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5:25 오후 111호(2018.01)

[제주에서 온 편지]
‘도새기’ 이야기

홍성철(제주 농업기술원 농촌지도사, 농화학 89)

도새기. 돼지를 부르는 제주도 말입니다. 제주 돼지는 삼다수를 먹고 자란다고 합니다. 삼다수도 지하수를 뽑아 올려 생산하고, 돼지가 먹는 물도 지하수니 말이죠. 확실히 제주 지하수는 맛이 다르지요. 그래서 제주산 돼지고기가 맛이 있는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축산지식이 없어서. 사료는 제주나 육지나 똑같습니다. 공기가 다르고 물이 달라서 맛이 다른 것인지 어쨌든 제주 돼지고기가 맛이 있습니다. 삼겹살을 구워먹든지 삶아서 수육으로 먹든지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특히 지방 부위 맛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살코기만 먹을 때는 퍽퍽하지만 지방이 포함된 고기를 먹으면 맛이 죽이지요. 우리 둘째 놈이 고기를 먹을 때 살코기는 젓가락을 잘 대지 않습니다. 대신 지방이 있는 부위를 엄청 좋아합니다. 피는 못 속이는 건지 우리 아버지도 돼지고기 지방을 엄청 좋아하시거든요. 돼지고기 지방을 잘 먹는 사람을 고기 먹을 줄 안다고 하지요.

지금은 돼지고기가 흔해서 자주 먹지만 옛날에는 참 귀했습니다. 명절 때나 결혼잔치 또는 장례를 치를 때가 아니면 구경하기가 힘들었지요. 제주 풍습은 독특합니다. 경조사가 있을 때 돼지는 잔치 이틀 전에 준비합니다. 이 날을 ‘도새기(돼지) 잡는 날’이라고 했지요. 그 다음날은 떡도 만들고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 날은 ‘떡 만드는 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주에서 결혼식을 하면 보통 3일간 잔치를 했습니다. 돼지 잡는 날이 되면 동네에서 돼지 서너 마리가 희생이 됩니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도축하는데 그 날은 아이들도 신이 납니다.

도축을 하면 간은 즉석에서 어른들이 왕소금에 찍어 소주와 함께 먹고, 아이들도 고기를 먹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정작 기다리는 것은 돼지 오줌보였습니다. 오줌보를 던져주면 보리막대로 공기를 불어넣어 축구공으로 사용했습니다. 축구공을 구경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오줌보 축구공이 터질 때까지 공을 차며 놀았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엔 집집마다 돼지를 키웠습니다. 털이 검은 흑돼지이지요. 당시에는 똥도새기라고 불렀는데 제주 돼지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지요. 돼지우리를 제주말로 ‘통지’ 또는 ‘통시’라고 불렀습니다. 그때는 화장실 역할도 겸했습니다. 큰일을 보러 ‘통지’에 가면 돼지가 달려 나옵니다. 어릴 때는 돼지가 무서워 화장실 가기가 두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돼지우리에는 긴 막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막대로 돼지를 쫒아내고 일을 보면 돼지가 와서 먹곤 했습니다. 돼지는 집안 경제에도 큰 역할을 했죠. 돼지 새끼를 키워서 오일장에 내다팔아 살림에 보탰으니까요. 돼지를 그물망에 넣어서 버스에 싣고 장에 가는데 이때마다 버스 차장(조수)과 실랑이를 했습니다. 돼지가 버스에 실례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차장은 못 싣게 하고 어머니는 꼭 실어달라고 애원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돼지는 농사짓는 데도 한 몫을 했습니다. 돼지우리에 보릿짚을 넣어주는데 돼지가 그 위에서 볼일을 보면 돼지거름이 되지요. 매년 봄이면 돼지우리에서 거름을 퍼냈습니다. 그 양이 상당해서 비료가 귀했던 시절 농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똥돼지가 80년대 중반에 많이 사라졌습니다. 1984년에 제주에서 처음으로 전국소년체전이 열렸는데, 육지 손님을 맞으면서 변소개량사업이 한창 벌어졌거든요. 통지가 사라지면서 똥돼지도 자취를 많이 감추었고, 지금은 민속촌에 가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대규모 양돈 축사에서 돼지를 키우고 있습니다. 제주 돼지가 워낙 유명세를 타다 보니 제주에는 양돈 농가가 많습니다. 소득도 상당히 좋지요. 그래서 양돈 축사마다 외국인 근로자를 서너 명 정도 고용해서 관리합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제주 양돈 농가들이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돼지를 키우며 발생하는 분뇨를 처리하는 문제 때문이죠. 환경보호 인식이 적었던 80년대에는 오수를 땅속으로 그냥 흘려보냈습니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물이 쉽게 빠지는데 특히 ‘숨골’이라는 지형이 있어 비가 오면 하수구 역할을 합니다. 숨골로 빠진 물은 지하수가 되죠. 과거에는 이 숨골을 통해 돼지 분뇨를 흘려보냈습니다. 분뇨 처리시설이 의무화된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지요. 분뇨 처리에 비용이 많이 소요되어 2년 전까지만 해도 축산분뇨를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해양투기가 금지된 후, 작년에 몇몇 농가들이 처리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땅으로 그냥 흘려보냈다 발각되어 제주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해당 농장주들이 구속되고 양돈 농가들이 도민에게 사과하는 등 큰 이슈가 되었고, 이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양돈이 농가에 큰 소득이 되고 있지만 양돈단지가 위치한 마을 주민들은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축산분뇨 냄새가 심해서 생활을 하기가 힘들뿐더러 관광 사업은 물론 인근 땅값도 큰 영향을 받고 있죠. 냄새를 줄이기 위해 우리 사무실에서 미생물을 만들어 양돈농가에 보급하고 있지만 아직 큰 효과가 없는 형편입니다. 하루빨리 축산분뇨로 인한 문제가 해결되어 청정한 제주 돼지고기가 온 국민이 즐겨 찾는 제주특산물로 남기를 기원해 봅니다.

필자 소개

홍성철_제주토박이며 2004년에 제주로 돌아와 농업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제주를 찾아 주시는 분들과 술 한 잔 하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제주로 오시면 연락하세요. 맛있는 흑돼지 삼겹살과 소주 한 잔 하게요.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