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3:06 오후 112호(2018.04)

[낙성대에서]
선거가 뭐길래, 통장 회의에서 멱살잡이

김현수 (사회복무요원, 임산공학과 08)

#14

업무재배치가 이뤄져 동사무소에 복귀했다. 선거기간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선거기간에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선거는 선관위에서만 담당하는 줄 알았는데, 현장을 겪어보니 대부분의 일은 동사무소가 담당한다. 반면 동사무소에 내려오는 예산은 언제나 턱없이 부족하다. 선관위에 항의도 해보지만 그들도 역시 공무원이라 소용없다. 항의까지도 절차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덕분에 동사무소 직원들의 분위기가 한결 안 좋아졌다.

선거기간이라 예민한 건 동 직원들뿐만이 아니다. 당사자인 후보들은 곱절로 예민하고 바쁘다. 그들의 예민함은 으레 타인에게 고통을 준다. 주민자치회 월례회의에서 1차로 사달이 났다. 주민자치회 월례회의는 통장들, 동 직원들, 구의원들이 모인다. 참관하는 주민들도 몇 온다. 모인 김에 선거기간이고 하니 명함을 뿌린 모양이다. 갑자기 예비후보 몇이 나타나 명함을 뿌리는 기존 구의원들과의 형평성을 따지기 시작했다. 이내 언성이 높아졌고, 소동을 말리기 위해 사회복무요원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거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강하게 항의했다. 우린 그저 규정에 따라 사람들을 모으고 회의를 진행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수밖에 없다.

구의원 의정보고회에서도 당연히 소란이 벌어졌다. 확실히 지금의 제도는 기존 현역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 의정보고서를 집집마다 보내고, 의정보고회를 개최해 사람들을 모으고, 각종 행사에 공식적으로 참여해서 사전선거운동으로 규정되지 않는 사전선거운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다른 예비후보들은 사전선거운동에 걸리지 않는 명함 살포만 허락될 뿐이다. 덕분에 현장 실무자가 겪는 푸닥거리만 늘어난다. 지금 제도는 새내기를 반기지 않는 제도임이 분명하다.

#15.

지난 1년간 지각, 결근 없이 정상출근만 했을 뿐인데, 우수 사회복무요원으로 선정되었다. 덕분에 구청에 파견되어 각종 업무를 맡게 되었다. 특별휴가 5일을 받고, 실제 근무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복지관이나 요양원, 데이케어센터 같은 곳에서 복무하는 동기들은 훨씬 힘든 곳에서 강한 업무강도에 시달리고 있는데, 내가 이런걸 받아도 되나 싶긴 했다.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늘어난 업무강도는 휴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건 과연 상인가 벌인가.

#16.

수급자 한 분이 빨래 쿠폰을 받으러 오셨다. 빨래방을 운영하는 어떤 주민이 기부의 형태로 맡겨놓은 쿠폰이 있다. 우리 동 수급자들은 대부분 반지하 단칸방이나 옥탑 단칸방, 혹은 여인숙에 산다. 당연히 세탁기조차 제대로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들에게 이 쿠폰은 필수적이다.  원래는 쿠폰이 기존 바우처처럼 당연히 지급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요청 시 지급으로 변경되었다.

쿠폰을 받아서 빨래방에 와 세탁기 속에 썩기 직전의 걸레 같은 버릴 옷들을 잔뜩 넣어두고 되가져가지 않는 사례가 지속되었다고 한다. 뭘 넣었는지 세탁기가 계속 고장난다고 했다. 그들은 이제 쿠폰을 받기 위해 복지팀 직원에게 연신 고개를 숙여야 한다. 복지팀 직원들은 연신 당부한다. 빨래하고 꼭 들고 가시라고, 버릴 것들은 따로 버리시라고. 수급자가 돌아가고 담당 직원은 한숨을 푹 쉬었다.

#17.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20대 수급자가 대뜸 자기는 보편복지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선별복지로 혜택받던 돈이 보편복지가 되면서 줄어들기 때문이란다. 당장 자기가 공교육 과정에 있던 시절, 의무급식 논쟁이 터졌다. 정치꾼들의 이해타산은 잘 모르겠고, 자기는 의무급식이 시행되면서 기존에 받던 방과후 보조금이 짤렸단다. 왜 돈 있는 애들 밥값 때문에 내 방과후 수업이 없어져야 했냐는 거다. 서울시 교육청, 서울시청, 서울시의회는 왜 그랬을까?

난 전혀 당사자성이 없는 제3자로서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불댈 수밖에 없었다. 의무교육 과정 중에 급식이 포함되어 있으니 당연히 의무급식을 해야지, 라는 원론. 당장 자기 돈 빼앗긴 사람 앞에서 참 공허한 이야기였다.

#18.

동사무소에서 대형 폐기물 관련 시비는 끊이질 않는다. 이번에 온 민원인은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뭐가 이리 비싸”냐며. 왜 그 돈을 내고 쓰레기를 버려야 하냐며, 못 내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여기까지는 흔한 시나리오였다. 조금 뒤 그는 남편과 함께 찾아왔다. 남편이 그 가격을 믿지 못했나 보다. 왜 이리 비싸냐며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규정대로 하는 거지 덜 받고 더 받고 그러는 거 없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거의 달려들 기세로 소리치기에 일어나드렸다. 그는 자신보다 한참 높아진 시선에 잠시 잠잠해졌다. 그리곤 에누리를 부탁했다. 안 된다고 했다. 신고치보다 물건이 크면 수거를 못한다고. 그는 다시 부인에게 소리쳤다. 계속 소리치던 그들은 그냥 신고 안하고 버리겠다고 도망갔다. 그들이 몇 만원 아끼려 무단으로 내다버린 쓰레기는 몇 십 만원의 과태료가 되어 그들에게 돌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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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_ 농대 학회 ‘농학’에서 활동했으며 농대 부회장을 역임했다. 학부 졸업 후 교육학과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육협동조합 아카데미쿱 자연반 강사이며 현재는 관악구 청림동주민센터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다. (nature@academicoop.com)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