행이었다면, 이번에는 독일 사회의 내면을 좀 더 깊이 보기 위해 갔습니다. 그래서 일정도 독일 연방의회 선거가 있는 시기에 맞춰서 잡았습니다. 독일 금속노조와 독일노총 관계자를 만나 독일 노사관계에 대해 세미나를 했고, 청년기민당, 좌파당, 녹색당을 방문해 선거에 대해 들었습니다.
또 베를린 자유대와 예나대학교의 연구자들을 만나 독일 사회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와 관련된 글은 앞으로 <프레시안>, <디퍼>, <레디앙> 등 언론을 통해 다른 분들이 써주실 것입니다. 저는 제가 느낀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세계시민’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위키백과는 ‘세계시민의식’이란 “지구공동체의 일원이 됨에 따라 생기는 권리, 책임감, 의무”라고 정의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그들의 고민과 우리의 고민이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독일 금속노조와 독일노총은 산업재편과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른 노조 조직율 하락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노동조합들도 IMF 이후 수십 년째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또 세계적으로 선진 정치의 모델과도 같은 독일의 정당들도 당원 감소와 극우파의 득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이 역시 한국에서도 촛불시민혁명 전까지 모든 정당들이 고민하던 것입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요.
특히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라는 극우파의 연방의회 진출과 관련해서 제가 만난 모든 분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치의 경험으로 인해 극우파만은 안 된다는 독일의 예외주의가 깨졌다고 판단하시더라고요. 오히려 극우파와 전쟁광들을 쉼 없이 경험해온 우리보다 더 우려가 컸습니다.
이렇게 독일의 시민과 한국의 시민인 저의 고민이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귀국 후 지금까지 역사책을 붙들고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가 동시대인으로서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역사 속의 사람들은 우리와 종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문명이 새로 생겨날 때의 그 고민조차 우리가 안고 사는 것을 봅니다.
기원전 24세기에 쓰여졌다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뒤를 이은 호메로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이야기부터,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로 시작되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가, 좋은 공동체란 무엇인가, 하는 현대의 고민이 전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곤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의 ‘펠로폰네소스 전몰자 추도사’와 1863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을, 그리고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위 농민 사망 관련 대통령 대국민 사과문’까지 읽다 보면, 정치 리더들이 희생자와 공동체를 대하는 방식에 이다지도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목표가 몇 가지 더 생겼습니다. 우선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러시아를 가봐야겠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가능하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사회주의라고 하는 사상과 1917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사건은 인류의 역사에 큰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아무리 소련에 대한 평가가 야박한 사람이라도 이 혁명이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세계시민들에게 큰 영감을 준 사건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지난 글에서 올해의 목표에 대해 얘기하면서 영어 공부가 제 목표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를 좀 더 밀어붙여 볼 생각입니다. 세계시민이 되려면 언어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왔기 때문입니다. 이건 이미 목표였고, 추가된 목표는 바로 악기입니다. 악기 역시 훌륭한 언어라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하고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음악으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에 2003년 입학 선물로 받은 낡은 기타를 다시 꺼냈습니다. 들풀 패방에서 열심히 익혀놓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손가락이 예전 같지 않지만 다시 몸에 새겨졌던 기억을 되살려 보겠습니다. 세계시민의 길을 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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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섭 _ 재학 시절인 2006년 농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진보정치에 뛰어들어 진보신당(현 노동당) 서울시당 조직국장, 노동당 대변인실 언론국장을 역임하고 2016년 1월부터 정의당으로 옮겨 현재 대표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다. (no1enem2@gmail.com)
Last modified: 2024-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