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철(제주 농업기술원 농촌지도사, 농화학 89)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학창시절 읽었던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노란 동백꽃이라. 동백꽃의 색은 붉은 색인데. 노란색의 동백꽃은 우리나라에 없다고 합니다. 김유정의 고향인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고요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를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라 한답니다. 그래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동백꽃은 생강나무 꽃이라고 하네요.
어쨌든……, 올 봄 제주도에는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다. 제주도 전 지역에 동백꽃이 자생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동백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꽃을 따먹다가 동백나무 벌레가 목덜미에 떨어지면 두드러기가 나서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동백나무는 그다지 쓸모가 없지요. 목재용으로도 그다지.
동백나무가 요긴하게 쓰일 때가 있긴 있네요. 제주에도 윷놀이가 있는데요, 육지부 윷놀이와 다르게 윷가락이 매우 작습니다. 전라도 윷가락도 작습니다. 엄지손가락만한 두께의 나무를 3㎝정도 길이로 잘라서 쪼개어 윷가락을 만듭니다. 윷가락 중에서 동백나무로 만든 윷가락을 최고로 칩니다. 직사각형 모양의 멍석 가운데에 금을 그은 다음 양쪽에 서서 상대편 쪽으로 윷가락을 던집니다. 윷가락은 작은 간장종지에 넣어서 던집니다.
제주도에서는 명절날에 윷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경조사에 주로 많이 합니다. 잔치가 있거나 상가집에서는 항상 구석에서 윷놀이판이 벌어지는데 대부분 돈내기 윷판이지요. 돈을 걸지 않으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하루 종일 경조사집에서 어울리다보면 이보다 더 재미있고 시간이 잘 가는 놀이가 없지요. 이런 윷놀이를 작년 전라도 어느 시골을 지나다가 보게 되었습니다. 아마 잔치가 벌어졌나 봅니다. 마치 고향동네에 온 듯 친근감이 들어 차를 세우고 한참 구경하다 왔습니다. 각설하고요.
올 봄 제주에는 유난히 동백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나무에만 핀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에도 피었고, 길가에 걸려있는 현수막에도 피었습니다. 동백꽃은 화려하게 빨갛게 피었다가 꽃송이째 허무하게 떨어집니다. 허무하게 스러져간 4·3의 넋을 기리는 70주년을 상징하는 동백꽃이 제주에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떨어졌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는데 올해는 동백꽃이 4·3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올 4·3은 특별했습니다. 7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었지만 2006년 고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 추념식에 참석해 유족들에게 사과를 한 이후, 15년이 지나서야 다시 문재인 대통령이 4·3 추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제주도만의 추념행사를 하였지만 올해는 전국적인 행사로 확대되었습니다. 방송에서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4·3을 다뤘습니다. 6월 항쟁을 겪은 우리 세대에게는 1987년 6월이 역사가 아닌 현재인 것처럼, 4·3을 겪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4·3을 그저 지나간 역사가 아닌 오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젊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토벌대에 희생되었고 폭도라 불리던 무장대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한 마을이 몰살되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일제가 독립군에게 당한 뒤 토벌이라는 명분으로 간도에서 우리 민족을 학살한 간도참변을 떠올리게 합니다. 밤에는 무장대에 의해 경찰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지요. 중산간 지역 마을은 전부 토벌대에 의해 불살라지고 해안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1948년부터 7년간 제주도 인구의 1/3인 3만여 명이 희생당하고 지금껏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90년대 이후 4·3의 진실을 알리는 노력이 이어졌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에 의한 학살임을 인정하며 사과했으나,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끊임없이 역사를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제야 4·3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네요.
지난 3월 30일 제주시 모 식당에서 김기사 회원들을 만났습니다. 도새기(돼지) 고기에 소주를 마시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4·3항쟁 평화기행차 내려오신 분들(정근우·박종대·김원봉·조미경)과 제주에서 저, 안경아 그리고 송관철(농화학, 73) 선배님이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송관철 선배님으로부터 김상진 열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김공림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어머님을 찾아뵈었는데 정정하시더군요.
앉아서 얘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어머님한테 4·3 당시 겪었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7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4·3 관련된 일들과 특히 북촌초등학교 학살 현장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전부 학교 운동장에 모이게 하였는데 경찰가족은 따로 모였고, 마침 먼 친척 중에 경찰이 있어서 학교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네요. 4·3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앞으로 동백꽃은 그냥 꽃으로만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4·3의 희생자들도 붉은 꽃이 핀 동백나무로 윷가락을 만들어 윷판을 벌이며 이웃들과 함께 웃고 울었을 것입니다.
.
홍성철_ 제주토박이며 2004년에 제주로 돌아와 농업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제주를 찾아 주시는 분들과 술 한 잔 하는 것을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제주로 오시면 연락하세요. 맛있는 흑돼지 삼겹살과 소주 한 잔 하게요. (hsc13@korea.kr)
Last modified: 2024-08-26