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사회복무요원, 임산공학과 08)
#13.
겨울이 되어 텃밭 관리마저 끝났다. 이제 별다른 업무 없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봄을 맞이하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가만히 둘 리는 없었다. 새로운 업무가 생겼다. 내가 근무하는 봉천15지구가 도시재생 희망지 사업을 시작했고, 현장 상황실이 내 옆방에 꾸려졌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었다.
사업 시작부터 그간 쌓여온 주민간의 갈등이 폭발했다. 오리엔테이션을 겸해서 열린 주민설명회에서는 당연히 고성과 폭언이 오갔고, 드잡이가 벌어졌다. 드잡이를 말리는 역할은 직원이 아닌 사회복무요원에게 주어진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이후로도 종종 들르는 주민들은 꼭 고성으로 격론을 이어간다. 어쩌다 이렇게 갈등의 골이 깊어졌을까?
2005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민노당과 민주당의 협조 속에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당시는 박근혜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이 사학법 개정안 통과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시점이었다. 그런 파행 속에서도 뉴타운법은 통과되었다. 2008년 총선에서 이득을 본 이들은 반대편이었다. 뉴타운 공약을 내건 한나라당 후보들이 수도권에서 대거 당선되었다. 개국 이래로 늘 야당의 표밭이었던 서울/수도권을 개발광풍으로 뚫어냈다.
뉴타운에 더해 각 지자체별 재개발, 재건축 지구 지정이 이어졌다. 집주인, 땅 주인들에겐 밝고 희망찬 미래만 보였나 보다. 지금 당장 가진 것은 없어도, 나도 언젠간 불패신화의 부동산으로 한몫 잡아보겠다는 욕망의 개미들도 들러붙어 표를 줬을 것이다. 당연히 그 많던 뉴타운은 대부분 함께 망했다. 개발독재 시절의 행정독선 개발은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옷이었던 걸까. 아니면, 만연해진 뉴타운 지정으로 줄어든 희소성이 부동산 개발로 얻을 부가가치를 줄여버린 걸까. 여하튼 장밋빛 미래는 오지 않았다.
뉴타운과 같은 대규모 재개발 사업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한다. 애초에 재개발을 해야 할 정도로 노후화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재개발 이후 지어지는 아파트에 입주할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패의 부동산 신화가 그 갈등을 잠재웠을 것이다. 성장기에는 불만이 드러나지 않는 법이니까. 저 성장의 과실이 지금의 불편함을 상쇄시켜 줄 거라는 희망이 있으니까.
하지만 2008년 말 불어 닥친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가 모든 것을 망쳤다. 노무현 정부 내내 미쳐 날뛰던 부동산 경기에 찬물이 끼얹어졌다. 뉴타운 사업이 하나 둘 취소되기 시작했다. 재개발 지구 지정도 하나 둘 해제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간 억눌러온 갈등이 표면에 스멀스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명박 시장이 싸고 노무현 대통령이 받아 한나라당과 오세훈 시장이 키운 뉴타운 똥이 드디어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박원순 시장이 처음으로 한 일이 은평 뉴타운에 호흡기를 달아주는 것이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을 거다. 누군가는, 언젠가는 똥을 치워야 한다.
재개발 해제지구의 주민은 드러난 갈등에 신음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 2기는 갈등 해소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도시재생 사업이 대표적이다. 행정주도의 대규모 개발에서 탈피하여 주민주도의 소규모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 개발 자체보다, 갈등 중인 문제를 분석해서 관계를 봉합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한다.
제일 목소리를 많이 내는 동네의 공인중개사들은 다시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숙덕댄다. 주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꾸미는 그들의 속내에는 당연히 자신들의 이익이 숨어있다. 주택보단 아파트에서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수료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와중에 세 건물이 모여 마음을 맞춘 사례가 등장했다. 자투리 땅까지 활용하여 공동 쓰레기장과 주차장을 마련하고 몇 층 더 올려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란다. 해제 전 재개발 조합장이 찾아와 그들을 말렸다. 그들은 며칠 간이나 싸우고 있다. 시에서는 갈등관리자라는 직책의 직원을 파견했다. 종료까지 6개월 남은 이 사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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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 자연반 강사이며 현재는 관악구 청림동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