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승용(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농화학 87)
이슈가 이슈라 그런 건지, 지역사회는 원래 그런 건지, 나주시가 하나의 이슈로 매우 시끄럽다. 노무현 정권 시절 수도권을 제외한 각 광역자치단체별로 1개의 혁신도시를 조성하는 지역 균형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광주와 전남은 각각 2개를 조성할 수 있는 혁신도시를 통합해서 나주에 설립하기로 했다.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나주시 빛가람동, 빛가람 혁신도시다. 이전(移轉) 대상 기관 중 가장 매력적이라는 한전과 그 계열사가 이전을 했다. 이전 직원 수가 6천명이 넘고 총 거주 인구 5만 명을 목적으로 하는 신도시를 계획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도시이고, 아파트만 2만 세대가 넘으니 당연히 열병합발전소가 들어섰다. 발전소를 가동하면 뜨거워진 냉각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 냉각수를 버리지 않고 아파트나 산업단지에 온수를 공급해서 효율을 높이자는 게 열병합발전소다. 신도시를 조성하면 으레 열병합발전소를 함께 건설한다. 여기에 쓰레기 처리 문제가 결합한다. 사람이 모여 살면 쓰레기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매립할 곳도 마땅치 않고 바다에 버릴 수도 없으니 태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분리수거하는 것 중 재활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이것들을 모아서 연료로 사용한다. 그것이 정부 용어로 고형재활용연료, 영어 원문을 그대로 해석하면 고형쓰레기연료(Solid Refuse Fuel, SRF)다.
열병합발전소에서 SRF를 사용하면 발전도 하고, 온수도 활용하고, 쓰레기도 소각하고 1석 3조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 기조다. 서울에 운영 중인 열병합발전소에서도 SRF를 사용하고, 선진국에서도 열병합발전소에서 SRF를 사용한다고 하니 특별히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데, 그 간단하지 않은 문제로 나주시가 뜨겁다.
SRF가 수면위로 떠오른 시점은 지난해 11월경이다. 그전까지 SRF가 뭔지도 몰랐으니. 어느 날 빛가람동 거리가 현수막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광주 쓰레기를 나주에서 처리할 수 없다’, ‘열병합발전소 가동을 중지하라’, ‘빛가람동에서 SRF 소각 결정을 무효화해라’ 등등. 12월 초 열병합발전소 정상 가동을 앞두고 지역난방공사에서 SRF를 소각하는 시험 가동을 계기로 문제가 촉발된 것이다. 초기에는 나주시 이장협의회가 입장을 발표하고, 나주시청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양상이었다.
열병합발전소에서 하루에 400톤가량의 SRF를 소각할 수 있도록 설비를 도입했는데, 나주시에서 발생하는 SRF는 200톤 정도여서 광주에서 200톤을 추가로 받기로 했던 모양이다. 광주 쓰레기를 나주에서 태울 수 없다는 주장이 초기에는 상당히 강했고. 주민 감정 측면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빛가람 열병합발전소가 광주의 SRF를 돈 받고 처리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돈 주고 구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SRF가 산업적으로는 쓰레기가 아니라 연료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광주 쓰레기를 나주에서 태울 수 없다’
→도시에서는 못 태우지만 시골에선 괜찮다?
그런데 지역 시민운동과 이전 기관들의 노동조합 등이 결합하면서 운동의 초점이 변하게 된다. 광주 것이건 나주 것이건 친환경 도시 빛가람에서 유해 가스를 발생시키는 SRF롤 소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LNG를 이용해서 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도록 설비가 되어 있으니 청정에너지인 LNG를 100%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역난방공사는 이미 나주시의 허가를 받은 것이고 광주에서 SRF를 조달하기로 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본래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다. 그러면서 시민대책위는 11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열병합발전소 앞에서 반대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운동의 방향이 바뀌면서 SRF 반대 진영은 열병합발전소에서 SRF 소각을 결정한 결정 자체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현 시장은 열병합발전소 가동 인허가 관련 행정 책임자라는 점에서, 열병합발전소 SRF 소각 결정 당시 시의회 의장이었다는 점에서 SRF 문제의 당사자로 부각되고 있다. 어느 시점부턴가 이장협의회의 현수막은 시민대책위원회로 대체되었다. 처음부터 예견된 것이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세력 간의 힘겨루기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시민운동 진영도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양분된 지경이다.
빛가람동은 나주 최대의 인구 밀집지역이다. 당연히 쓰레기 발생량도 많다. 그런데 열병합발전소에서 쓰레기를 태우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면 나주시 어딘가에 쓰레기 소각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 빛가람동 주민에게는 SRF 소각 철회가 당연한 권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이자 소(小) 지역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 이 지점을 두고 지역 정치권과 지역 시민운동이 양분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 정책이 결합되면서 합리적인 해결이 어려워진다. 애초에 정부는 SRF 열병합발전을 쓰레기 소각이 아닌 신재생에너지 활성화의 관점에서 접근했던 것 같다. 이 관점의 차이가 현장에서 커다란 차이를 유발한다. 쓰레기 소각이 목적이라면 유해가스 배출 억제 등 환경적 관점에서 접근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안전성 검증보다는 경제성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워낙 복잡한 문제여서 구체적인 사항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안전 관리 측면에서 허술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지난해 5월 환경부가 대도시에서 SRF 소각을 금지한 조치이다. 환경부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하나로 대도시 지역에서 SRF를 소각하지 못하게 했다. SRF 관련 안전관리가 미흡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정부가 열병합발전소에서 SRF 소각을 권장했으면서도 시민의 안전은 면밀히 고려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셈이다.
대도시에서 미세먼지 때문에 소각할 수 없는 SRF를 농촌에서는 소각해도 된다니. 환경부가 도시와 농촌을 차별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나는 농촌 지역 주민으로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심하게도 현 나주시장은 혁신도시를 SRF를 소각할 수 없는 대도시 지역에 포함시켜 달라고 정부에 청원했다. 그렇게 해서 빛가람 열병합발전소에서 SRF를 소각하지 않으면 급한 불은 끄겠지. 하지만 결국 나주시 어딘가에 소각장을 새로 지어야 한다는 데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것일까?
정치권도 시민단체도 갈등 완화보다 이기심만 부추겨
이 문제의 합리적 해결책은 무엇일까? 몇 가지 전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 그것을 어디에선가 소각해야 한다. 우리 지역에는 사람이 많이 살아서 피해가 크니 사람이 적게 사는 농촌지역에서 소각해야 한다는 힘의 논리를 관철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전제를 충족시키는 결론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안전성이 확인된 소각시설을 건립하고, 쓰레기 발생량이 많은 곳에서 소각하면 된다. 나주의 상황에 이 원칙을 적용하면 당초 계획대로 열병합발전소에서 SRF를 소각하고 행정당국이 배출 가스 등의 안전 규제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안전성’이 문제로 나선다. SRF를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산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정부의 안전기준이 충분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안전성이 확인될 때까지 열병합발전소에서 SRF 소각은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고 합리적인 해결책 마련은 당분간 불가능해진다.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고 치유해야 할 정치권이 그 갈등을 격화시키는 것은 단지 중앙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지역 정치권 역시 지방선거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지역 주민을 볼모로 이전투구 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지역 시민운동도 마찬가지다. 시민운동이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SRF가 쓰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것을 알리고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시키고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서 SRF 발생량을 줄이는 실천 운동을 전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진지하고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시민청원과 시민감시운동을 조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비이성적인 주장이 오히려 확산되고 있다. 열병합발전소가 우리 아이의 생명과 우리의 재산을 침해한다는 홍보물이 곳곳에 붙어 있다. 열병합발전소가 가동되면서 냄새가 심해져 창문을 열 수 없다고 호소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목이 따끔거리고 피부 질환도 심해진다고들 한다. 서울보다 나주의 공기가 더 오염된 것 같다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으며, 오염된 환경에서 재배되는 로컬푸드 농산물도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그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SRF 반대 운동이 시작된 이후 로컬푸드 직매장의 매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직장 동료 중 하나는 아내가 SRF 문제가 해결되어야 서울에서 나주로 이사하겠다고 한다며 열병합발전소 문제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주시 혁신도시는 자신들이 버린 쓰레기를 태우는 것을 문제 삼고 있지만, 원도심은 LG 화학에서 배출하는 배기가스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고 보니 나주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자고 시작한 운동이 나주가 심각하게 오염된 곳이라는 생각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 내가 나주 생활에서 느끼는 가장 큰 만족 중의 하나는 비가 내리면 밖에 세워둔 차와 집의 창문이 깨끗해지는 기적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미세먼지 예보에는 서울이나 나주나 그 농도가 큰 차이가 없지만, 생활하며 느끼기에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이 깨끗하다. 그런데 조그마한 발전소 하나 가동했다고 살기 어려워질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역에서 이런 의견을 내기는 쉽지 않다. 합리가 아닌 진영의 논리가 논의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대학시절의 몇 장면이 뇌리를 스친다. 서울지역 대학생들, 정확히 서총련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 운동을 주요 대중운동으로 전개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미군기지를 용산에서 이전하면 어디로 이전하라는 것이냐며, 다른 이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은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어쨌든 용산의 미군기지는 평택으로 이전했다. 서울의 그곳은 도심의 공원으로 서울시민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미군기지가 이전한 평택은 아비규환과 반목에 의한 상처가 깊게 남았다. 용산 미군기지에서, 강정마을에서, 밀양 송전탑에서, 우리는 어떤 아픔을 겪었고 어떤 교훈은 얻었는가? 언제쯤 나는 이곳 나주에서 이방인이 아닌 지역주민으로 나의 주장을 펼칠 수 있게 될까? 이것 역시 바람만이 아는 대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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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승용_ 학부를 졸업하고 수년간 농산물 유통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느낀 바가 있어 농경제사회학부에서 농산물 유통을 연구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농업정책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직장이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나주로 이사해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gouksy@daum.net)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