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5:22 오후 111호(2018.01)

[나의 베트남 여행기]
폭우 속 씨클로 타기, 돈을 냈으니까
가이드 노동착취, 베트남에서 본 패키지 여행의 쓴맛 ②

임은경 (편집주간, 농학 95)

다음 날은 다시 하노이로 복귀하는 날이다. 저녁에 하노이 공항에서 귀국 행 비행기를 타는 날이기도 하다. 일찌감치 호텔을 나서 하노이로 올라가는 길. 이날도 어김없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ABC(아베쎄) 휴게소에 들렀다. 그것도 무려 한 시간씩이나. 휴게소까지 가는 내내 가이드는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불행한 과거사를 한 시간 가까이 늘어놓았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유려하게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마치 신앙 간증 같기도 했다. 똑같은 레퍼토리를 수백 번도 넘게 연습한 것처럼 들렸다.

장시간에 걸친 이야기의 끝은 이번 휴게소에서 파는 키플링 가방과 노니 비누, 참깨, 게르마늄 팔찌 등에 대한 상세한 소개로 마무리되었다. 그의 애잔한 인간사에 마음이 흔들린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제법 지갑들을 열었다. 휴게소에서 파는 물건 값은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약간 저렴한 정도였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그 값에 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보였다. 현지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른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키플링 가방은 하노이 시내의 쇼핑센터보다 다섯 배 비싼 것이었고 참깨 역시 마찬가지였다. 휴게소에서 1kg에 17달러라던 참깨를 우리는 하노이의 슈퍼마켓에서 약 4분의 1 값인 10만동(우리 돈 약 5천원)에 구매했다. 휴게소 다음은 노니 판매점이었다. 역시 한국인 사장이 나와서 한 시간 동안 노니의 효능에 대한 강의를 해댔다. 한 통에 500불짜리를 무려 200불에 주겠다는 말에 여러 사람이 또 노니 가루를 구입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것은 베트남 현지보다 약 스무 배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인터넷 검색만 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바딘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 저 멀리 호치민의 시신을 안치한 호치민 묘소가 보인다.

베트남 현지보다 스무 배 비싼 노니

점심은 쌀국수였지만 역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패키지 여행팀 전문 식당이었다. 생각해보면 2~30명 이상의 단체가 기다리지 않고 신속히 식사를 하고 나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들어가면 테이블에는 이미 기본 반찬들이 세팅되어 있고, 자리에 앉자마자 줄줄이 음식이 나왔다. 메뉴 선택권 같은 것은 물론 없다. 그래도 음식의 질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한국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 베트남 음식을 먹어도 한국 음식 같은 맛이 나는 것이 단점이었다. 향이 강한 고수나 라임 같은 토핑은 아예 없고, 한국 사람이 먹기 편한 양상추 같은 채소만 곁들여 나왔다. 매 끼니 밥이나 김치, 찌개 등 한국 음식도 꼭 따라 나왔다.

컨베이어 벨트 위 물건들처럼 줄줄이 앉아서 점심을 마치고 하노이에 도착했다. 드디어 이날의 관광 일정 시작. 호치민이 독립선언을 한 것으로 유명한 바딘광장과 호치민 묘, 호치민이 근무했던 주석궁과 천년 고찰인 일주사 등을 둘러보았다. 마침 소나기가 쏟아져 가이드가 사다 준 파란 일회용 비옷을 입고 경내를 걸었다. 기념품으로 받은 베트남 전통모자 농까지 머리에 쓰니 우산이 필요 없었다.

관광 후 일정은 또 다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라텍스 숍. 가이드가 무려 47%라는 할인율을 보장하기에 7.5센티 두께 퀸 사이즈 매트의 가격을 물어보았다. 매장 직원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백만 원이라고 답했다.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도 이미 가격은 정해져 있었으리라. 나는 똑같은 것을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서 20만 원에 샀는데. 결국 마지막 쇼핑센터까지 빈손으로 나오고 나니 가이드 보기가 민망했다. 저녁 식당으로 가는 버스 안에는 어색한 침묵만 맴돌았다.

저녁은 선택 관광에 포함된 센(Sen) 레스토랑에서 뷔페식으로 먹었다. 센(sen)은 베트남어로 연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연 식당 이곳저곳에 연꽃이 핀 연못들이 있었다. 조명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분수가 밤의 정취를 더해주었다. 식사 후 일정은 씨클로 타기+야간 시티투어. 하지만 이는 잘 진행되지 않았다. 이날 하루 종일 하노이에 내린 비는 밤이 되자 거의 폭우로 변했다. 그래도 우리는 씨클로를 타야만 했다. 왜냐? 선택 관광 명목으로 여기에 50불을 지불했으니까. 이걸 하지 않으면 가이드는 돈을 환불해 주어야만 하니까.

베트남 국보 1호 일주사(한기둥사원). 1049년 리 왕조의 창건자인 리따이똥( Ly Thai Tong)왕이 세웠다고 한다.

폭우가 내려도 씨클로는 타야 한다, 돈을 냈으니까

자전거 앞에 달린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의자 위에 비닐을 둘러치고 우리는 씨클로에 올랐다. 두 사람이 함께 타자 허리가 아플 정도로 자리가 비좁았다. 비닐 포장 사이로 비가 새어 들어와 금세 발이 젖었다. 스물두 명을 태운 씨클로 행렬이 비를 쫄딱 맞으며 느릿느릿 거리로 나섰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가던 베트남 아주머니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우리 꼴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이드가 우리를 이끌고 진행하겠다던 야간 시티투어는 시간관계상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비 때문에 도로가 막혀서 이미 일정이 많이 지체된 상태였다. 선택 관광비는 환불해주지 않았다. 씨클로 투어의 종착지인 성요셉성당 앞 콩카페(Cong Caphe)에서 유명하다는 코코넛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 자정 비행기를 타기 위해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그래도 우리 팀을 담당했던 가이드는 끝까지 자신의 업무에 성실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자 버스를 대기 힘든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카페 앞까지 버스를 불러왔고, 공항 앞에서도 노인 분들의 짐을 일일이 챙겨주었다.

하롱베이의 유람선 안에서는 9월에 생일을 맞은 사람들을 위해 케이크를 준비해 촛불을 붙이고 선물까지 전달했다. 그의 과도한 친절 하나하나가 선택 관광과 물건 구매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받으면서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폭우 때문에 비행기 시간이 연기되지 않을까 마음 졸이기도 했지만, 다행히 비행기는 제 시간에 출발했다. 좌석에 앉아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사흘간의 강행군에서 오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였다.

따지고 보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볼 것은 다 봤다. 현지 사정에 빠삭한 가이드만 졸졸 따라다니면 되었고, 우리를 위해 상시 대기한 버스를 타고 포인트만 콕콕 집어 돌아다녔으니까. 하지만 두 번 다시 이런 식의 여행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현지의 문물 속으로 들어가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그들의 삶과 일상을 체험하고 느껴보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한국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오로지 인증샷을 찍기 위해 유명 관광지만 전력질주 식으로 찾아다니는 것이 무슨 여행인가. 그것은 ‘나도 여기 다녀왔다’하고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쇼일 뿐이다.

석회암 지대인 하롱베이의 섬들은 침식으로 인해 곳곳에 커다란 구멍이 난 곳이 많다. 저 구멍이 깊어지면 석회암 동굴이 만들어진다.

싼값에 해외여행자본이 부추긴 탐욕에 뒤통수 맞다

영어도 되지 않고 혼자 나설 용기도 없어서 도저히 자기 스스로 돌아다닐 수 없는 이들이나 늙고 기력 없는 노인들이 그래도 꼭 해외여행을 가보고 싶다면, 패키지 여행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고 체력과 용기가 되는 보통 사람이 진정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면 패키지 관광은 답이 아니다. 조금 귀찮더라도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조금 고생이 되더라도 자신의 두발로 걸어 다녀야 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힘들여 어딘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흘린 땀,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발견한 맘에 쏙 드는 집밥, 때로는 길을 잃거나 예기치 못한 고생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 문이 꽝꽝 닫힌 호텔이 아니라 조금 불편하게 부대끼는 민박집에서 사귀게 된 외국인 친구들, 그것이 진짜 여행이기 때문이다.

언뜻 계산해 보니 우리 부부가 3일간의 패키지 여행에 쓴 돈이면 베트남에서 한 달 동안 머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가 항공과 저렴한 숙소를 이용하고 큰 낭비 없이 알뜰하게 다닌다면 말이다. 현지에서 알아볼 경우 하노이에서 하롱베이까지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관광 상품은 50달러부터 있었다. 차량, 가이드비, 점심식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쌀국수 등을 실컷 사먹고 다녀도 한 끼 식사에 2천원 남짓이면 충분하고, 깨끗하면서도 하룻밤에 1만 원대로 저렴한 숙소도 얼마든지 있었다.

강요에 가까운 선택 관광과 쇼핑센터 방문도 불편했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여행이 주는 홀가분한 자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물건이었고, 가이드에게는 재빨리 통으로 처리해내야 하는 업무의 대상일 뿐이었다. 단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무척 편리했지만, 사흘 내내 약장수 버스를 탄 기분이었다.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거나 이국의 정취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이드는 잠시도 쉬지 않고 마이크를 잡고 떠들었다. 베트남의 역사와 문물을 설명해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쇼핑센터에서 판매하는 물건에 대한 홍보와 ‘부디 돈을 써주십사’ 하는 읍소였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이 가이드가 사기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이런 패키지 관광의 이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난 7월에 보도된 ‘오마이뉴스’ 기사를 찾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투어’라는 이름의 한국 여행사들은 사실은 비행기 티켓 판매 대행업체나 다름없단다. 우리가 처음에 구매하는 여행상품이 그렇게 쌀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숙박, 식사, 차량, 관광지 입장료 등 현지에서의 비용(그것을 ‘지상비’라고 한단다)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노이 성요셉성당 앞 콩 카페(Cong Caphe)의 명물 코코넛 커피. 연유 대신 코코넛 밀크 슬러시를 듬뿍 넣어 아이스크림처럼 달고 시원했다.

손해 떠안고 손님 받은 다음 메꾸기‘, 혹독한 가이드 노동

우리가 현지에서 만나는 가이드들은 심지어 **투어 소속도 아니다. 그들은 현지 여행사(이들을 ‘랜드사’라고 부른다)에 소속되어 있다. 한국 여행사들이 비행기 티켓만 끊어서 손님을 보내면, 이들은 손해를 감수하고 손님들을 받는다. 그 다음 ‘메꾸기’가 시작된다. ‘메꾸기’란 어떻게든 손님들이 선택 관광이나 쇼핑센터 구매를 하도록 유도해서 처음에 떠안았던 손실을 만회하는 것이다. 한국의 **투어에서는 선택 관광이나 쇼핑센터는 말 그대로 선택 사항일 뿐이라며 ‘대박 특가’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하지만 사실은 손님이 선택 관광이나 쇼핑을 하지 않으면 가이드들은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제야 비로소 여행 기간 동안 보여준 가이드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그의 가혹한 노동 조건이 그제야 너무 안쓰러웠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이러니 가이드는 어떻게든 손님이 돈을 쓰게 하기 위해 온갖 알랑방귀를 뀌어야 하고, 바가지 씌우기는 기본이고 때로는 거짓말까지 불사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결제한 금액이 싸든 비싸든 지상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란다. 값이 비싼 여행 상품은 성수기라서 비행기 티켓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소위 ‘노 팁, 노 옵션’을 내거는 좀 더 고급 상품도 기본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패키지 관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옵션은 딱 둘 중 하나다. 끝까지 짠돌이, 짠순이로 남아 여행사의 악랄한 가이드 착취에 편승하거나, 가이드의 뜻대로 훨훨 지갑을 열어 ‘호갱님’이 되는 것.

그동안 여행은 내게 어떤 식으로든 삶에 대한 통찰과 깨달음을 주곤 했다. 돌아보니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도 얻은 것이 없지는 않다. 우리 주변에서 누구나 쉽게 떠나곤 하는 패키지 여행의 실상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게 된 것.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상당 부분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으리라는 것.

앞으로는 패키지 관광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즉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막장드라마인 줄은 몰랐다. 패키지 해외여행은 명백한 자본의 노동 착취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이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비슷비슷한 모순의 한 단면일 뿐일 것이다. 자본만 욕할 것이 아니다. 애초에 값싼 패키지 여행상품을 결제한 우리 모두가 사실은 대기업 여행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심보로 출발했다. 내 돈은 적게 들이고 이익은 많이 보겠다는 탐욕 말이다.

1+1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혹해 지갑이 줄줄 새는 줄도 모르고 틈만 나면 대형마트로 달려가는 모습과 뭐가 다른가.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나도 부득이하게 대형마트에 갈 때가 있다. 그곳의 주차장 입구로 개미처럼 빨려 들어가는 차들을 보면 나는 늘 먼지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진공청소기가 떠오른다.

나와 남편은 앞으로도 종종 해외여행을 나갈 것이다. 여행이 주는 기쁨은 우리 삶의 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 일이 없는 한, 앞으로는 패키지 관광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내 두 발로 걷고, 내 노력을 들여 찾아보는 여행을 다닐 것이다. 때론 행복하고 때론 괴로운 여행의 달고 짠 시간들을 모두 천천히 맛보는 그런 여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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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경_ 대학 졸업 후 인터넷 신문 ‘민중의소리’ 기자로 일했다. 남보다 조금 더 잘하고 가장 즐겁게 하는 일이 글쓰기여서, 아무래도 이것이 평생의 업이 되지 싶다.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안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이 있다. 김상진기념사업회에서는 선구자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