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2:50 오후 112호(2018.04)

[꽃송이 라디오]
고1 아빠의 학교 탐구 생활

노광준 (경기방송 편성제작부장, 농화학 88)

새 봄을 맞아 ‘라피의 꿈’도 새 단장을 했습니다. 아이들 교육이야기로요. 제목은 ‘꽃송이 라디오’. 고1 아빠의 요즘 애들 입시 관찰기입니다.

1. 적자생존

결국 꽃송이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와 함께 최소 3년간의 입시전쟁도 시작됐다. 엄마 아빠 때 입시를 대변하는 말로 이런 게 있었다. 4당 5락. 4시간 자면 합격이요, 5시간 자면 불합격. 시험 한 방으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던 시절의 말이다. 요즘은 무슨 말이 대세일까. 단연 ‘적자생존’이다. 3년간의 학교생활이 기록된 학교생활기록부, 일명 ‘생기부’ 기록과 면접으로 뽑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세가 되면서 기록의 중요함은 상상 그 이상이다. 선생님이 기록하는 생기부에 한 줄이라도 더 적히는 자는 합격이요, 덜 적히는 자 재수라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떠오른 거다. 기록되지 않은 활동은 없는 거라는 말도 있다.

이러니 학기 초 교실의 풍경은 치열한가보다. 서로 손들고 발표하고 질문하고 샘들께 다가간다. 반장을 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반장 입후보를 준비해오는 아이도 있고, 심지어 학부모 대표 경쟁도 치열하다. 학교운영위원이나 반 대표를 하는 게 정보획득이나 아이에 대한 평가에 유리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적극적인 참여는 언제든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그게 ‘보여주기’ 식이라면. 기사 한 줄이라도 더 나오려고 이벤트성 발언이나 활동을 거듭하는 일부 정치인, 연예인들의 그것과 뭐가 다를까. 활발함 속의 공허함. ‘나도 저래야하나?’ 하는 압박감. 꽃송이는 답답했나보다. 이런 말을 한다.

“꼭 발표나 질문을 해야 해? 다들 너무 샘한테 눈도장 찍으려는 듯.”

음. 그 분위기 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어떤 분에게서 학부모 모임 때 일을 전해들은 게 있었으니까.

샘 : 자 지금부터 학부모 반 대표를 선출할 텐데 부모님들께서 자율적으로 선출하시는 만큼 저는 공정성을 위해 잠시 나가있겠습니다. 임시 사회는 반장 어머님께서 해주세요.

반장엄마 : 제가요? 이런 거 해본 적 없는데. 혹시 반 대표 하고 싶으신 분 계세요? (딱 2초 후) 예 그럼 제가 봉사하는 셈치고 하겠습니다.

ㅋㅋ, 이런 분위기라면 뭔가 하고 싶다가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꽃송이가 느끼는 압박감이 무언지 알 것 같았다. 눈에 띄어야 한다는, 주목받아야 한다는. 그것도 3년 내내. 나는 이런 말을 해줬다,

“질문은 샘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궁금한 걸 물어보면서 확실히 니 머릿속에 그 부분을 각인시키는 거 아닐까. 아빠도 그냥 외울 때보다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물어보면 안 잊어버리거든. 즉, 질문이나 발표는 보여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나의 성장을 위해 한다는 거지. 아빠네 직장에서도 ppt 잘 꾸며서 발표 잘하는 애들이 협찬도 잘 따와요. 모든 걸 나의 성장을 위한 활동으로 보고 꾸준히 하면 어떨까. 적히든 안 적히든 신경 쓰지 말고 진짜 모르는 거 찾아보고 여쭤보고 아는 만큼 정리해보는 진짜 공부…….”

끄덕끄덕, 꽃송이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 한숨을 돌린다. 에구에구 우리 아이들. 어른도 직장에서 일거수일투족을 평가에 반영한다고 하면 숨이 막히는데. 그러나 숨 막히는 적자생존의 정글 속에서도 노하우는 있다. 진정성. 보여주기는 오래 못 가고 결국 털린다. 하지만 진정성은 가면 갈수록 빛이 난다, 눈치 보지 말고 꾸준히 뚜벅뚜벅 무소의 뿔처럼.

2. 학교란 무엇인가?

공부가 재밌다는 아이가 있다. 물론 남의 집 아이 이야기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도 고민이 있다. 수학이 너무 재미있어서 고3 수학까지 혼자 다 끝냈더니 정작 중학교 수업이 재미없더라는. 그래서 자퇴하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고 싶더라는. 요즘 은근히 ‘홈스쿨링’을 꿈꾸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허허, 거기서 처음 생각해보았다. 학교란 무엇인가. 그런데 우리집에서도 자퇴하고 싶다는 아이가 생길 줄이야. 물론 그 집 아이와는 전혀 다른 이유였지만.

“아, 자퇴하고 싶다.”

“(휘둥그레) 엉, 아니 왜?”

“애들이 너무 세서 적응이 안 돼.”

“(조마조마) 혹시 학폭(학교폭력)이니?”

“아니, 잘 안 맞아서.”

“어떻게 안 맞는데?”

“나는 솔직히 남자 아이돌뿐 아니라 여자 아이돌도 좋아하거든. 노래만 좋으면. 그런데 애들은 무조건 남자 아이돌만 좋대. 대화가 안 돼.”

ㅋㅋㅋ, 하지만 꽃송이는 진지했다. 한 학년이 백 명도 안 되는 도심 속 시골학교 같은 중학교에서 3년 동안 정들었던 친구들과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되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하던 소녀에겐 낯설기만 한 고등학교 첫 학기가 너무 큰 스트레스였나 보다. 가뜩이나 할 공부도 활동도 많은데 맘에 맞는 단짝친구마저 없으니 걱정이 엄습.

“(시무룩) 오늘도 (하루가) 길었어.”

“솔직히 그냥 집에서 하면 좋겠어.”

이렇게 말하는 날이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오늘 교장샘 면담하고 왔어.”

“??”

“국어 수행인데 모둠별로 인터뷰하는 것이거든, 우린 교장샘 인터뷰했어.”

고등 국어 첫 단원은 대화와 소통이란다. 그래서 수행평가 과제로 누군가를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정리해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꽃송이네 모둠은 각자 2개씩 질문을 준비해서 교장샘을 만났다고 한다.

“무슨 질문했니?”

“그거, 학교의 미래…….”

꽃송이는 정말로 궁금한 질문을 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이 시대에 학교가 필요하냐는.

“오늘날 인터넷과 같은 정보매체의 지속적인 발달로 학교를 나오지 않고도 혼자서 충분히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꽃송이의 질문)

허허, 몹시 궁금했다. 이 질문을 받은 교장샘의 표정은 어떠셨을지.

“끄덕끄덕 하시면서 편하게 말씀하시던데.”

어땠을까. 교장샘의 답변은. 꽃송이가 받아 적어 타이핑한 답변내용을 엿봤더니 뜨악,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단순히 지식을 위해서는 학교를 나오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는 것이 훨씬 능률적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단순히 지식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미래사회에선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고는 갖출 수 없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또래 친구들을 많이 만나는 학교는 미래사회에도 존속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교장샘의 답변)

학교는 감정소통의 장이라는, 이 정도면 거의 교육부총리와 기자 사이의 인터뷰 아닌가. 흐뭇흐뭇. 나는 학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었고 꽃송이는 그 후 친구들을 얻었다. 수업시간에 잘 자지만 착한 아이. 껌 좀 씹게 생겼지만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모두가 함께 가야할 우리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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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준_ 별명 ‘노진구’. 도라에몽에게 늘 민폐만 끼쳐 만화사상 최악의 캐릭터로 손꼽힐 만큼 띨띨하고 존재감 없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우연히 라디오 피디가 되어 드라마 ‘도깨비’의 지은탁 양과 동종업계에서 일하고 있음. FM 99.9MHz 경기방송의 제작부장. 언젠가 농촌에 살고픈 닉네임 ‘시골피디’. (pdnkj@naver.com)

Last modified: 2024-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