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3:56 오후 112호(2018.04)

[여는 글]
한반도 평화정착에 최고의 기회, 놓치지 말자

황대권 (생명평화운동가, 농교육 74)

지난 4월 13일 미국은 반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리아에 폭격을 가했다. 그냥 폭격이 아니라 ‘정밀폭격’이라며 ‘정밀’에 방점을 찍어 발표했다. 명분은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응징이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폭격한 지역이 정부군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다. 정치평론가들은 이 폭격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을 내놓았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가 가장 크다고 본다. 하나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게 일종의 경고를 울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불안감을 해소해주기 위한 제스처이다. 정밀폭격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이란과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도 있지만 상대방의 어떤 은밀한 목표물도 정확하게 폭격할 수 있음을 북한에게 보여주려 한 것 같다. 그런데 북한이 과연 이 폭격을 보고 겁을 먹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절대무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이 같은 짓을 제3세계 어디에서고 마음대로 자행해왔으나 장거리핵탄두 보유를 선언한 북한의 출현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절대무기인 핵무력의 특성상 핵보유국끼리는 서로 공격을 자제하는 것이 국제관례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제3세계 국가들이 핵을 개발하거나 보유하려는 시도를 보이면 가차 없이 응징하고 갖은 수단을 써서 막아왔다. 딱 세 나라가 예외인데 이스라엘은 중동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허용한 것이다.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조차 자국의 세계패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써왔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가장 극렬한 반미국가인 북한이 핵억지력을 가졌다는 것은 미국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미본토를 위협하는 북한의 도발도 문제이지만 북의 핵기술이 미국에 적대적인 나라들에게 전해지면 더 이상 미국의 패권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리아 폭격 직후 세바스찬 고르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민주주의에 반대하고 불법무기를 사용하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 미국의 반민주적 행위와 불법무기 사용에 대한 기록은 책으로 정리되어 나온 것만 해도 수십 권이나 되니 구태여 반박할 일은 없다. 다만 종전 이후 70년 동안 같은 공갈을 반복하고 있는 미국이 딱해 보일 뿐이다. 사실 저 말은 시리아에게 한 말이 아니라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핵보유’ 국가인 북한에게 한 말이다. 까불면 다친다는 것을 반격수단이 없는 시리아에 대고 시범을 보였을 뿐이다. 과거에는 북한을 테러국가로 지정해 놓고 같은 얘기를 밥 먹듯 해대었지만 핵억지력을 지니고 있는 지금의 북한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예상대로 북한은 미국의 폭격에 대해 일체의 논평을 내지 않았다. 다만 노동신문에 우방인 시리아 정부의 반제투쟁을 응원하는 의례적인 글을 실었을 뿐이다.

1회성 사건에 지나지 않는 시리아 폭격을 이렇게 장황하게 쓰는 이유가 있다. 지난 70년간 세계의 경찰을 자처해 온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전 세계에 펼쳐놓은 군사시설을 유지해야 하는 미국의 경제가 빚더미 위에서 허덕이고 있는 시점에서 북미회담을 앞에 두고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미국이라는 절대 권력이 더 이상 보여줄 게 없다는 고백이라는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출현은 우연이 아니다.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새로운 세기를 열어갈 주역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제국을 운영하느라 늙고 지친 미국을 내부적으로 쇄신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고, 김정은은 그 제국을 상대하느라 피골이 상접해진 공화국을 재건해야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기실 북한은 미국의 자존심에 깊이 박힌 못과 같은 존재였다. 미국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 250여 회의 전쟁을 치렀는데 거의 모두 승리했다. 미국인들의 지존심의 근거는 여기에 있다. 유이한 예외가 베트남과 북한이다. 베트남에게는 패배를 당했고, 북한과는 무승부를 기록했다. 베트남은 이미 끝난 일이지만 북한과는 휴전 이후 지금까지 자존심에 소금을 끼얹는 일이 지속되고 있다. 제국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경제력이 약화된 시점에 휴전 당사국이자 끊임없이 자존심을 긁어대는 북한이 절대무기마저 손에 얻자 더 이상 같은 놀음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된 바에야 다 내려놓고 각자의 사명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현 상황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에 동의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미회담을 조율한 문재인 대통령은 천운을 타고난 정치인이다. 옛말에 한 나라의 지도자는 하늘이 내린다고 했는데 김정은과 트럼프, 문재인을 보면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김정은이 33세의 나이로 북한의 최고통치자가 되었을 때 모두들 ‘세습왕조의 막장드라마’로 폄하하였고, 부동산 재벌 바람둥이가 청교도 국가의 대통령이 되자 미국이 저렇게 망하는구나 하고 탄식을 하였다. 한편 거의 야인이 될 뻔했던 비서실장 출신의 정치인이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 기적적으로 정권을 거머쥐고 65년간 지속된 정전체제를 걷어낼 주역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직 넘어야할 산은 많다. 하지만 하늘의 뜻은 이미 다 드러났다. 근세 100년을 통해 한반도에 찾아온 최고의 행운의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또 다른 암흑의 100년을 보내야할지도 모른다. 기도하고 집중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나라들 사이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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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대권_ 구미유학단 간첩조작사건으로 13년간 옥고를 치렀다. 옥중에서 만난 다양한 야생초를 관찰해 묶어낸 『야생초편지』로 이름이 알려졌다. 현재 생명평화운동가로 전남 영광 청태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 마을을 꾸려가고 있다. (bau100@empas.com)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